학창시절 이어폰을 귀에 달고 살았었다. 학업의 스트레스 때문인지, 아니면 음악 밖에 들을 것이 없는 청소년시절의 문화 환경 때문인지 정확하게 모르겠지만, 그 때는 정말 음악을 좋아했던 것 같다. 그 때 사 모았던 음반들은 개인적으로 보유하고 있는 음반의 90%이상이 될 정도로 음악을 많이 들었다. 주로 듣기만 했지만, 가끔은 나도 악기를 배워서 연주하고 싶다는 생각도 했었고, 때론 밴드도 만들어 보고 싶다고 생각도 했었다. 하지만 그런 생각들은 머리 속에 머물렀다. 결국에 아직까지도 제대로 다루는 악기 하나 없다. 바쁘다는 핑계, 해야 할 것도 알아야 할 것도 많은 세상에 우선 순위가 아니라는 핑계 등등. 결국 자기 변명을 위한 이유로 아직도 스스로를 위로 할 뿐이다.
생각해보면 그 당시 음악에 빠졌던 것은 가장 혈기 왕성한 청춘의 에너지를 쏟을 곳이 없어서 였는지 모르겠다. 학업이라는 굴레와 청소년에게 억압적인 학교 문화와 사회는 자기 안의 다른 에너지를 분출할 길을 완전히 막혔고, 음악듣기라는 한 가지가 유일한 통로가 되었던 것 같다. 생각해 보면 음악을 진정으로 좋아하지 않았던 것 같다. 그 당시 좋아 했던 가수 중에 아직 또 음악을 찾아듣는 가수는 다섯 손가락 안에 꼽을 정도로 작다. 빌보드 차트 20위권의 음악까지 줄줄 꾀고 있었던 시절이 있었는데, 지금은 학창시절에 즐겨듣던 음악가의 이름 조차 가물 가물하다.
요즘은 같은 음악을 수십번 반복해서 듣지도 않는다. 적은 용돈을 모아서 하나하나 소중히 모았던 음반에는 그 만큼 애정이 높아서 그런지 수십번을 반복해서 들었었는데, mp3로 유통되는 지금의 음악들은 반복해서 듣기가 쉽지 않다. 저렴한 가격의 옷들이 한번 입고 버리는 패스트 패션이라는 유행을 만들어 낸 것처럼, 복제와 유통이 손쉬운 디지털 형태의 음악은 패스트 음악을 만들어 낸 것 같다. 매일 차트의 순위가 요동치면서 변하고 유행하는 음악의 수명도 짧다. 그런 세태만큼 개인적 음악 감상의 패턴도 패스트하게 변했다. 한 두번, 많으면 4~5번 듣고 마는 형태로.
그래서 가끔은 내가 대중음악의 가치를 너무 가볍게 여기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한 음악을 한 두번 듣고 말다보니 그 음악이 만들어지는 과정에 들어간 수 많은 이들의 피와 땀을 망각하는 것 같다. 공장에서 찍어내는 제품들은 쉽고, 저렴하게 구할 수 있는 경향이 크기 때문에 희소성이나 그 제품이 가지고 있는 가치가 제대로 빛을 보지 못하는 것처럼. 쉽게 듣고 쉽게 버리는 음악을 공장에서 제품 만들듯이 찍어낸다고 생각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래서 음악을 더 가볍게 여기고 정확한 가치를 매기지 못하는 것 같다.
실제로 우리나라에서 음악을 한다는 것은 몇몇 소수를 제외하고는 힘겨운 현실이다. 승자독점 현상이 일어나지 않는 곳이 어디에 있냐고 반문할 사람도 있겠지만, 다른 나라에 비해서 소수가 모든 것을 가져가 버리는 우리나라 환경의 특성은 꿈과 열정으로 자신의 길을 걸어가는 수 많은 이들에게는 더욱 더 힘겹다. 그런 힘겨움에 음악에 대한 사랑과 열정이 꺾이는 사람도 있고, 그런 어려움에도 꿈과 희망을 포기하지 않는 사람들도 있다. 포기한 사람도 끝까지 포기하지 않은 사람도 각자의 사정과 이유가 있겠지만, 그래도 마음 속에 음악에 대한 사랑과 열정을 포기하지 않는 모습들을 보면 마냥 부럽기만 하다. 모 방송국에서 하는 “TOP밴드”라는 프로그램에 나오는 열정적인 사람들의 모습은 그 자체로도 진한 감동의 여운을 남기지 않던가.
