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터데스크 관리자

도움말
닫기
적용하기   첫페이지 만들기

태터데스크 메시지

저장하였습니다.


'책을 읽고'에 해당되는 글 103건

  1. 2008/10/12 책 "타인의 섹스를 비웃지 마라."를 읽고......
  2. 2008/08/21 "관용" 그 힘을 보여주는 책 "제국의 미래"
  3. 2008/08/19 내 마음의 깊이는? "쿠션"을 읽고.......

2008/10/12 20:14

책 "타인의 섹스를 비웃지 마라."를 읽고......

 

 일본에서 2001 41 문예상을 받았다는 작품이라는데, 읽고 후에 느낌은 "뭐지?"였다. 특별히 눈에 띄는 갈등구조도 없고, 재미를 유발하는 커다란 사건도 없다. 그저 평범하기만 일상의 이야기랄까? 10살이 넘는 연상연하 커풀의 사랑이야기라는 소재와 선생과 제자라는 인물간의 관계는 독특하기는 하지만, 그게 다다. 얇은 두께만큼 간결한 이야기의 전개는 허무하다고 할까, 유행했던 ""하다고 표현해야 할까? 1인칭의 주인공 시점으로 펼쳐지는 이야기는 담담하다 못해서 건조하기까지 하다. 사랑에 빠진 사람의 시점이라기 보다는 3인칭 시점의 화자가 아무 감정 없이 건조하게 이야기를 전달하는 듯하다.

 

 "타인의 섹스를 비웃지 마라"라는 직설적인 표현에 문장에만  감정을 이입해서 이해를 한다면, 화가 청춘이 세상에 항변하는 듯한데, 오히려 역설적으로 무미건조한 느낌의 소설이다.  내가 문화 평론가도 아니고 문학에 조예가 깊은 것도 아니라, 작품을 좋고 나쁨보다는 내가 가지는 느낌과 감정이 책을 평가하는 중요한 잣대지만, 과연 작품이 문학상을 받을 만한 작품인지 의심이 갔다. 안에서 급하게 읽은 책이라 내가 잘못 이해하고 느낀 아닐까 하는 생각에 다시 읽어보았다.

 

 다시 읽어도 저자가 전해주는 건조함이랄까 담담함은 변화가 없다. 하지만, 저자가 말하고자 하는 것이 조금씩 보인다. 여기서 "섹스"라는 단어는 지극히 개인적인 생각이나 철학 또는 생활관이랄까? 사람의 은밀한 비밀이라기 보다는 각자가 가지는 개성과 사생활이랄까? 아무튼 단어로 표현하기 힘들다. 저자는 남자 주인공의 눈과 가치관이라는 필터를 통해 투영되고 평가된 사람들의 이야기한다.

 

 차이를 이해하고 공감하기 위한 걸음이 눈을 통해서 세상과 사물을 바라보는 것인데, 주인공은 자신과 비슷한 가치관이나 연령대를 가진 사람은 쉽게 이해하고 공감하면서, 자신이 사랑하는 연상녀의 가치관은 이해 못한다. 세대차이에서 오는 간격일까? 세대차이라기보다는 단지 비슷한 가치관을 가진 사람에게 끌리면서 관대한 인간의 심리 때문일 것이다. 

 

 그것이 인간이다. 비슷한 가치관에 대해서는 날카로운 평가와 비평을 하는 것은 바로 자신의 정체성과 가치관을 난도질하는 것이기에 그냥 쉽게 이해해 버린다. 반면, 다른 가치관을 가진 사람들에게는 이해와 공감하려는 노력보다는 판단하고 평가하려 한다. 그래서 쉽게 타인의 이야기, 나와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는 쉽게 입에 올리고, 좋고 싫음과 선과 악을 쉽게 판단해 버린다. 나와 다르다는 이유로. 자신의 이야기보다 타인의 이야기 나와 상관없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안주거리나 대화의 중심이 되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저자가 책을 통해서  타인의 삶을 평가하고 비웃는 우리를 향해서 말하고자 한다. "타인의 섹스를 비웃지 말라". 소위 뒷담화라고 하는 것들로 타인의 인생에 대해서 이러쿵 저러쿵 하는 우리들을 향한 일침을 놓는다. 사람 저마다의 삶과 가치관이 있는 것을 인정하고 스스로의 삶에 집중하라고…….

