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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들의 의식은 날로 높아져만 가는데 사회가 이상하게 변하다보니, 최근에는 전쟁의 무서움이나 그 속에 있는 인간애를 보여주는 영화보다 반공 영화 제작이 소식이 많이 들렸다. 뉴라이트라는 이상한 집단의 후원을 받으며 제작되는 영화가 있는가하면, 군의 업적(?)을 기린다면서 무슨 작전이 성공했다고 그걸 영화화하겠다고 하는 소식도 들린다. 실제로 제작에 들어가 완성되어 상영될 영화가 과연 몇 편이나 될지는 정확하게 알 수 없다. 하지만, 한국전쟁 60년 기념으로 만들어졌던 영화 "포화속으로"는 그런 진부함이나 시대착오적인 발상을 그대로 보여준 영화였고, 흥행에서도 시민들의 외면을 받았다. 그것만 보면 단순한 반공영화나 정부나 군을 찬양(?)하는 식의 계몽영화는 시민들의 외면을 받을 수 밖에 없다.
경제의 논리라는 것도 별로 좋아하지 않지만, 영화 산업에 정치의 논리가 우선하는 지금의 상황이 우습기만하다. 그로 인해서 전쟁은 절대로 일어나지 않아야 한다는 진리는 뒤로하고 적을 무너뜨리고 이겨야 되는 것이라는 인식이 퍼지는 것 같다. 전쟁이나 적에 대한 인식이 분노와 증오 그리고 반공이라는 잣대로 변하가고 있는 세상에서 전쟁 속에서도 죽지 않는 인간애를 그린 영화 "적과의 동침"은 그래서 반가운지 모른다. 전쟁과 이념의 광기가 아니라 사람에 대한 정과 생명의 소중함을 통해서 우리가 전쟁을 어떻게 봐야하는지를 보여주기 때문이다.
영화 "적과의 동침"은 시나리오 작가인 할머니의 경험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그래서 영화 엔딩자막이 올라갈때 그 할머니와 다른 할아버지 한분이 등장해 인터뷰한 장면을 보여주면서, 전쟁 속에 실제 했던 인간애를 더욱 강조하고 있다. 하지만, 실화가 가지고 있는 이야기의 매력은 영화 속에서까지 빛나지 못하는 것 같다. 영화의 중요한 양념인 북한군 장교 김정웅과 마을의 교사 박설희의 깊고 내밀한 감정의 표현도 생각만큼 공감을 얻기에는 부족해 보인다. 너무 순박하고 착했던 마을사람들 때문이랄까? 다른 영화 속 인물들이나 이야기도 너무 착한 것 같다.
그러다보니 영화의 갈등구조가 생각보다 미약하다. 석정리 마을 사람들의 갈등 대상은 주로 김상호가 연기하는 백씨와 그가 살고 있는 마을과의 갈등이다. 갈등과 화해의 과정을 통해서 싹트는 인간적 감정의 대상은 북한군과 마을사람이어야 함에 불구하고, 북한군은 빠져있는 느낌이 강하다. 그래서 가장 큰 내적갈등을 경험하는 대상은 김주혁이 연기하고 있는 김정웅 밖에 없다고 생각이 들 정도다. 같이 오랜 시간을 보내다보면 자연스럽게 서로에게 끌리는 것이 인간의 감정이라고 생각해서 그런지 몰라도 마을사람들과 북한군사이의 감정변화에 대한 개연성이 떨어질 수 밖에 없다.
그래서 영화의 재미를 이끄는 것은 다양한 캐릭터의 마을사람들이다. 명품 조연 배우 유해진, 김상호와 그 밖의 다른 배우들이 영화의 소소한 재미를 만들어 낸다. 큰 이야기가 가지는 매력을 표현하는 연출력이 조금 부족하다 보니, 살아있는 이런 조연 캐릭터들이 더 매력적으로 부각되는 느낌이 든다. 그러면서 갈등의 중심에는 김주혁이 연기한 김정웅 혼자만의 고뇌만 존재한다.그래서 마을에 큰 파국을 일으키는 인민군 연대장과의 김정웅의 격한 감정 대립은 영화의 마지막에서만 존재하게 된다. 물론 중간에 갈등의 복선이 있기는 하지만, 충분하지 못하다.
결국 영화 전반에 소소한 재미와 감동은 있지만, 영화의 마지막 파국상황에서 애절함이나 슬픔이 부족한 상태가 되어 버린다. 한마디로 관객들의 눈물샘을 자극하기에 많이 부족해 보인다. 영화가 관객에게 무엇을 전해 주려고 했는지 정확하게 모르겠지만, 전쟁 속에 존재하는 인간애를 보여주는 것 이상의 감동이나 슬픔을 엮어내지 못했다. 개인적으로는 충분히 매력적인 이야기라고 생각하는데, 관객의 감정선을 자극하는데 실패하면서 영화의 감동이나 재미는 잡는데 실패한 작품이 될 것 같은 생각이 든다.
적과의 동침 -
박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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