그런 음악에 대한 열정만으로 전해주는 감동의 매력은 쉽게 거부할 수가 없다. 자신의 잃어버린 추억과 기억 그리고 가슴에 숨겨뒀던 열정을 떠올리게 만들어 진한 감동을 주기에. 그래서 우리나라 인디 영화계는 가난한 뮤지션들의 삶을 많이 사랑하는 것 같다. 꾸준히 만들어지는 인디 뮤지션들의 다큐멘터리 영화는 바로 그런 점들을 꾸준히 담아내면서도 색다른 매력으로 관객들에게 다가가는 것 같다. 개인적으로 인디 뮤지션들을 그린 다큐멘터리 영화 세 편이 기억에 남는다.
영화 “좋아서 만든 영화”는 제목부터가 마음에 든다. 사람이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살기도 짧은 인생인데, 우리는 사람이 어떻게 좋은 것만 하면서 살냐면서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는 다양한 일들을 하면서 살아간다. 다양한 현실적 문제 앞에서 포기하거나 다른 대안을 선택하는 것이다. 그래서 좋아하는 일을 평생의 업으로 살면서 사는 사람은 얼마나 행복한 사람인가? 그 만큼 좋아서 무언가를 한다는 것은 쉽지 않은 선택이고 소수 많이 누릴 수 있는 행복이지 않을까? 이 영화의 제목이 맘에 드는 것은 청춘만이 가질 수 있는 무대포 정신으로 단순히 “좋아서” 음악을 하고 영화를 만들었다는 점이다. 그렇지만, 영화는 그렇게 쉽게 청춘들의 이야기를 담지 않는다. 좋아서 밴드를 만들고 전국 투어를 하면서 자신들이 하는 일에 대한 진지한 고민과 현실의 모습들을 담고 있다.
좋아서 만든 영화 -
고달우, 김모모
영화 “반드시 크게 들을 것”은 음악을 포기하고 고향으로 돌아갔던 인물이 부평의 모텔촌 한 가운데에 인디레이블을 열고 밴드를 불러모으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담은 작품이다. 여기를 근거지로 활동하는 “갤럭시 익스프레스”, “타바코 쥬스”의 이야기를 담은 영화는 “타바코 쥬스”의 드러머 백승화가 연출까지 한 작품이다. 정제되지 않은 일상을 과감하게 보여주면서 락음악을 하는 사람들의 거친 모습을 보여준다. 밴드의 멤버가 직접 촬영을 하다보니 있는 그대로의 솔직함이 영상에 담겨있는 작품이다. 그래서 어떤 면에서는 이들의 실제 이야기가 가상으로 만들어진 이야기보다 더 극적 재미를 주는 작품이다.
반드시 크게 들을 것 -
백승화
영화 “환타스틱 모던가야그머”는 대중들에게 덜 알려진 가야금 연주자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특이한 것은 이 가야금 연주자의 활동무대가 홍대였다. 기존의 가야금연주하면 따분할 뿐만 아니라 홍대라는 곳과 어울리지 않을 것으로 생각되는데, 영화 속 주인공 정민아는 낮에는 전화상담원으로 밤에는 홍대에서 가야금을 연주하면서 자신의 꿈을 포기하지 않고 이뤄낸 인물이다. 영화는 이런 정민아씨의 삶을 14박 15일의 전국투어 과정을 중심으로 삽입해 보여주면서 투어의 과정이 마치 정민아씨의 삶의 여정도 닮았음을 매력적으로 보여주는 작품이다. 좋아하고 열정이 있고, 꿈이 있으면 현실은 힘들지만 언젠가는 자신이 원하는 것을 이룰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작품이다.
환타스틱 모던가야그머 -
최승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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