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 개의 찬란한 태양 - 할레드 호세이니 지음, 왕은철 옮김/현대문학 |
아담과 이브라는 하나의 조상에서 분화되어 지금 우리는 존재하고 있다. 하나의 기원을 가진 우리지만 사는 지역에 따라서 피부색도 다르고 언어도 다르며 관습 또한 다르다. 이런 차이를 쉽사리 인정하지 못하는 인간의 옹졸함에 우리는 수 많은 갈등 속에서 살고 있다. 전쟁이라는 이름으로 서로가 서로를 죽이고, 인종이 다르다는 이유로 상대방에게 온 갓 멸시와 차별을 가한다. 힘이 강한 남성은 힘이 약한 여성에게 수 많은 폭력을 가해도 그것이 종교라는 이름으로 관습이라는 이름으로 정당화 되기도 한다. 종교가 가르치는 자비, 사랑, 평화와 같은 것들은 그들이 믿는 신의 명령이라는 이름아래서 무참하게 짓밟힌다. 그들에게 신이란 이름은 자신들의 욕망과 야욕이라는 뱃속을 채우기 위한 하나의 도구일 뿐이다. 많은 부를 가진 이들은 신에게 수 많은 재물을 가져다 바치며 자신에게 더 많은 부를 달라고 애원한다. 그들은 가난한 이들이 가난의 굴레를 벗어나지 못하는 것은 그들이 게으르기 때문이라고 말할 뿐 그들이 불법과 탈법으로 가난한 이들을 착취하는 것을 당당하게 여긴다.
하나의 인간은 우리와 같은 인간이 아니다. 우리와 같은 인간이 되기 위해서는 우리라는 계층이 가지 있는 조건을 모두 충족해야지만, 그는 우리와 같은 인간으로 대접받는다. 그렇지 못하면 그는 우리와 같은 인간이 아니라 다른 계층의 또 다른 인간일 뿐이다. 만약 그가 우리보다 더 높은 계층의 인간, 즉 돈이 더 많거나 지위가 더 높다면, 우리는 그를 우러러본다. 그와 같은 계층에 들어가기 위한 열망으로 그들이 지나왔던 또는 해왔던 일들을 그대로 모방하거나 쫓아가려 한다. 인생의 목표가 행복이 아니라 더 높은 계층이다. 행복은 높은 계층에 있다고 착각하면서……. 만약 그가 우리보다 낯은 계층의 인간이라면, 우리는 그를 얕보거나 멸시하며 차별을 가한다. 단지 낮은 계층에 있다는 것이 그는 우리와 같은 인간이 아니라 미천한 존재일 뿐이다. 세상은 결코 평등하지 않다. 인간은 의식하든 의식하지 못하든 이렇게 계층을 나눠서 타인을 대한다. 그리고 자신이 속한 계층 안에서 위로 받고 안식을 취하며 더 높은 계층을 향한 욕망의 힘으로 차별적인 세상을 전진한다.
직접적으로 보이지는 않기에 우리가 쉽게 인식하지 못하지만, 우리는 계층의 피라미드를 이루며 살아간다. 그 계층의 최하위에는 언제나 두 종류의 인간이 있다. 하나는 여성이고 하나는 어린이다. 그들은 언제나 전쟁이란 파괴적인 행위 속에서 가장 고통 받는 이들이고, 종교의 잘못된 교리가 만들어낸 차별세상에서 가장 고통 받는 이들이며, 가부장제가 만들어낸 세상에서 가장 고통 받는 이들이다. 이러한 차별은 힘의 논리가 지배하는 세상이 만들어 낸 것이다. 결국은 남성보다 힘이 약한 어린이와 여성들은 남성에 굴복할 수 밖에 없었으며, 사회가 아무리 선진화 되고 발전을 한다고 해도 이 문제는 결코 사라지지 않고 있다. 하물며 여전히 종교가 사회를 지배하는 주요한 가치를 차지하고 있으며, 전쟁이 여전히 진행중인 곳, 그리고 가부장제가 여전히 강한 힘을 발휘하는 곳에 사는 여성들의 삶은 얼마나 처참할까?
아프카니스탄 여성들에게 바치는 할레드 호세이니의 책 "천 개의 찬란한 태양"은 계층의 최하층에 위치한 아이였다가 여성이 되는 마리암과 라일라를 통해서 계층의 가장 아래에 있는 이들의 비참한 삶을 보여준다. "내 딸아, 이제 이걸 알아야 한다. 잘 기억해둬라. 북쪽을 가리키는 나침반 바늘처럼, 남자는 언제나 여자를 향해 손가락질을 한단다. 언제나 말이다. 그걸 명심해라."라고 어머니가 딸에게 전해준 말로 종교와 가부장이 만들어낸 사회에서 억압받는 여성들의 한 맺힌 삶을 마리암과 라일라를 통해서 보여준다. 거기에 전쟁과 굶주림까지 더해지면서 계층의 아래에 사는 이들의 실상을 낱낱이 보여준다.
