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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를 보고

내가 사랑하는 piff 역대 상영작 3편.

by 은빛연어 2011. 9. 30.

 김동호 집행위원장이 퇴임하면서 새로운 집행위원장이 취임하고 영화제의 공식 명칭도 변했다. piff라는 단어가 입에 너무나 익숙해서 그런지 아직도 biff라는 명칭이 익숙치가 않다. 새로 취임한 집행위원장의 이름도 잘 모르겠다. 사실 piff 를 처음 시작했을 때는 처음부터 piff에 관심을 가졌던 것은 아니였다. 처음 piff가 시작할 때 영화매니아라고 불릴 정도는 아니여서 그런지 별 관심이 없었다. 그런데 유난히 일본 애니메이션을 좋아했던 친구가 piff 1회 행사에 관심을 많이 보였다. 영화 매니아는 아니였던 친구인데 영화제에 관심을 가졌던 이유는 단지 piff 1회 행사에 일본 애니메이션이 대규모로 상영되기 때문이었다. 그때는 아직까지 일본 애니메이션은 수입 금지 된 상태였고, 그 당시 태동하고 있던 pc통신과 해적 cd를 통해서 일본 문화 매니아들이 뿐만 아니라 많은 사람들에게 암암리에 일본 애니메이션은 유통되고 있었다.

당시 piff에서는 국내에서도 처음하는 국제영화제 행사로 흥행에 대해서 신경을 쓰지 않을 수 없었는데, 젊은 관객들의 호기심을 불러일으키고 대중성을 확보하기 위한 방법으로 국내에서 어둠의 경로에서만 유통되던 흥행성 있는 일본 애니메이션을 상영작 목록에 포함시켰다. 지금 봐도 명작으로 꼽히는 작품들이 대거 그 때 상영된다. 공각기동대를 비롯해 메모리즈, 침묵의 함대 같은 작품들이 piff의 상징이었던 수영만 야외 상영장에서 상영되었다. 그런 작품들에 대한 정보를 이미 알고 있던 친구에 의해서 듣도보도 못한 일본 애니메이션을 보게 되었다. 그렇게 친구의 손에 이끌려 갔던 수영만 야외상영장은 쌀쌀한 날씨에도 불구하고 만원이었고, 더 신기했던 것은 정말 커다란 스크린과 이제 껏 보지 못했던 일본 애니메이션이었다. 별빛 아래서 바닷바람을 맞으며 처음 본 작품들은 강렬한 인상으로 아직까지 진한 추억으로 남아있다.

piff 1회 때의 너무나 좋았던 기억 때문인지, 2회부터는 열혈신도가 되었다. 영화제의 예매가 처음 시작되는 날 은행으로 달려가 보고 싶던 영화의 표를 끊었다. 그 당시는 지금과 같은 인터넷 예매시스템이 발달하지 않아서 은행을 이용하는 편이 더 빨리 보고 싶은 영화표를 구할 수 있는 방법이었고, 그 때까지만 해도 지금과 같은 열기는 아니여서 표는 쉽게 구할 수 있는 편이었다. 그래서 개인적으로 보고 싶어했었던 영화들 표를 대부분 구할 수 있었다. 실제로 piff의 제대로 된 매력을 느끼게 된 것은 2회 때부터 였다. 남포동에서 영화를 보고 나오면서 옆에서 인터뷰를 하는 배우 안성기를 가깝고 볼수도 있었고, 지금은 이름이 기억나지 않지만 다른 배우들도 가깝게 볼 수 있었다. 지금은 고인이 된 고 이은주가 피프 광장에 출현했을 때, 수 많은 인파들 때문에 간당 간당하게 상영관에 입장했던 기억도 떠오른다. 해운대의 공중화장실에서 배우 하정우 옆에서 볼일을 본 기억까지....

그렇게 눈 앞에서 배우들을 보는 것은 신기한 경험들은 재미있고, 아직도 좋은 추억거리들이다. 그래서 조금이라도 그런 재미를 더 추구하기 위해서 표를 예매할 때도 GV가 포함된 영화부터 선택하고, 가끔은 좋아하는 배우들이 야외무대 인사나 토크행사가 있으면 찾아가 보기도 했다. 이런 분위기를 다른 사람에게 전해 주고파 영화제에 관심이 없거나 모르는 사람들을 데리고 가기도 했다. 영화제의 이 느낌을 공유하고 싶은 마음에. 그렇게 영화제는 때로는 영화 외적인 것의 재미가 매력적인 경우도 있다. 하지만, 영화제의 가장 큰 재미는 정말 좋은 영화를 봤을 때가 아닐까?

