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부도둑 - 장회익 지음/생각의나무 |
우리에게 공부의 의미는 무엇일까? 출세를 하기 위한 도구이자 길? 아니면 좀 더 높은 계층을 위한 필요조건? 공부를 왜 해야 하는 기본적인 물음에 대한 답보다는 이와 같이 미래의 지위나 부를 위해서 공부하기를 강요당해왔다. 우리들의 부모나 지금의 우리는 공부의 의미보다는 공부가 가져다 주는 소수의 결과를 맹신하고 시험으로 줄 세우는 경쟁사회로 자신과 아이들을 채찍질 한다. 결국에는 공부의 진정한 의미나 재미를 느껴보지 못한 채 의무감이나 어쩔 수 없이 해야 한다는 절박감에 공부를 하게 된다. 그렇게 시작한 공부 일지라도 깊이가 있는 것이면 좋겠지만, 공부하고 있는 학문의 참된 정수를 깨닫는 공부를 하는 사람은 얼마 없다. 이해와 깨달음이 있는 진정한 공부보다는 지식의 암기에만 열중하는 한계를 벗어나지 못한다. 기억된 지식의 테두리 안에서만 자신의 능력을 발휘하게만 되고 다양한 학문과의 응용뿐 만 아니라, 조금이라도 기존 지식의 틀을 벗어나면 당황하는 한계를 만들어낸다. 개인들은 천만원이 넘는 등록금을 대학에 쏟아 부으며 공부를 하지만, 대학의 학문과 기업이 요구하는 학문의 괴리가 커서 기업들이 신입사원들의 재교육에 많은 돈을 재투자하는 아이러니를 만들어낸다.
세계에서 가장 많은 시간을 공부에 쏟아 부으면서도 다른 한쪽에서 학력이 계속 저하된다고 아우성이다. 학생들을 더 공부시켜야 된다며 말하고 0교시를 부활하고 학원의 교습시간제한 마저 폐지하자고 외친다. 더 많은 공부를 시키는 것이 최선의 방법이라고 맹신한다. 지나친 학습부담에 청소년들의 자살률이 세계최고인 나라에서 더 많은 청소년들이 자살하도록 강요한다. 왜 학력이 떨어지는 것일까에 대한 물음은 둘째 치더라도, 진정한 공부가 무엇인지에 대한 진지한 물음은 왜 하지 않을까? 지금 우리가 하는 공부는 객관식 시험에서 점수를 얻기 위한 공부를 하고 있다. 우리를 줄 세우고 더 높은 점수를 받는 것 방법에 대한 공부에 몰입하고 있다. 이런 현상에 대해서 스스로를 공부 도둑이라고 칭하는 저자는 지금의 공부가 득점전략에만 머무르고 있다고 지적한다. "득점 전략은 '최소의 노력으로 최대의 효과'를 겨냥하는 데에 있다. 이것을 잘하지 못하면 득점 경쟁에서 낙오한다는 것이 이들의 논지이다. 이는 언뜻 옳은 이야기처럼 들린다. 그러나 여기서 잃는 것은 학습의욕과 학업능력이다. 결국 종이 위에 적히는 득점 수치를 위해 교육의 본질인 의욕과 능력을 상실하는 것이다."라고 한다. 결국 우리의 지금 공부법은 학습의욕과 학업능력을 상실하게 만들었고 결국에는 학력저하까지 부른 것이다.
