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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고

꿈조차 꿀수 없는 청춘들. 책 "제리"를 읽고...

by 은빛연어 2010. 11. 8.

제리
카테고리 소설 > 한국소설 > 한국소설일반
지은이 김혜나 (민음사, 2010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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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플라톤에 인용 " 일을 하고, 자신을 알라."라는 말에 대해서, 몽테뉴는 이렇게 말했다. "자기 일을 하려는 자는 먼저 자기가 무엇인가, 그리고 자기에게 적당한 일이 무엇인가를 알아야 한다는 것을 깨달을 것이다. 그리고 자기를 아는 자는 남의 일을 자기 일로 혼동하지 않는다. 그는 무엇보다도 먼저 자기를 사랑하고, 자기를 가꾸며, 쓸데없는 일이나 생각을 제안 받기를 거절한다.". 어떻게 보면 너무나 당연한 이야기이지만, 자신의 전공조차 살리지 못하고 아무 관련 없는 일하는 사람들이 많은 현실에서, 자신에게 적당한 일이 무엇인지 알고 일을 하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치열한 경쟁사회에서 어쩌면 많은 사람들은 자기가 무엇인지 진지하게 고민할 순간도 가지지 못하고, 그냥 숨가쁘게 살아왔기에 자기 자신을 정확하게 바라볼 기회조차 가지지 못했던 것은 아닐까?

 

 보통 10 시절의 사춘기와 방황은 누구나 자신의 정체성을 고민하는 시기이지만, 경쟁과 학업이라는 현실에서 제대로 사춘기적 고민은 사라지는 같다. 제대로 사춘기적 고민. 어른이 지금, 시절을 생각해보면 우습기도 하고 철없을 그냥 지나가는 과정이라는 편한 생각이 들기는 하지만, 당시에 얼마나 심각하게 자신의 인생과 세상에 대해서 고민을 했었던가. 삶이 죽을 만큼 괴롭기도 했고, 자신과 주변의 여러 가지에 대한 고민에서 나오는 이유 모를 짜증과 분노들. 우리는 그런 과정들을 통해서 자기 자신을 진지하게 바라보고 생각하기 시작한다. 하지만, 어린 시절을 잃어버린 아이들 아니 입시에 시달려야만 했던 대한민국의 사람들은 과연 자신이 진정으로 원하는 꿈을 알고  있을까? 사춘기라는 시기를 제대로 통과하지 못해서, 대학시절에 방황하는 청춘들이 얼마나 많은가.

 

 소설 속의 주인공인 "" 여령 언니 그리고 미주의 술자리 대화 내용이 문득 이런 생각을 하게 만든다. 미주가 지나가듯 던지는 "언니는 꿈이 뭐예요?"라는 마디의 말에 미주는 시를 쓰고 싶다고 하고, 예쁘게 생긴 여령 언니는 좋은 곳에 시집가는게 꿈이라고 한다. 그리고 주인공인 "" 꿈이 없다고 말한다. 책을 읽다가 나도 대답을 생각해보지만, 단번에 떠오르는 것이 없다. 주인공인 ""처럼 꿈이 없는 것일까? 만보고 살기에도 바쁜 현실에 꿈을 잊어버린 것일까? 정확하게 무엇 때문인지 수가 없다. 분명 어린 시절에는 알지도 못하면서 꼬맹이 시절 과학자가 되겠다고 말했던 기억은 나는데…

 

 어쩌면 중에서 "" 제일 현실적인 대답을 것인지도 모르겠다. 지금 꿈에 대해서도 명확하게 말도 못하는 놈이 다른 사람의 꿈에 대해서 왈가왈부하기는 그렇지만, 쓰는 연습이나 노력이 없이 막연하게 시를 쓰고 싶다는 미주는 꿈이 아니라 막연한 생각일 뿐이고, 얼굴이 예쁘니 좋은데 시집가겠다는 여령 언니는 그냥 삶의 흐름에 자신을 맡기겠다는 소리일 그것을 꿈이라고 있을까? 그들은 그렇게 밖에 말할 없었던 것일까? 미래에 대한 꿈과 목적이 없이 단지 대학 졸업이라는 간판을 위해서 삼류대학을 다니고 있는 그들의 현실이 학벌사회라는 거대한 장벽 앞에서 많은 청춘들은 꿈마저 없게 되어 버린 것은 아닐까? "맨발의 "이란 영화에서 "가난하다고 꿈까지 가난해야 ?"라고 말하던 박희순의 대사가 문득 스쳐 지나간다.