타인의 섹스를 비웃지 마라 - 8점
야마자키 나오코라 지음, 정유리 옮김/황매(푸른바람)
이올린에 북마크하기(0) 이올린에 추천하기(0)

Trackback 0 Comment 0
2008/08/21 20:15

"관용" 그 힘을 보여주는 책 "제국의 미래"

 
사용자 삽입 이미지


 
지금은 독도문제로 시끄럽지만, 일본의 제국주의적 야욕은 언제나 한국을 비롯한 동북아 국가들의 반발을 초래해 왔다. 그럴 때면 외신을 통해서 일본의 행태에 반발하는 다른 아시아 국가들의 동태를 수가 있다. 하지만 동북아의 국가이자 일본의 침략을 받았던 나라임에도 일본에 대한 분노보다는 친일적 행위로 일관하는 나라와 국민들이 있다. 크게는 중국이라는 하나의 카테고리에 넣을 있는 곳이기에 이런 반응은 의아했었다. 비록 중국과 얼마 전까지도 대립하며 갈등하던 국가였지만, 일본의 침략행위에 대해서 그렇게 관대할 있는지 의혹만 증폭될 뿐이다. 그래서 내가 내린 결론은 "우리나라처럼 과거사 청산에 실패한 역사로 인해서 친일파들이 나라의 모든 것을 장악했다"였다. 그렇게 대만이라는 나라를 보면서 우리 사회에서 암적 존재로 존재하고 있는 친일파들의 청산이 필요함을 다시 생각하게 했다.


 그런데 "제국의 미래"라는 책을 읽으면서, 대만이 일본의 침략에 관대했던 것은 친일파들 때문이 아니라는 것을 있다. 많은 나라들이 일본제국의 침략에 수탈당하고 착취를 당했다. 많은 생명들이 죽임을 당하고, 젊은 여성들은 성적노예가 되었으며, 젊은 남성들은 침략전쟁의 총알받이가 되었다. 반면에 일본제국의 식민지중에 유일하게 다른 정책이 펼쳐진 곳이 대만이라는 것이다. 책에서는 제국의 번영 조건을 "관용"으로 꼽고 있는데 일본제국이 유일하게 전략적 관용의 정책을 펼친 곳이 대만이라는 것이다. 그런 전략적 관용 정책의 효과로 인해서 일본제국주의를 찬양하는 현재의 유일한 국가로 대만은 남아 있으며, 일본의 극우파들이 역사왜곡을 일삼으면서 침략의 정당성을 주장할 인용하는 나라가 대만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관용"이라는 것이 어떤 작용을 했기에 모든 제국들의 번영조건에 들어가는 것일까? 저자는 "관용" 대해서 지금 우리가 인식하는 관용과는 다른 것이라고 말한다. 과거의 제국들이 존재하던 시대의 관용이라는 것은 시대의 상황을 반영하고 있는 것이기 때문에 "상대적 관용"이라고 주장한다. 그런 관점으로 제국이 되었던 나라들과 그렇지 못한 주변 국가들의 관용의 정도를 비교하면서 관용이 어떤 힘을 발휘하게 되는지를 보여준다. 그러면서도 모순적인 것을 사실을 이야기하는데 제국 쇠퇴의 씨앗을 뿌린 것도 관용이라고 한다. 관용이 변화의 지점을 건드려서 반목과 폭력을 유발하면서 제국은 멸망하게 된다는 것이다.


