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 학교 - 이리스 라디쉬 지음, 장혜경 옮김, 박선민 한국 자료 조사/나무생각 |
부모이거나 부모가 될 많은 기성세대들은 두 개의 추악한 얼굴을 가지고 있다. 그 중 하나는 자식들에게 모든 것을 올 인하는 것이다. 지금의 경제상황이나 미래의 노후는 상관이 없다. 단지 자식을 위해서 모든 것을 희생한다. 어떻게 보면 자녀에 대한 헌신으로 지극한 사랑을 표현하는 것이다. 하지만 그 이면에 숨겨진 것은 자녀들이 뭔가 이루어주기를 바라는 욕망일 뿐이다. 배우지 못한 것에 대한 한과 출세하지 못한 것에 대한 한을 자녀라는 꼭두각시를 이용해서 대리 만족하려 한다. 결국은 자신이 이루지 못한 것에 대한 욕망으로 자녀들의 삶을 좌지우지하는 것이 되어 버린다. 그리고 그들은 "다 너를 위한 것이다."라는 말로 자신과 자녀에게 최면을 가한다. 그것으로 자신의 욕망을 애써 감추려 한다.
두 번째의 얼굴은 저출산에 대한 기성세대의 모습에서 볼 수 있다. 그들은 지금의 우리환경이 아이들을 낳아 키우기에는 얼마나 좋지 않은지 알고 있다. 안양 초등학생 사건을 비롯해서 대구에서 일어난 초등학교 성폭행 사건 등은 우리사회가 아이들에게 얼마나 취약하며 잔인한지를 여실히 보여준다. 그 뿐 아니라 지나치다 못해 처절할 정도의 학습열은 아이들을 학교와 학원이라는 쳇바퀴 속으로 밀어 넣어 버렸다. 그러면서 그들은 말한다. 아이들이 불쌍하다고. 하지만 그들은 사회의 구조와 의식의 구조를 바꿀 생각을 하지 않는다. 문제는 이런 현상으로 발발하고 있는 저출산 문제를 바라보는 시선이다.
생물이 가지는 종족번식이라는 원천적인 인간 욕망으로 아이를 낳지 않는 세태를 걱정한다면 그나마 양반이련만, 미래의 경제활동 인구의 저하와 후에 노인인구를 부양한 젊은 층의 부족을 더 걱정한다. 결국은 편안한 노후에 대해서 걱정하는 것이다. 결혼적령기의 젊은이들을 향한 그들의 목소리는 결국에는 자신들의 안위만을 걱정하는 이기성의 발현일 뿐이다.
두 가지 추악한 얼굴을 걷어내지 않으면 우리가 사는 인간사회는 퇴보할 수 밖에 없다. 한 개인이 가지는 존엄성은 사라지고 개인의 이익과 공동의 이익을 만을 추구하는 사회가 될 수 밖에 없다. 결국은 한 개인은 사회의 부속품으로 전락해버리는 것이다. 그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지금이라도 진지한 고민이 필요하다. 우선 개인들이 추구하는 지나친 물질적인 욕망에 대해서는 진정한 삶의 의미가 무엇인지를 성찰할 필요성이 있다. 행복이 무엇인지 인간답게 무엇인지에 대해서 말이다.
저출산 문제를 바라보는 시선이나 문제 의식에 대해서 가장 중요한 문제는 그 문제를 누구의 시선으로 바라보아야 하는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아직 그 문제에 대해서 올바른 시선을 가지고 접근하지 있지 않다. 철저하게 남성적 시선으로 그 문제를 바라봄으로써 문제의 원인에 대한 진지한 고민을 하지 않는다. 예측이라는 이름으로 출산율 저하가 초래할 문제를 하나 둘 나열하면서 대중들에게 위기 의식을 심어준다. 뿐만 아니라 단지 돈 몇 푼이나 찔러주는 얄팍한 정책으로 대중들을 기만할 뿐이다. 결국 이러한 정책들이 만들어낸 것은 출산파업을 하는 여성에 대한 왜곡된 시선을 만들어 낸다. 출산이라는 것이 여성만의 것으로 만들어 버리고, 남성들은 회피해 버린다.
결국 저출산 문제를 바라보는 왜곡된 시선과 얼굴을 바꾸기 위해서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여성의 시선이다. 왜 그들이 출산파업을 할 수 밖에 없는지에 대한 진지한 성찰을 시작해야지만, 자신들을 부양한 노동력의 부재라는 저급한 걱정이나 문제제기가 아니라 근본적인 문제해결 방법으로 접근할 수 있다. "여성학교"는 여성인 저자의 시선으로 이 문제에 접근하고 있다. 조금은 아쉬운 것이 저자의 개인적 경험이나 생각을 위주다 보니 추상적인 개념들이 많다.
