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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고

카메라를 들고 싶게 만드는 거장의 유혹 "영혼의 시선"

by 은빛연어 2007. 11. 17.
영혼의 시선 - 10점
앙리 카르티에 브레송 지음, 권오룡 옮김/열화당

 

 일요일 저녁, 저녁식사를 하면서 TV 봤다. "경제야 놀자"라는 코너에 "앙리 카르티에 브레송" 관한 얘기가 나온다. 순간 나는 " 내가 최근에 책의 저자네"라는 생각이 머리에 스쳐 지나갔다. 책을 선택한 것은 내가 "앙리 카르티에 브레송" 알아서도 사진에 대해서 관심이 많아서도 아니다. 이웃 블로거 고난님의 추천으로 보게 책이다. 그래서 그가 위대한 사진작가라는 정도 밖에 몰랐다. 어떤 사진을 남겨 왔으며 어떤 작품 세계를 가지고 있는지는 전혀 모른다. TV 보면서 "결정적 순간" 사진작가로 불리며, 순간의 장면을 포착해 내는데 뛰어난 작가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사진을 찍기를 좋아하는 사람과 사진에 찍히기를 좋아하는 사람이 있다. 나는 저기 군데 어디에도 속하지 않는 편이지만, 사진 찍히는 것보다 찍는 편을 선호한다. 옛날 카메라가 처음 나왔을 카메라가 사람의 영혼의 빼앗아 간다고 생각했었다고 한다. 그래서 사진에 찍힌 사람들이 카메라를 부셔버리는 일도 있었다. 어쩌면 나는 아직도 저런 미신에 빠져있는지도 모른다. 카메라의 렌즈가 나를 향하면 어색하고 불안하다. 그리고 렌즈 통해 투영된 나의 다른 모습이 사진에 나타나면, 나는 나를 외면한다. 나는 속의 내가 너무 낯설다. 어쩌면 내가 나를 사랑하지 않기에 속에 나가 너무 낯설어서 외면하는지도 모른다. 카메라가 영혼을 가져가 사진이 비춰주는 것이라면, 아직 나의 영혼과 대면 용기가 없다.


 반면에 사진 찍는 것에 대해서는 거부감이 없다. 그렇다고 그것을 취미로 삼을 만큼도 아니다. 주변의 아름다운 풍경이나 사물이 렌즈를 통하면 눈이 보여주는 형상과는 다른 형상과 마주친다. 눈이라는 도구가 전체적인 모습을 속에 심어준다면, 카메라의 렌즈는 눈이 집중하지 못해 유심히 관찰하지 못한 것들을 재창조한다. 물론 그런 재창조가 맘에 들지 않은 경우도 있다. 어떤 경우에는 전체의 아름다움이 커서 부분의 아름다움으로 담지 못하는 안타까움은 말로 표현하기가 쉽지 않다. 하지만 카메라를 통해 내가 기억의 순간을 담는다는 것은 불완전한 기억을 대신해서 다른 곳에 저장한다는 점에서, 셔터를 누를 때의 흥분과 떨림은 매번 즐겁다.


 앙리 카르티에-브레송의 글은 이런 사진에 대해서 가지는 개인적 감정이나 느낌을 제쳐두고, 그저 글을 읽는 만으로 카메라를 들고 싶게 만든다. 거장이 도달한 경지라는 것이 이런 것일까?  "나의 열정은 사진 '자체' 아니라, 자기 자신을 잊어버리고 피사체의 정서와 형태의 아름다움을 찰나의 순간에 기록하는 가능성, 다시 말해서 보이는 것이 일깨우는 기하학을 향한 것이다."라는 앙리 카르티에-브레송의 문장으로 사진이라는 것이 얼마나 심오하고 철학적인 분야인가에 대해서 그저 감탄하게만 만든다.


 사실 "영혼의 시선"이라는 책을 처음 손에 쥐게 되었을 실망을 했었다. 100 페이지 밖에 되지 않는 분량에 가격은 300 페이지가 넘는 책과 맞먹는 13000 이었다. 책의 가치를 페이지와 가격으로 판단 없겠지만, 같이 책의 가격과 비슷하면서도 두께가 얇은 것이 적잖이 당황스러웠다. 그게 실망으로 나타났었다. 하지만 짧은 글에 담겨진 강렬한 충격과 느낌은 실망감을 일소에 날려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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