진짜 영화제의 참재미는 극장에서 쉽게 보지 못하는 매력적인 영화를 접했을 때다. 요즘은 인터넷을 통한 어둠의 경로를 이용해 극장에서 보기 힘든 작품들을 구해볼수 있기는 하지만, 극장의 큰 스크린을 통해서 보여지는 영화의 참 재미는 작은 컴퓨터 모니터가 따라갈수가 있을까? 비디오가 출현하면서 극장이 망한다고 사람들은 생각했지만, 오히려 비디오가 인터넷의 출현으로 망하고 극장은 여전히 대중들의 사랑을 받는 것은 바로 그 때문이지 않을까? 그래서 영화는 극장에서 봐야 제대로 된 참맛을 느낄수 있다. piff를 통해서 봤던 영화들 중에서 가장 인상에 남았던 3편의 작품은 다시 보고 싶은 열망으로 그리고 그 때의 감동에 대한 아련한 향수로 진하게 기억된다.


영화 “메이드 인 홍콩”은 개인적으로 홍콩의 최고 감독으로 주저 없이 프루트 챈을 꼽게 만든 작품이다. 감독의 데뷔작인 이 영화는 홍콩의 중국반환을 앞두고 혼란스러운 홍콩의 모습을 그린 작품이다. 제작비가 없어서 모아두었던 짜투리 필름과 길거리에서 캐스팅한 아이들을 주연으로 내세우고 만든 작품이다. 어떻게 보면 어설프게 만들어진 저예산 영화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지만, 홍콩의 혼란스러운 모습을 주인공 아이들의 방황하는 모습을 통해서 매력적으로 보여주는 작품이다. 프루트 챈 특유의 유머도 보는 사람들로 하여금 박장대소하게 만든다. 어둡고 우울한 분위기의 작품이지만, 감독의 유머와 재치넘치는 연출이 어우러 지면서 묘한 매력으로 다가오는 작품이다.


영화 “쌍생아”는 츠카모토 신야라는 감독을 알게 해준 작품이다. “철남”, “총알발레”라는 작품으로 나름의 명성을 얻고 있었던 감독이다. 이전 작품을 보지 않아서 어떤 감독인지 몰랐는데, 이 영화는 일본공포 영화 특유의 색깔이 살아 있으면서도 뭐랄까 파괴적이고 독특한 매력이 인상적인 작품이다. 부유하게 자란 유키오라는 인물이 어느날 우물에 던져지게 되는데 순간 본 사람의 얼굴이 자신의 얼굴이다. 그 사람은 쌍동이 형 스테키치로 유키오를 대신해 유키오로 생활한다. 우물에서 탈출하려는 유키오와 이중생활을 하는 스테키치 그리고 자신의 과거를 기억하지 못하는 유키오의 아내 링이 복잡하게 얽히면서 영화는 펼쳐진다. 츠카모토 신야의 특유의 음울한 분위기와 색감 그리고 빠른 전개와 카메라 워크는 한 순간도 눈을 떼지 못하게 만드는 매력적인 작품이다.


 영화 “자살관광버스”는 별 기대하지 않았던 작품이다. 원래 보려고 생각하지도 않았던 작품인데, 친구의 손에 이끌려서 상영관에서 보게 되었다. 내 스타일의 영화가 아닐 것이라고 생각하고 기대치를 너무 낮게 잡아서 그런지 몰라도, 영화의 매력적인 이야기와 충격적인 반전은 강렬한 인상을 남겼던 작품이다. 삼촌을 대신해 투어여행에 참여한 미츠키는 이 투어여행의 진짜 목적이 무엇인지를 모른다. 함께 여행을 하면서 어느새 사람들은 웬지 모를 유대관계를 형성하게 되고, 자신들의 자살여행에 대해서 회의를 가지게 된다. 그렇게 투어의 마지막 날은 다가오고 이 여행의 목적을 몰랐던 미츠키는 삶에 대한 희망과 의지를 불태우지만, 투어의 마지막날 사람들은 자살관광버스에 오르게 된다. 이 영화는 죽음과 삶에 관해서 매력적인 성찰을 보여주는 작품이다. 마지막 반전이 어떤 사람들에게는 거부감이들수도 있겠지만, 그 반전은 인생에 대한 감독의 뛰어난 성찰이 보여준다고 생각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