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등학교 국민윤리 시간에 선과 악에 대한 두 가지 학설을 배웠던 기억이 난다. 그 두 가지는 사람의 타고난 본성은 악하다고 주장했던 순자의 성악설과 반대로 사람의 타고난 본성은 선하다고 주장했던 맹자의 성선설이다.학창시절에는 의문보다는 시험을 위해 외우기에 급급했었기에 그런 학설이 있다고 알아두고, 살아가면서 만나거나 뉴스로 접하는 사람들을 보면 가끔 사람은 타고난 본성은 선한지 악한지에 대해서 의문을 많이 가지게 된다. 하지만, 얼마 살지 않은 미천한 경험과 부족하기 그지 없는 지식으로 어느 것이 옳다고 쉽게 결론 내리기는 쉽지 않다. 어린 여학생을 성폭행하고 무참히 살해한 인간을 보면 원래부터 원래 인간은 악하다고 생각하기도 하고, 어떤 범죄를 저지른 사람의 환경이나 이유를 알게 되면 사람은 선한데 의도치 않은 현실 때문에 그렇게 되었다고 생각하기도 한다. 상황에 따라서 이 학설 저 학설을 왔다갔다할 뿐이다.
지금에야 조금씩 인간의 본성을 그렇게 이분법으로만 재단하는 것이 위험한 생각이 아니냐고 느끼게 된다. 원래 인간이라는 동물이 한마디로 정의하기 힘든 복잡한 존재인데, 단순히 인간의 본성을 선하다 악하다고 말하는 것은 인간의 복잡성을 깊이 이해하는데 방해하는 작용을 한다는 생각이 든 것이다. 같은 배에서 태어난 쌍둥이도 자라면서 생김새도 조금씩 차이가 나고 성격이나 습관도 조금씩 차이가 나는데, 인간이라는 공통점 외에는 전혀 찾을 수 없는 사람들의 본성을 두 가지의 학설로 생각한다는 것은 사람의 본래 깊이를 전혀 고려하지 않은 것이 된다. 그래서 아무리 선한 사람에게도 잘 알려지지 않는 악한 면이 존재하기도 하고, 악한 사람에게도 선한 면이 존재하기도 한다고 생각하지 않으면 잘못된 편견과 고정관념으로 사로잡히게 된다.
요즘은 사람의 본성에 대한 단순한 구분은 점점 사라지는 것 같다. 아무리 슈퍼 영웅이라고 해도 복합적인 인간적 고뇌와 내면을 그리는 작품들이 많이 등장한다.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 주연의 "아이언 맨"같은 작품을 봐도, 자기애가 지독하게 강해서 자신이 아이언 맨이라는 것을 숨기지 못하는 영웅을 보여준다. 정체를 숨기기보다는 오히려 당당하게 밝히는 것은 물론이고 쇼맨십까지 보여준다. 도덕적으로 고결하고 순결해야만 하는 영웅이라는 이미지에 새로운 색깔을 입힌 것이다. 뿐 만이니라, 선악에 대한 절대적인 구분도 점점 사라지고 있다. 순자의 성악설에 해당하는 듯한 존재로 보이는 지독한 악당들의 존재가 잘 등장하지도 않는다. 처음부터 악당이었던 것이 아니라 어떤 이유에 의해서 악당이 되었다는 이유를 만들어 준다. 그래서 악당에 대한 증오보다는 연민을 느끼게 만들기도 한다.
영웅이나 악당이라는 존재는 어쩌면 환경에 의해서 만들어지는지도 모른다. 그들이 자라온 환경과 관계를 주고받은 수 많은 사람들에 의해서 사람의 영향 등이 하나씩 모이고 쌓여서 한 사람의 인격이 완성되는 것이 아닐까? 드림웍스의 3D 애니메이션 "메가 마인드"는 환경에 의해서 악당이 된 인물을 보여준다. 외계별의 멸망으로 지구로 불시착하게 되는 두 명의 외계인의 삶을 비교해 보여주면서, 환경의 영향으로 전혀 다르게 성장한 모습을 보여준다. 부자집이라는 좋은 환경에서 자란 사람과 교도소에서 재소자들 틈에서 자란 사람의 비교는 물론 학창시절의 모습까지 다르게 보여준다. 그래서 영웅은 어떻게 탄생하고 악당은 어떻게 탄생했는지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쉽게 이해하게 만들어 준다. 선과 악이라는 것도 환경의 영향을 많이 받는다는 것을 보여준다.