저자는 이 책에서 자신들을 좀비 세대라고 칭한다. "신속하고 실용적인 학습 결과를 목표로 삼았던 우리의 학교 교육에서 감각적 직관과 직접 처험, 배운 내용의 보다 폭넓은 이해, 다른 지식 분야와 연계된 학습은 특히나 심한 홀대를 받았다."고 "전인교육의 낡은 이상은 시대에 뒤떨어진 원칙과 더불어 소위 신속하고 효율적이며 결과지향적이고 이윤지향적인 학습 훈련을 위해 문화사의 헛간으로 쫓겨나버렸다."므로써 "우리에게 부족했던 건 연관성이었다. 학교에서 배운 것들의 연관성이, 우리가 처한 역사적 상황의 연관성이, 사회 관계망의 연관성이 부족했고, 심지어 생로병사의 연관성조차 부족했다. 요즘 흔한 화법보다 약간 더 우아한 표현을 사용해 본다면, 우리에게 활기가 부족했다. 그리고 그것은 지금도 여전하다."다고 한다. 이런 과정을 통해서 혼인이라는 것이 사랑의 완성이 아니라 가부장제에서 나온 고용관계였다고 설명한다. 결국은 이혼이 늘어나고 결혼을 하지 않으며 출산을 하지 않는 이유는 "혼인을 통한 고용관계는 타당한 이유에서 서서히 멸종하고 있는 중이다."이기 때문이라고 한다.
지금 남과 여가 사랑을 바라보는 관점에 대해서 저자는 비슷한 취지로 촌철살인의 문장을 날린다. "남자도 여자도 자신을 사랑거래의 고급상품으로 보고 싶어 한다. 그래서 개인의 상품 극대화를 위해 엄청나게 많은 시간을 소비한다."는 것은 지금의 사랑에 대한 세태를 그대로 반영하고 있다. 다시 말해서 저자는 지금의 사회는 사랑의 윤리라 부를 수 있는 것이 부재하며 지금 우리가 겪고 있는 것들은 사랑의 재앙이라고 한다.
결국 지금의 사회는 변화하는 시대상을 전혀 반영하지 못하고 있으며 가부장적 가족제도는 사랑의 재앙을 만들어 버렸다. 그래서 지금 필요한 것은 과거와는 다른 새로운 가족 모델이라고 한다. 신 부성과 신 모성이라고 불리는 것들이 조합을 이뤄서 이전과는 다른 모델이 필요한 것이다. 신 부성에 대해 젊은 남자들을 향해 말한다. "대부분의 젊은 아버지들은 지금까지도 아이들을 위해 속박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지 않다."고. 그리고 모성에 대해서도 "모성애란 부성애와 똑같이 당연한 것이 아니라 계발해야 하는, 많은 착오와 방해를 감수해야 하는 특성이다. 아이는 금방 낳지만 엄마의 결속감이 생기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린다."라고 한다. 신 부성과 신 모성 그리고 신 가족제도는 저절로 완성되고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남성과 여성이 같이 준비하고 계발해야 되는 것이다.
하지만 이것 만으로도 저출산에 대한 문제가 해결되는 것이 아니다. 자본주의가 만들어낸 치열한 성과주의 사회는 여전히 가족을 방해한다. 직장이나 일터에서 학습된 생산성의 논리가 가족생황에 그대로 적용되어 가족이 가지는 원래 의미가 퇴색된다는 것이다. 사람들은 기업과 국가를 위한 생산성의 논리로 국가의 지원 속에서 많은 시간을 소비하지만 가족에게는 그렇지 않게 된다. 그래서 저자는 "일 때문에 방해 받지 않는 가족의 시간 역시 발견되고, 나아가 보호되어야 한다."고 한다. 결국은 저출산의 문제는 여성만의 문제가 아니라, 남성과 여성 그리고 사회가 동시에 짊어져야 할 문제인 것이다.
'책을 읽고' 카테고리의 다른 글
억압받는 여성들의 이야기 "천 개의 찬란한 태양"을 읽고.... (4) | 2008.05.16 |
---|---|
공부도둑이 들려주는 공부이야기 "공부 도둑"을 읽고.... (0) | 2008.05.12 |
그림이 가르쳐주는 다른 가치들에 관한 책 "그림 읽는 CEO"를 읽고..... (0) | 2008.04.27 |
인생의 길을 걷는다는 것 "느긋하게 걸어라"을 읽고...... (2) | 2008.04.21 |
인생의 프로가 되는 것이란......"변화 마인드맵"을 읽고..... (0) | 2008.04.2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