 저자는  "관용"이라는 관점을 가지고 시대를 풍미했던 제국들을 분석한다. 너무나 유명했던 제국들에서부터 학창시절 세계사 시간에 잠깐 언급되고 지나갔던 제국들까지 동서양을 통틀어서 "관용"이라는 관점으로 행해졌던 정치행위와 통치행위를 분석하고 있다. 저자의 분석을 보면 타민족이나 타종교에 관용적인 국가들이 발전의 동력을 많이 흡수하고 있는 것을 있다. 특히 중세 유럽 제국(스페인, 네덜란드, 영국) 탄생에는 언제나 유대인들이 역할을 하고 있는 재미있는 사실도 포함되어 있다. 대영제국의 경우에는 유대인들의 역할도 중요했지만, 그보다 중요한 역할을 스코트랜드인들이 했다고 한다.


 이렇게 제국들의 역사를 관찰해가면서 저자는 미국이라는 제국에 대해서 상당히 긍정적인 평가를 한다. 중국출신의 이민자로써 미국에 대해 상당히 관대한 평가와 결론을 내린다. 미국이라는 나라가 이민자들의 나라로 초강대국이 최초의 사례일 뿐만 아니라 민주주의국가로 초강대국이 최초의 국가라는 것이다. 이런 관점 때문인지 9.11 이후에 보여준 미국의 이민정책에 대해서 비판적인 입장을 견지한다. 그런 행위가 관용의 힘을 약화시킴은 물론이고 미국의 발전 동력인 이공계 이민자들의 유입마저 막는 결과가 초래한다고 보고 있다. 과거의 제국이 군사적 정복과 정벌을 통해서 구성되었다면, 현재와 미래에는 경제적 힘을 바탕으로 하기 때문에 이민에 대한 관용 중요한 힘이 밖에 없는 것이다. 


  책은 국가간의 경쟁에서 이기고 다른 나라를 압도하기 위한 제국이 되기 위해서가 아니라도 우리사회의 "관용" 대해서 다시 생각해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이민이 아니더라도 대한민국 또한 많은 외국인들이 돈을 벌기 위해서 또는 한국을 배우기 위해 들어오고 있는 상황을 본다면 과연 우리는 그렇게 관용적인가? 같은 국민들에게도 그렇게 관용적이지도 못한데, 출신국가와 피부색으로 사람에 대한 차별의 행위는 얼마나 만연한가? 뿐만 아니라 여전히 존재하는 종교간의 갈등 그리고 남북한의 이념적 갈등. 나보다 못사는 사람을 돕기라도 하려고 하면, 분배정책이 문제가 있으며, 사회주의 정책이라고 비난하는 이들. 이런 것들은 분명 개인들의 의견이자 행동형태이다.


 개인의 관용부제로 일반화해서 국가적 관용의 부제로 몰아가서는 안되겠지만, 사회전체가 관용이 없다는 것은 개인들에게 관용이 없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 아닐까? 세상살이가 팍팍해서, 사람만 관용적이면 손해 본다고 생각하기 쉽지 않음을 알지만, 관용적이지 못한 사회가 된다는 것은 삶이 세상살이가 팍팍해지는 악순환의 반복일 것이다. 내가 바라는 것은 "관용으로 선진국이 되자" 아니라 "관용으로 따뜻한 세상을 만들자". 그러기 위해서 필요한 것은 국가의 관용이 아니라 개인의 관용 것이다.

제국의 미래 - 10점
에이미 추아 지음, 이순희 옮김/비아북
이올린에 북마크하기(0) 이올린에 추천하기(0)

Trackback 0 Comment 0
2008/08/19 22:23

내 마음의 깊이는? "쿠션"을 읽고.......

 
사용자 삽입 이미지

 종교의 존재 이유는 절대자를 맹목적으로 추종하기 위한 것이 아닐 것이다. 절대자라는 하나의 형상을 통해서 삭막한 현대 사회에서의 인간성 회복을 위한 바람이나 추구 때문일 것이다. 절대자라는 존재는 참된 인간상의 롤모델이자 추구할 목표이다. 절대자를 통해서 자신을 조금씩 반추하면서 자신의 내면의 인간다움을 만들어 나가는 과정이 종교를 믿는 과정이자, 종교가 오랜 역사 속에서도 꾸준히 많은 사람들에게 삶의 중심을 차지하는 이유일 것이다. 대부분의 종교에서 사랑은 근본 바탕이요, 사랑의 실천은 종교의 존경과 성스러움이다. 하지만 인류의 역사와 같이 종교는 많은 시간을 갈등과 반목 그리고 파괴를 가져다 주었다. 현재도 여전히 종교는 많은 사회적 문제를 야기하고 있다. 같은 종교적 기원을 가진 기독교와 이슬람교의 반목은 중세시대부터 지금까지도 지속 중이다.