하지만, 이 작품은 이런 차이를 넘어서 악당에게도 영웅이 될 수 있는 기회를 부여한다. 환경에 의해서 사람은 달라질 뿐만 아니라 환경에 의해서 사람은 또 변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다. 영화 "메가 마인드"는 사람이 변할 수 있는 한가지 요소로 "사랑"이라는 것을 보여준다. 악당 주인공 메가마인드가 사랑하는 사람이 생기면서 악당의 가치관이 조금씩 변하는 과정에서부터 결국에 도시와 사랑하는 사람을 구하기 위해서 악당과 맞서 싸우게 되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다. 이 작품은 사람은 다양한 영향으로 그 사람이 완성되어가고, 악한 사람도 "사랑"의 힘으로 변할 수 있다고 말한다.
애니메이션 "메가 마인드"에서 악당을 변화시키는 힘이 "사랑"이라는 것을 보여줬다면, 애니메이션 "슈퍼배드"는 순수한 아이들의 힘이 악당을 변화시키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 아이들이 순순하다고는 하지만, 사실 아이들만큼 어른들에게 괴로운 존재가 있을까? 순수하고 철없어서라고 한번에 말하기에는 그들의 장난과 말썽은 가끔 작은 꼬마 악마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어른들을 괴롭히는 존재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아이들의 순수함이 어른들을 바꾸는 것은 그 만큼 그들의 행동에 악의가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아이들의 그 순수함에 어른들은 조금씩 변화하기도 한다.
애니메이션 "슈퍼배드"는 악당 "그루"와 세 명의 소녀들 영향으로 선하게 변하는 과정을 보여주는 작품이다. 원래 그루는 최고의 악당이 되기 위해서 노력하는 악당이다. 하지만 갑작스러운 라이벌이 등장하고, 그 라이벌이 자신이 훔치려 했던 축소광선총을 빼앗아 가버리게 되고, 그것을 되찾기 위해서 세 명의 소녀를 입양하게 된다. 자신의 악행에 이용하려고 했던 소녀들을 이용하려고 했던 그루는 그들과의 생활을 통해서 조금씩 변해간다. 그러면서 자신의 악행에 조금씩 차질이 생기고, 결국에 다시 아이들을 돌려보낸다. 하지만 아이들의 소중함을 알게 된다. 철없어 보이는 아이들의 순수함이 악당 그루를 조금씩 변화시키는 과정을 보면, 아이들의 순수함 만큼 사람을 선하게 만다는 것이 없다는 생각을 하게 만든다.
개인적으로는 종교에 대해서 비판적인 생각을 많이 가지고 있다. 종교가 종교를 넘어서 사람의 절대적 가치를 차지하면서 일어나는 악행들이 너무나 많이 보았기 때문이다. 종교가 가지고 있는 사랑이라는 가치는 사라지고, 그 종교가 절대적이기 때문에 이 종교만이 최고라고 강요하는 순간 그것을 어떻게 종교라고 생각할 수 있을까. 그럼에도 여전히 종교에는 어떤 가치가 존재한다. 이성간의 사랑이 아니라 만인에 대한 보편적인 사랑은 혼탁한 세상에 등불과도 같은 존재이기 때문에. 그래서 그 가치는 악한 사람을 선하게 만들기도 한다. 잔혹한 범죄자도 어느 순간엔가 종교에 귀의해 변한 모습을 쉽게 보게 되는데, 그게 바로 종교가 가진 커다란 힘이 아닌가.
영화 "솔로몬 케인"은 악마와 같은 해적이라고 불리던 솔로몬 케인이 종교에 참회하고 악마와 싸우는 과정을 보여준다. 원래 솔로몬 케인은 사람을 무참하게 죽이고 약탈을 일삼던 해적이었는데, 어느 날 포로를 구출하기 위해 공격한 성에서 자신을 끌고 가려는 악마를 만나게 된다. 천신만고 끝에 도망쳐 나오게 된다. 자신의 악행을 용서받고 영혼을 구원받기 위해서 수도원에 칩거하게 된다. 종교의 힘으로 악마의 손아귀에서 잠시 벗어난 케인은 수도원을 떠나 길을 떠나게 된다. 우연히 한 가족을 만나게 되고 가족의 정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하지만 악마의 군대에 그 가족은 몰살당하게 되고 큰 딸은 납치된다. 이제 케인은 악마와 싸우기 위해서 다시 칼을 들게 된다.
이 영화에서 케인은 악마라는 존재의 공포를 통해서 자신의 추악한 영혼을 대면하게 된다. 그렇게 자신의 영혼을 바라봄과 동시에 자신의 영혼에서 악을 몰아내고 구원받기 위해서 종교에 귀의한 것이다. 처음에는 악마로부터 도망을 그 다음에는 영혼의 구원이라는 목적으로 종교를 이용하지만, 결국 자신 안에 선함을 조금씩 찾아간다. 결국에 그는 악을 위해서 칼을 드는 것이 아니라 정의를 위해서 칼을 들고 악과 싸움을 시작한다. 이 영화는 악당을 변화시키는 "종교"의 힘을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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