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반적으로 어두운 화면과 갑갑한 관속이라는 설정은 영화를 보는 내내 불편했다. 폐쇄공포증 이런 것은 아니지만, 현실감 있는 연출과 연기가 보는 사람을 갑갑하게 만들 정도로 뛰어나다고 해야 할까. 공중전화 부스 안에서 영화 전체를 이끌어 갔던 "폰부스"라는 작품을 보면서 그 연출력과 콜린 파렐의 압도적인 연기를 보면서 대단하다는 생각을 했던 적이 있었는데, 이 영화는 그것보다 더 좁은 공간, 아니 정확하게 말하면 극단적으로 폐쇄적인 공간에서 하나의 완성된 이야기를 보여준다. 영화를 거의 혼자 이끌어가는 라이언 레이놀즈의 연기 또한 대단하다라는 생각 밖에 들지 않는다.
영화의 시작부터 상당히 부담스럽다. 그냥 컴컴한 스크린만이 눈에 들어오고 스피커에서는 한 사람의 숨소리와 움직이는 소리가 들린다. 당황스럽기도 하고, 들리는 숨소리가 전해주는 갑갑함이 불쾌함 마저 야기한다. 어느 순간 라이터의 조그만 불빛에 조금씩 밝아지는 스크린을 통해서, 칡흑 같은 어둠이 만들어주는 불쾌감이나 당혹감과는 다른 느낌을 만들어 낸다. 이 영화의 기본적인 시놉시스를 알고보는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조금씩 밝아지면서 드러나는 주인공의 상황과 현실은 마치 내가 갇혀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들게 만든다. 조그만 불빛을 통해서 주인공이 자신의 상황을 인식하는 것처럼, 스크린을 통해 보는 관객들도 조금씩 밝아지는 빛을 통해서 상황을 인식하게 만드는 것 같은 느낌이 들 정도다.
영화는 본격적으로 자신이 갇힌 상황을 인식한 주인공이 그곳을 탈출할 방법을 모색하기 시작한다. 발 아래에서 발견한 휴대폰으로 자신을 가둔 테러리스트와 통화를 하고, 자신이 실제로 도움을 받을 만한 곳에 하나 둘 씩 전화를 하게 된다. 당사자의 절박함은 외면한 채, 사무적인 태도를 보이거나 주인공의 다급한 상황이 만들어낸 폭력적인 언어만을 문제 삼는 사람들을 보면 정재영이 주연을 했던 "김씨 표류기"가 생각난다. 멀리 떨어져있는 사람과도 편리하고 쉽게 소통하기 위한 도구인 것이 전화기인데도 벽과 대화하는 듯했었는데, 이 영화에서 그런 모습을 보여준다. 그런 모습들이 단지 영화 속의 모습이 아니라 우리가 살고 있는 현실의 모습이라는 점에서 커뮤니케이션 수단의 발전이 결코 인간의 관계를 깊게 만드는 것은 아닌 것 같다.
많은 사람들은 사람과 사람의 소통에 있어서 중요한 것은 언어라고 생각하지만, 억양과 제스처 그리고 표정과 같이 언어 외적인 요소들이 대화와 소통에서 더 많은 비중을 차지한다. 보통의 여성들이 소위 말하는 눈치가 남성들보다 빠른 것도 대화할 때, 비언어적 요소를 해석하는 능력이 뛰어나기 때문이다. 하지만, 소통을 편리하게 해 준다는 첨단기기와 인터넷이라는 환경은 비언어적의 전달을 배제한다. 우리는 소통의 도구라고 열심히 이용하고 사용하지만, 실제로는 영화에서 보여지는 것처럼 정확한 소통을 방해하는 요소로 작동하는 것이 아닐까? 이 영화가 보여주는 또 다른 갑갑함은 첨단 소통의 도구를 가지고도 제대로 소통하지 못하고 갈등하는 현실사회의 소통부제다.
주인공의 휴대폰 베터리가 하나 둘씩 줄어들고, 테러리스트가 정한 데드라인이 점점 가까워지면서 영화의 긴장감은 극에 달한다. 죽음이 다가온다는 절박감과 함께 구출될 수도 있다는 희망이 휴대폰을 통해서 동시에 전해진다. 희망과 절망이 교차는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긴장감을 배가 시킨다. 마치 희망과 절망의 교차하면서 주인공을 고문하듯이 보는 사람도 같이 고문 당하는 것 같다. 그렇게 스크린으로 보여지는 데로 전해지는 느낌도 강렬하지만, 상황이 만들어내는 한 인간의 고립감은 더 큰 갑갑함을 전해준다.
사회적 동물이라는 인간이 실제로는 얼마나 파편적인 존재인가를 이 영화는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인간이라면 사회생활을 하면서 기본적으로 속하는 사회, 가장 기초적인 가정이라는 사회, 그리고 일이라는 것을 하면서 속하는 회사라는 사회, 마지막으로 그런 것들을 제공해주는 가장 큰 사회인 국가 중에서 가정을 제외한 다른 사회라는 집단에서 하나의 개인이라는 존재가 하찮게 희생되는 것을 영화는 보여준다. 영화에서 보여주는 기업이라는 집단의 사악한 모습은 노동자라는 존재가 기업이라는 사회나 집단에게 하찮은 부품이라는 것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영화의 상황이 조금은 극단적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지금도 많은 노동자들은 영화 속 회사의 저질스러운 행패에 의해서 자신의 삶이 피폐해지고 있다는 것을 본다면, 영화는 가상이 아니라 현실로 다가온다.
우리는 국가의 주인은 국민이라고 착각하면서 산다. 영화에서는 그런 착각을 보기 좋게 깨어버린다. 한 사람의 국민이 국익이라는 명목으로 얼마나 무참하게 짓밟히는지를. 하지만, 많은 사람들은 그런 국가관을 당연하게 여긴다. 한 사람의 생명보다도 국가의 이익을 중요시하는 나라가 우리가 살고 있는 대한민국이라는 것을. 국가를 위해서 해외에서 일하던 현역 군인이 1년간 수감생활을 했는데도, 무관심하게 방치했다는 뉴스가 이 리뷰를 쓰는 오늘 나온다. 그렇게 우리사회가 공리주의나 국익을 앞세운 국가관 앞에서 개인은 얼마나 하찮게 여기는지를 눈으로 직접 보고 체험하지만, 자신이 그 상황에 있지 않기에 여전히 추상적인 국익이나 공리주의를 최선의 가치로 추구하는 국가라는 사회의 구성원으로써 서글프게 살아간다.
한
사람이 관속에 갇혀서 죽음의 공포와 싸우는 과정을 보여주는 이 영화는 스크린을 통해서 보여주는 공간적 갑갑함 이상의 것을 보여준다. 사회적 동물이라는 인간이라는 존재가 사회 속에서 얼마나 파편화된 존재이며, 사회 속에서 얼마나 보잘 것 없는 존재인지를 정확히 통찰함으로써 개인과 사회에의 관계에서 오는 갑갑함은 지금 숨막히는 현실을 반영해 보여준다. 사회를 구성하는 개인과 개인의 관계와 소통이라는 것도 첨단기기라는 것에 의해서 얼마나 연약하게 연결된 끈으로 존재하는지를 무섭게 보여주는 영화다.
베리드 -
로드리고 코르테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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