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거운 소재를 바탕으로 하고 있는 작품이라서 그런지 몰라도 영화는 시작부터 묵직하게 관객들을 억누른다. 흡사 공포영화를 보는 듯한 색감과 팽팽한 긴장감을 야기하는 연출은 편하게 영화를 볼 수 없게 만든다. 특히 인호가 교장실에 처음 갔을 때, 교장실 천장의 거울을 비추다가 인호를 비롯한 교장의 모습을 비추는 카메라 워크는 뭔가 쉽게 드러나지 않는 공포와 학교라는 곳에 숨어 있는 어떤 이중성을 비추는 듯한 연출은 인상적이다. 거울을 통해서 이 영화는 학교라는 공간이 그리고 권위와 명망을 내세우는 사람들의 이중성을 은유적으로 드러낸다.
공포영화도 아니면서 영화 초반의 묵직하고 공포스러운 분위기는 누굴 대상으로 하는 것일까? 소재나 간단한 시놉시스만 봐도 분명 이 영화는 관객을 놀래키려는 공포영화가 아닌데. 아마 감독은 억압당하는 아이들이 느끼는 공포를 관객들에게 그대로 전하고 싶었던 것은 아닐까 생각해본다. 어른들에 의해서 행해지는 거대한 폭력에 무방비로 당하는 그 폭력은 분명 아이들의 입장에서는 공포 그 자체다. 영화는 아이들의 입장에서 가질 수 있는 공포를 극대화해서 관객들에게 전해준다.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이 그 아이들에게 얼마나 잔혹하고 무서운 곳 인지를 우리가 느낄수 있도록.
그런 공포의 실체가 조금씩 드러나면서 무겁게 관객을 누르던 영화의 색감이나 분위기도 어느 순간에 바뀐다. 아이들이 공포에 대항해 싸울 수 있는 힘과 용기로 작은 희망이라는 것을 발견한 것 같은 느낌으로 바뀐다. 진실이 드러나기만 하면 정의를 바로 세워질 것처럼. 하지만 영화는 또 다른 무거움과 공포를 우리에게 전해준다. 핍박받던 아이들만 느끼는 공포와 억압이 아니라 실제로 우리가 현실에서 언제든 직면할 수 있는. 아니 우리는 알면서도 모른 척했던 세상의 진실에 대해서 영화는 접근하기 시작한다. 선은 언제나 악을 이긴다는 어린시절 유치한 명제는 현실에서 통하지 않는 다는 것을.
그렇게 영화의 색감과 분위기는 또 바뀐다. 스크린에는 건조함이 묻어난다. 정의를 세운다고 믿는 법이라는 놈이 얼마나 간사한지, 그리고 거기에 침묵하는 수 많은 우리들의 모습을 그렇게 건조하게 그려낸다. 공유가 연기하는 인호와 그의 어머니의 대화에서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세상이 얼마나 건조하고 때론 냉정한지를 그대로 보여준다. 자신의 밥벌이보다 아이들의 재판에 힘을 쏟는 인호의 모습을 달갑지 않아 하는 그 어머니의 대사 하나 하나가 사회 생활을 하면서 충고랍시고 언제나 듣는 소리다. 알아도 모른 척, 봐도 못본척, 들어도 못 들은 척. 그렇게 척하면서 우리가 만들어 온 현실이 어떤지를 영화는 아이들의 재판 과정을 통해서 더 잔혹하게 보여준다.
정의를 세우지 못한 사회에 분노한 한 아이 민수의 극단적인 선택과 죽음은 바로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현실의 비참함을 그렇게 보여준다. 거대한 권력의 카르텔 속에서 한 인간이 얼마나 나약한지를 그리고 삶이 얼마나 비참해 질 수 있는지를. 어쩌면 이 영화는 성폭력에 대한 분노로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거대한 권력의 카르텔 돈, 정치, 법원, 경찰과 검찰 그리고 종교에 의해서 나약한 개인이 어떻게 짓밟히는지에 대한 분노로 만들어진 영화다. 그래서 영화를 보면서 아이들에게 자행된 폭력에 뜨겁게 분노하고, 그 폭력을 만들어내고 눈 감는 사회에 차갑게 분노해야 하지 않을까?
문제는 우리 사회는 제대로 분노하지 못한다. 서로에 무관심하고 자신의 현실이 더 중요하다. 불합리한 판결에 항의하고 민수의 죽음을 추모하기 위한 법원 앞 시위의 장면은 너무나 직설적으로 그런 우리의 모습을 보여준다. 물대포를 맞으며 민수의 죽음에 대해서 외치는 공유의 모습과 멀리서 그것을 그저 바라만 보는 일반 시민들의 모습은 그런 현실을 제대로 보여주는 장면이다. 세상을 저항하고 바꾸기보다는 그저 방관자로 머무르는 우리들의 모습을.
어쩌면 이 영화를 통해서 사람들은 뜨겁게 분노할 것이다. 죄값을 받지 못한 인간들에게 키보드 워리어들은 인터넷을 뜨겁게 달굴 것이다. 하지만, 한 순간에 뜨겁게 산화하고 말지 않을까? 영화를 보면서 뜨겁게 분노하라. 그리고 영화를 다 보고 난 후 차갑게 분노하라. 거대한 권력의 카르텔을 부셔버리고, 또 이와 같은 아이들 희생자가 나오지 않도록 방관자가 아니라 거대한 장벽 앞에서 쉽게 포기하지 않고 세상에 저항하는 행위자가 되기 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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