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영화를 보고

거대한 이야기가 순식간에 멜로에 묻혀버린 영화. 영화 "상하이"를 보고

by 은빛연어 2011. 1. 31.
 유명 배우 공리가 방한까지 하면서 영화의 홍보에 박차를 가했던 영화 "상하이". 공리의 방한이 아니더라도 존 쿠삭, 주윤발, 공리 그리고 와타나베 켄으로 이어지는 출연진의 면모만으로도 관객들의 호기심을 자극하고 시선을 사로잡는다. 모두 강한 개성뿐만 아니라 연기력까지 갇추고 있기에 많은 팬들을 확보하고 있는 배우들이라 보니 자연스레 관심을 가질 수 밖에 없다. 거기에 일본의 진주만 공격이 일어나기 전 상하이를 배경으로 펼쳐지는 치열한 첩보전쟁을 그리고 있다는  시놉시스 또한 매력적이다. 이러한 조건들 때문인지 몰라도 영화 "상하이"에 대해서 기대감이 컷다. 

 영화는 그런 기대 만큼 긴장감 있게 시작했다. 폴 일행이 막 상하이에 도착했을 때부터 펼쳐진 저항군과 일본군의 총격전은 당시 상하이의 상황과 일본제국의 힘을 함축적으로 보여준다. 아직까지는 많은 나라들이 서로의 발톱을 숨긴 채, 평화를 가장하고 있는 상황에서도 벌어지는 이런한 일들이, 앞으로 상하이에서 일어난 변화들의 단면을 보여주는 것 같다. 거기에 폴의 친구가 골목에서 살해당하는 장면이 긴장감 있게 보여질 뿐만 아니라, 아편에 찌든 친구 정부의 모습 등이 실감나는 시대상황을 물론 풍전등화에 놓인 중국의 무기력함이나 암울함을 인상적이게 보여준다.

 폴은 암울함과 일촉즉발의 긴장감이 팽배한 곳에서 친구가 죽기전에 만나기로 한 카지노에서 친구를 기다린다. 거기서 미모의 애나를 보게 되고, 호감을 가지게 된다. 약속한 친구는 나타나지 않고, 다음 날 죽검으로 변한 친구를 대면하게 된다. 본격적으로 폴은 친구의 죽음과 친구가 수집했던 정보들을 추적하기 시작한다. 우선 인맥을 넓혀서 정보의 접근성을 올리기 위해서 독일 대사관 파티에 참석한다. 거기서 상하이 삼합회 보스 앤소니와 일본군 정보장교 다나카 대좌와 안면을 익히고, 거기서 애나를 다시 만나게 된다. 애나가 앤소니의 부인이라는 사실도 알게 된다. 

 독일과 일본의 수상한 움직임을 조금씩 파악하기 시작한 폴은 친구의 죽음과 관련이 있을거라는 확신을 하게 된다. 그래서 친구가 죽기 전에 일본인 여인의 여권을 준비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알게되고, 일본인 여인을 추격하기 시작한다. 그 과정에서 애나의 은밀한 이중생활을 조금씩 알게된다. 영화는 당시의 시대상을 바탕으로 물 밑에서 펼치는 각국의 첩보전과 일본에 저항하는 중국의 저항군의 모습을 치열하게 보여준다. 거기에 애나와 폴의 미묘한 관계가 더해지면서, 영화의 긴장감이 팽팽하게 유지된다. 

 하지만, 영화의 긴장감과 긴박함은 영화의 마지막에 가면서 급속도로 허무하게 바뀌어 버린다. 폴이 지금껏 추격하던 친구의 죽음과 거대한 음모 그리고 진실이라는 것이 너무 허무한 것이다. 사건의 키를 쥐고 있는 묘령의 일본인 여인을 전면에 내세우면서 부각되는 뜬금없는 러브라인 또는 애뜻해 보일 수 있는 사랑이 영화의 전반적인 내용을 완전히 망쳐버린다. 영화 속에 미묘한 기운을 형성했던 폴과 애나의 관계도 그냥 흐지부지 사라져 버린다. 크레딧이 올라가기 전에 폴은 애나가 있는 상하이로 다시 돌아갔다는 식으로 마무리 하지만, 두 명의 정부를 옆에 끼고 살던 앤소니가 마지막에 보여준 진실한 사랑에 무의미 해보인다.

 그렇게 영화는 복잡한 이야기의 초점을 명확하게 잡지 못한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이야기의 전반을 이끌어가는 폴과 애나의 관계나 감정라인도 명확하게 살리지 못하고, 그렇다고 폴이 추적하는 거대한 사건과 음모를 명확하게 보여주는 것도 아니고. 영화의 초반부터 중반까지 관객에게 팽팽한 긴장감을 전해줌과 동시에 큰 기대감을 가지게 만들었지만, 마지막에서 너무 허탈하다. 한마디로 거대한 시대적 상황이 만들어내는 이야기가 순식간에 부각되는 사랑이야기에 무너져 버린 영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