출생에서부터 남들에게 손가락질 받을 수 밖에 없던 마리암은 그녀의 아버지와 다른 가족들, 혈연과 혈통을 중시하는 가문의 천덕꾸러기다. 그래서 많은 나이 차이에 이미 사별을 경험한 라시드와 강제로 결혼을 하게 된다. 그 부분에서 저자는 복선을 하나 남겨둔다. "마리암이 27년 후에 어떤 서류에 서명을 할 때도 율법학자가 참석해 있을 것이다."라고. 하나는 27년이라는 기간 동안 마리암이 고통을 당할 것이라는 암울한 암시와 27년 후에는 그녀의 삶이 다르게 변할 것이라는 것을 암시한다. 그것이 긍정적인 것인 부정적인 것인지는 알 수 없지만……. 긍정적인 기대로 복선을 바라보게 된다. 그렇게 시작된 결혼 생활이 본격적으로 이야기를 이끌어 간다. 그 과정에서 아프칸의 역사적 사건들이 다양하게 겹쳐지면서 마리암의 생활은 결코 순탄치 않다.
라일라는 마리암과 달리 교육자인 아버지 밑에서 다양한 교육을 받으면서 자랐다. 하지만 그녀를 불행하게 만든 것은 전쟁이다. 전쟁이 얼굴조차 기억하기 힘든 오빠들을 죽음으로 몰고 갔고, 결국에는 부모님마저 죽게 만든다. 그 과정에서 자신도 부상을 입은 그녀는 마리암의 남편 라시드의 도움으로 목숨을 건진다. 너무 어린나이에 모든 것을 잃어버린 그녀는 혼자 힘으로 세상을 헤쳐갈 용기가 없다. 그래서 그녀는 라시드와 결혼을 하고 두 번째 부인이 된다. 그로 인해 마리암은 라일라를 향해 질투를 하게 되지만, 아이를 낳지 못하는 마리암을 대신해서 라일라가 아이를 낳게 됨으로써 그 여자는 모성애라는 하나의 공통점으로 뭉치게 된다. 마리암과 라일라는 우정과 모성애로 똘똘 뭉치게 되고 라시드로 대표되는 억압과 폭력에 대항할 힘과 용기를 가지게 된다.
라시드로부터 도망을 가기 위해서 차곡차곡 돈을 모으고 그 돈으로 버스표까지 구입을 하게 되지만, 탈레반이 집권하며 만들어낸 감치체제와 더 강력해진 가부장사회는 두 여인을 좌절하게 만든다. 사실 그 쯤에서 두 여인의 고통이 끝나기를 바랬었는데, 또 다시 억압과 폭력으로 두 여인을 몰아넣는 저자 호세이니가 얄미웠다. 결국에는 두 여인이 라시드를 살해하기에 이르는 상황까지 만들어 버린다. 라일라의 어린 시절 연인인 티리크가 두 여인과 그들의 아이들에게 구세주가 되기는 하지만, 마리암은 라일라와 아이들이 무사히 도망칠 수 있도록, 자기희생적 모성애로 자수를 한다. 결국 저자가 소설의 초반에 깔았던 복선은 마리암의 죽음을 암시하는 것이었다. 그녀가 서명한 곳은 판결문이었다. 마리암은 사형을 당하게 되면서 한 많았던 인생을 마감한다. 전쟁과 가정폭력, 굶주림에 이르기까지 시대상황과 맞물린 끝없는 고통 속에서 마리암이 맛본 행복은 라일라와의 우정과 모성애다. 마리암의 고생에 비해서 초라하기만 한 행복의 순간을 보면서 마리암을 가혹한 고통 속에 몰아넣는 작가가 야속하기만 하다.
반면 라일라는 아프카니스탄을 떠나서 안정된 생활을 하지만, 탈레반 정권이 몰락하면서 다시 귀국을 결심한다. 귀국과정에서 마리암이 살았던 곳에 들러서 마리암의 체취를 느끼고, 마리암의 아버지가 남긴 마지막 편지도 읽게 된다. 그리고 카불의 고아원에서 그곳 아이들을 위한 선생님이 된다. 그 순간에 마리암이 자신의 가슴속에 천개의 찬란한 태양으로 빛나고 있음을 느끼면서 소설은 마무리된다. 하지만 책을 덮으면서 행복하지도 희망에 차지도 않는다. 탈레반의 세력이 점점 확대되면서 안전하다고 여겨지던 카불에서도 폭탄테러가 빈번하게 발생하고 있는 뉴스를 접했기 때문이다. 현실은 여전히 마리암과 라일라 같은 여성들에게 자유와 희망을 주려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소설의 결말과 같이 희망을 품을 수 있는 것은 자신의 삶에 절망하지 않고 현실과 맞서 당당하게 살아가는 마리암과 라일라 같은 이들이 있기 때문이다. 지금의 현실은 어둡더라도 인간이 가지는 삶의 의지는 천 개의 찬란한 태양으로 어둠을 걷어내고 세상을 밝혀 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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