처음부터 공부론에 관한 이야기를 했지만, 이 책은 공부론에 대한 책이 아니다. 이 책은 저자의 공부 역사책이다. 평생을 물리학 학자로서 살아온 저자가 어떻게 공부를 했는지에 대한 기록인 것이다. 그 기록을 통해서 자신만의 노하우나 경험, 그리고 공부에 대한 지혜를 펼쳐 보인다. 그 중에 득점전략으로서의 공부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 그 이야기를 통해서 득점전략적 공부를 배제했던 자신의 경험으로 얻은 공부법을 "오히려 시험과 무관하게 공부했기에 내 나름의 능력을 기를 수 있었고, 이렇게 길러진 능력이 시험에서도 그 효과를 발휘한 것뿐이다. 그렇더라도 시험에 앞서 준비를 안 할 수는 없는데, 이때 작은 노력만으로 큰 효과를 보는 것이다."라고 이야기한다. 어린 시절부터 할아버지의 반대 때문에 학교에 가지 못하면서 터득한, "혼자 힘으로 공부하는 법"을 통해서 단편적인 지식을 넘어서는 학문의 정수에 접근하는 방법을 깨달은 것이다. 대학을 가서도 혼자서 공부하는 법을 알지 못해서 또 다시 학원을 전전하는 현대인들의 모습과는 대조적이다.
결국 지금의 많은 현대인들은 진정한 학문을 추구하지 못하고 변죽만 울리는 이유는 스스로 공부하는 법을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우리가 추구하는 학문은 점수를 따기 위한 학문이 되어 버렸다. 결국 우리는 저자가 말하는 학문의 요체라고 불리는 자유보다는 기존의 완성된 이해의 틀 안에 우리의 사고를 속박하고 있다. 그래서 그 틀 안에서 성취와 보상을 추구만 할 뿐 자유로운 사고를 통해서 학문의 영토를 확장하려 하지 않는다. 그래서 이해보다는 단편적인 정보나 지식의 암기에, 지혜보다는 지식만을 추구하게 된다. 글로벌 인재가 부족하게 되는 것도 다양한 학문의 바다를 자유롭게 넘나들 자유로운 사고를 가진 환경을 제공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창의적인 인재보다는 수동적이며 기존의 학문이나 사고의 틀에 박힌 근대적인 인재들이 넘쳐나게 된 것이다.
현대인들은 자연계의 다위니즘을 공부에까지 끌어왔다. 그래서 경쟁은 당연한 것이며, 그 경쟁에서 이기기 위해서는 학생들이 학교에서 더 많은 시간을 보내기를 원하고, 학원에서 더 많은 시간을 보내기를 원한다. 아이들이 경쟁에서 뒤쳐지지 않고 이기기 위해서 하지만 공부라는 것이 누군가를 이기기 위한 게임이 아니라 학문을 알아가고 지혜를 배워가는 과정이다. 저자는 공부와 학문에 만연한 경쟁만능주의 세태에 대해서 "학문은 기여이고 협동이지 결코 경쟁이 아니다. 경쟁이라는 것은 함께 취할 수 없는 소수의 목표를 놓고 서로 취하겠다고 다툴 때 나타나는 것인데, 학문의 목표는 결코 한두 사람이 취하면 없어지는 그러한 것이 아니다."라고 말한다. 우리가 학문의 즐거움을 알지 못하기 때문에 학문이 기여이고 협동이라는 것을 모르고 경쟁에만 매달리기는 것이 아닐까?
공부에 대한 새로운 접근이 필요한 세상에 저자의 공부 역사 이야기는 많은 지혜를 내포하고 있다. 저자는 자신을 "공부도둑"이라고 불렀지만, 내가 보기에는 "공부도사"다 스스로 도를 닦아서 득도한. 저자가 들려주는 공부이야기는 경쟁으로 인해 목적과 방향을 잃은 현대인들에게 망망 대해에서 길을 안내할 북극성이 되어 준다. 그냥 저자의 역사로 읽어도 재미있고, 그 역사를 통해서 저자가 말하는 공부론에 대한 이야기도 유익하다. 단 마지막에 있는 온생명과 낱생명, 그리고 우주론에 관한 이야기는 지루하고 딱딱하기는 하다. 하지만 자신의 전공을 넘어서 철학, 생물학, 동양사상에 이르기까지 방대한 관심과 깊이 있는 학문에 대한 성찰은 질투가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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