 

 의사를 부모로 자식은 의사가 가능성이 크고, 법조인을 부모로 아이들은 법조인이 가능성이 크다. 그렇듯 사실 환경이 꿈과 성취에 대해서 많은 영향을 준다. 가난한 사람들은 가난의 굴레를 쉽게 벗어나지 못하고, 그들의 꿈도 자신의 환경 내에서 결정된다. 미국 슬럼가의 많은 아이들이 자라서 갱이 되어 감옥에 가는 경향이 높은 것도 그들이 살아오면서 환경 속에서 그들의 꿈이 영향을 받기 때문이듯이. 서글프지만 가난하면 꿈도 가난해지는 것은 사실이다. 문득 자기 가족과 아이들을 위해서 인생계급을 바꿔야 된다 열변을 토하던 친구가 떠오른다. 세상의 현실을 나보다 정확하게 꿰뚫고 있었지만, 욕심 없고, 모질지 못했던 친구는 이젠 그런 계급투쟁보다는 정신적 완성을 위해서 살고 있지만… 아마 친구는 속세의 욕망이 충만했던 것이 아니라 그것에 환멸을 느꼈고, 오히려 높은 가치와 이상에 대한 열망이 컸던 같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환경의 영향을 쉽게 무시한다. 현실을 보기 보다는 누군가의 성취만을 보고 다른 것들을 완전히 배제해버리고 말한다. 다른 아이들이 책을 많이 읽는다면 자신의 아이들에게 독서를 많이 하라고 강요하지만, 정작 자신들은 책을 거의 읽지 않는다. 독서를 많이 하는 아이들의 부모들을 분석해보면 대부분 그들도 책을 많이 읽는 사람들이라는 사실을 외면하면서. 사람들은 결과에만 집중한다. 그래서 다른 사람의 처지에 대해서 현재만 보고 쉽게 말한다. "이게 잘못이야"라고. 자신이 이뤄낸 성취나 결과물이 마치 자신의 힘으로 이루어낸 것이라고 생각해, 그렇지 못한 사람들에게 냉혹한 시선을 쉽게 보낸다. 자신이 무언가를 성취하기 위해서 뒷받침 해준 많은 것들이 마치 존재하지 않았던 것처럼.

 

 다양한 환경적 요인과 원인은 보지도 않고, 탓이라고 몰아붙이는 사회에서는 성공도 눈에 보이는 결과인 부와 권력이라는 것을 쉽게 획일화 되어버린다. 그리고 그것을 획득하기 위한 길과 통로라는 것도 획일화 되어 버린다. 그런 결과를 성취한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눈에 보이는 것들이 바로 길과 통로가 된다. 좋은 학벌이 있어야 하고,  "" 돌림의 직업을 가져야만 하는 세상으로 바뀌어 버린다. 개인의 적성과 꿈이라는 것은 획일화 되어 버린 성공의 공식에 맞추어 결정되어 버린다. 어쩌면 자기 자신을 아는 것은 시간 낭비일 뿐이다. 자기 자신을 정확하게 바라볼 시간에 그냥 사회의 기준에 맞춰서 행동하면 되기 때문에 이상 꿈을 필요가 없어져 버린다.

 

 그래서 이미 그런 경로를 이탈한 사람들에게는 꿈이라는 것이 없는 것은 당연할지도 모른다. 자신을 모르기에 다른 길이 있다는 것을 지금껏 생각해본 적이 없으니. 여령 언니와 미주 그리고 "" 명확한 꿈이 없이 술과 유흥 그리고 사랑이 없는 무미건조한 섹스로 청춘을 보내는 것도 어쩌면 마음대로 꿈을 꾸며 성취할 환경이 없는 사회에 대한 절망과 반항의 표현이 아닐까? 특히 세상에 대한 반항으로 "" 피어싱을 때는 마치 피부를 뚫는 듯한 끔찍한 느낌과 아픔이 전해진다. 사회라는 괴물이 만들어 놓은 거대한 덫에서 좌절한 보잘것없는 청춘들에 대한 슬픔이. 지금의 모든 것에 대해서 자신의 잘못이라고 손가락 받고 있는 많은 청춘들, 그들은 그렇게 꿈도 없이 방황하거나 그들만의 소심한 반항으로 자기를 학대하게 뿐이다.

 

 우리는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가 자유민주주의 국가로 기회의 평등을 보장해서 자신이 원하는 꿈을 있고, 노력만 하면 꿈을 이룰 있다고 생각한다. 부모의 재력과 학벌 그리고 직업에 따라서 아이들의 학력성취가 결정된다는 많은 통계자료가 이미 우리 사회의 현실을 반영하고 있는 사실을 외면한 . 사회가 만든 꿈인 돈과 권력이 있고, 거기에 이르는 통로와 길은 이미 정해져 있으니 하면 된다고 그냥 믿는 것일까? 아니면 개천에서 용이 소수 사람들이 만들어낸 환상에 취해서 현실을 피하려는 것일까? 한가지 명확한 사실은 정확히 현실을 인식하고 좌절하는 청춘들에 비해서 우리는 그런 환상에 속아서 우리가 만든 사회라는 괴물에 대해서는 맹목적인 복종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괴물에 소심하게 저항하고 반항하는 청춘들에게 그렇게 쉽게 돌을 던져야 할까?


제리 - 8점
김혜나 지음/민음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