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읽는 방법 - 히라노 게이치로 지음, 김효순 옮김/문학동네 |
책을 읽으면서 '어떻게 읽을 것인가'에 대해 많은 고민을 한다. 한 권의 책을 다 읽었다고 해도 그것을 내가 바로 소화시켰는지 객관적으로 평가할 잣대가 없기에….... 읽었던 내용들을 찬찬히 되살려보면 어떤 때 내 머리 속은 백지와 같다. 가끔 다른 자극을 받아서 의도하지 않게 기억 속에서 읽었던 내용들이 튀어나오기도 하지만, 내가 필요할 때에 읽었던 내용들이 생각나지 않기도 한다. 기억이란 것에 의존해서 독서의 질을 평가하고 있으면 책이 독서의 양에 대한 욕심을 자극한다. 정확하게 말하면 책이 아니라 책의 저자들이 양에 대한 욕심을 자극한다. 책 속에 펼쳐지는 저자들의 지적 향연을 위한 만찬은 그들이 읽은 책들의 양이 좌우하기 때문이다. 양에 대한 욕심이 커지면 속독이란 기술에 매혹된다. 하지만 연습 삼아서 속독을 연습하다 보면 방금 넘긴 페이지의 내용 조차 기억하지 못한다. 속독 연습을 하면 인간의 두뇌능력은 무한하기 때문에 적응할 수 있다고 하지만, 책이 전해주는 이야기의 흐름마저 끊어가면서 속독을 연습해야 될 이유를 모르겠다. 속독을 연습하다가도 포기해버린다. 그래서 독서의 질에 대한 고민과 양에 대한 욕심 사이를 우왕좌왕 할 뿐이다.
속독을 쉽게 포기하지 못하는 이유는 정보가 넘쳐나는 세상에 살다 보면 분명 속독은 많은 정보를 흡수하기 위한 좋은 도구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책을 읽는다는 행위가 정보와 지식만을 얻기 위한 것이 아닌데, 속독으로 정보를 얻는다는 것에 너무 매몰되어 버리는 것이 아닐까? 속독으로 인해서 독서라는 행위 자체가 가지는 즐거움을 많이 놓치게 된다. 지식과 즐거움 중에 사이에서 선택은 각자의 몫이겠지만, 즐거움 없는 행위가 만들어내는 지루함은 지식습득에서도 능률적이지 못하다. 결국에 선택해야 될 것은 독서의 즐거움이다. "무엇보다도 천천히 시간을 들이면 독서는 즐거워진다."라는 저자의 주장에 공감이 간다. 그래서 저자는 "독서를 즐기는 비결은 무엇보다도 '속독 콤플렉스'에서 해방되는 것이다."라고 한다. 속독과 슬로 리딩 사이에서 우왕좌왕하고 있는 나 같은 사람에게 중심을 잡을 수 있는 충고다. 특히 "정보의 항성적 과잉공급사회에서 진정한 독서를 즐기기 위해서는, '양'의 독서에서 '질'의 독서로, 망라형 독서에서 선택적 독서로 발상을 전환해야 한다."라는 저자의 주장은 정보의 홍수 속에서 허우적대는 현대인들에게 구원의 빛과 같다.
그렇다면 슬로 리딩만 하면 좋은 독서가 되는 것일까? 하지만 슬로 리딩은 좋은 독서를 하기 위한 준비단계일 뿐이다. 느리게 읽는다고 무조건 가치 있는 독서가 되는 것은 아니다. 결국에는 슬로 리딩에도 다양한 테크닉이 필요하게 된다. 속독과 슬로 리딩이 단순히 질과 양의 문제였다면 슬로 리딩의 질적 차이 문제로 귀결된다. 슬로 리딩의 테크닉을 하나하나 익혀감으로써 질적 완성도를 높일 수 있는 것이다. 그런 테크닉으로 저자가 소개하는 것은 "작가의 시점으로 읽고, 나라면 어떻게 했을까 생각하며 읽고, 모르는 단어가 나오면 사전을 꼭 찾아가며 읽고, '왜'라고 생각하며 읽고, 다른 사람에게 이야기 할 것을 상정하고 읽는 것 등등"이다.
후반부에 나오는 실습을 통해서 이론에만 머무를 수 있는 것을 구체적으로 보여준다. 그 과정을 따라가다 보면 두 가지 생각이 머리에 떠오른다. 하나는 내가 지금까지 읽었던 독서는 제대로 된 것이 아니라는 생각이고, 다른 하나는 "즐기기 위한 독서를 이렇게 치열하게 하면서 머리에 과부화를 줘야 할까?"라는 의문이다. 저자의 깊은 분석력에 대한 자괴감과 질투가 섞인 묘한 생각들이다. 그래도 이 책을 읽어서 좋았던 것은 내 독서 습관을 점검할 기회를 얻었다는 것과 '재독'의 가치와 중요성에 대해서 알았다는 것이다. 한 번 읽은 책은 거의 재독하지 않는 편이었는데, "책은 '재독'에 가치가 있다. 읽을 때마다 새로운 발견을 하고 새로운 자신을 발견한다. 책과 그런 관계를 만들 수 있다면, 책은 더없이 소중한 인생의 일부가 될 것이다."을 보고 재독하고 싶은 책들을 하나 둘 생각해 보게 되었다.
이 책의 저자가 주장하는 독서법이 절대적이고 만능은 아닐 것이다. 책을 읽는 것은 지극히 개인적인 것이고 혼자의 것이다. 결국에 중요한 것은 저자와 나와의 소통이 중요한 것이고 좀더 명확한 소통을 위한 독서법이 있을 뿐이다. 그것은 각자의 과제이고 각자의 선택일 뿐이다. 이 책은 자기 독서법에 대한 점검의 기회와 저자와 원활한 소통을 위한 다양한 선택지를 제공해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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