 사랑의 가치를 가장 앞세우면서도 증오와 파괴를 부르는 이런 모순된 상황이 발생한 것일까? 가장 문제의 근원은 인간일 것이다. 종교를 통해서 자신의 인간성을 가다듬기 보다는 오히려 종교를 도구화해서 자신의 욕심과 욕망을 만족시키려 했기 때문이다. 자신의 저급한 인간성을 절대자라는 이름으로 무조건 용서하고 정당화해 버림으로써 스스로가 인간이기를 포기해 버린다. 스스로가 책임져야 자신이라는 존재 안에 자신 대신에 절대자가 대신한다. 그래서 자신은 인간이기 보다는 절대자의 꼭두각시가 되기를 열망한다. 그것이 자신의 삶에 대한 책임이라는 거대한 무게를 훌훌 털어버리는 길이기에.


 종교에 자신의 삶에 대한 책임을 밀어버리는 인간의 나약함은 자신의 가능성과 깊이를 없게 만든다. 그저 종교에 기복이나 빌면서 종교의 참된 의미마저 퇴색시킨다. 자신을 알기 위해 노력하기 보다는 종교적 환상과 운에 자신의 인생을 맡겨 버린다. 외형 비교에만 열을 올리고 내면은 비교조차 하지 않는다. 자기의 마음을 자기가 조정하지 못하고 외부와 환경 그리고 절대자에게 맡겨버림으로써 내면은 존재 이유조차 인식하지 못한 것이다. 이로 인해 우리는 스스로를 사회의 하나의 부속품으로 구속해버린다. 삶이 점점 고달퍼지고 힘들어지는 이유는 그런 구속이 우리를 억압하기 때문이다.


 자신의 깊이를 재어봤는가? 남들과의 비교에 바빠서, 절대자의 맹신에 바빠서, 운에 자신의 인생을 맡겨버려서 그럴 여유조차 없지 않았던가? 인간관계를 위해서 상대방의 깊이를 재어보면서도 우리는 자신의 깊이를 생각해본 적이 없다. 안치환의 노래 "소금인형" 가사를 보면 소금인형은 자신을 희생하면서까지 바다를 깊이를 재기 위해 바다로 뛰어 들었다. 인간이 어떻게 없는 위험하고 신비한 바다는 두려움의 대상인 반면, 자신의 내면은 위험에 대한 두려움이 없는데도 주저하는 걸까? 자신을 열열히 사랑한 나르시스처럼 자신의 깊이는 세상을 포용할 정도로 깊다고 착각하고 있지는 않는 걸까? 위험을 쉽게 감지할 있는 보이는 바다에 비해서 자신의 깊이는 보이지 않아서 인식조차 못하기 때문일까?


 "쿠션"이라는 책은 자신의 깊이에 대해서 생각할 있는 기회를 그로 인해서 자유를 얻는 방법을 전해준다. 스토리텔링 형식으로 이야기가 진행되는데 "바로"라는 인물을 통해서 비쳐지는 모습들이 언젠가 나의 모습일 수도 있고 평상시의 나의 모습일 수도 있기에 쉽게 공감하게 된다. 엄청난 유산을 남기고 돌아가실 할아버지를 가진 사람은 거의 없겠지만….. 하지만 물질이나 보다 가치 있는 있는 교훈을 "response + ability = Liberty"라는 공식으로 보여준다. 물질에 종속되어버리고 사회와 환경에 종속되어버린 현대인들에게 필요한 것은 자신의 깊이 키우는 , 마음의 쿠션을 키우는 것이다. 그러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