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는 주인공 오이랑이 최근 교내 달리기 시합에서 있었던 일과 그 당시 느낌 등을 독백 하면서 시작된다. 그 독백에는 달기기 만큼은 누구에게도 지지 않을 거라고 자신 있었던 그녀가 처음으로 누군가에게 추월 당했을 때의 슬픔과 좌절의 감정이 묻어있다. 그리고 그녀는 가장 좋아하고 자신이 있어했던 달리기를 그만 둔다. 일상에서 공허함이 그녀의 주변에 맴도는데 서울에서 새침하게 생긴 한수민이 전학을 오고 둘은 금새 친구가 된다. 이랑은 언제나 밝고 당당한 수민을 보면서 점점 작아지기만 하는 자신을 보게 되고, 자신에 대해서 많은 고민을 하게 된다.
이랑은 우연히 학교에서 보게 된 철수에게 관심을 가지게 되는데, 어느 날 고장난 라디오를 수리하러 갔다가 그곳에 있는 철수를 만나고 가까워진다. 부끄러워서 서로 어색해 하는 두 사람의 모습이 풋사랑을 시작하는 어린 청춘들의 순수함이 묻어 난다. 이렇게 시작되는 영화는 이수영의 노래 "I believe"의 뮤직비디오를 보는 듯한 느낌이 들 정도로 아련한 추억과 향수를 자극하는 풍경과 영상 그리고 이야기가 펼쳐진다. 여기까지 보면서 처음에는 청소년들의 사랑이야기인 줄 착각했었다. 수민의 비중이 줄어들면서 이랑과 철수의 만남과 이야기가 점점 영화의 주를 이루어지기 때문에.
하지만, 영화는 제목처럼 자신의 소중한 꿈에 대해서 조금씩 깨달아가는 이랑을 보여준다. 그러면서 현실에 안주하거나 현실 때문에 꿈을 포기했던 많은 사람들의 기억 한편에 있는 자신의 모습을 떠올리게 만든다. 이랑이 자신의 꿈을 포기하게 되는 이유는 한편으로는 말도 안되는 것 같지만, 한편으로 너무나 우리의 현실을 잘 반영하고 있다. 처음으로 달리기에서 누군가를 추월당하고, 1등이 아니면 의미가 없다고 스스로 넘어져 달리기를 포기하는 이랑의 모습은 1등만 기억하는 더러운 세상을 살아가는 우리의 자아상이다. 1등이 아니면 꿈마저도 포기하는 세상. 아니 꿈마저도 포기하게 만드는 세상에 너무나 순진하게 순응하는 모습이 바로 이랑을 통해서 보여진다.
이랑의 그런 모습을 보니 김혜나 소설 "제리"가 문득 생각난다. 소설 속의 주인공 "나"가 꿈마저 꾸지 못하고 자기를 파괴하면서 살아가는 모습은 이랑 만큼은 아니지만, 등록금에 짓눌리고 88만원이라는 저임금에 짓눌리는 우리네 젊은 청춘들의 모습과 오버랩 된다. 물론 그런 힘든 삶 속에서 자신의 꿈을 이루기 위해서 묵묵히 자신의 삶을 살아가는 청춘들도 존재하기는 하지만, 꿈 조차 꾸지 못하는 많은 청춘들 또한 우리가 이해하고 알아야 할 청춘들이다. 무엇이 그들을 그렇게 만드는지, 무엇이 청춘들의 꿈 조차 빼앗아 가는지는 한마디로 정확하게 단정할 수는 없다. 그렇지만, 이 모든 것을 그런 개인의 문제로 함부로 돌린다면 그것 또한 기성세대가 가지고 있는 사회적 책임을 방기하는 것이다.
영화는 자신의 꿈을 쉽게 포기하는 이랑의 행동에 대해서 누구의 책임도 묻지 않는다. 단순히 현실적 좌절 앞에서 끈기를 가지지 못하고 포기하는 이랑의 모습이 더욱 부각되는 듯한 느낌이다. 이랑의 나약함이 더 부각되는 느낌이랄까? 그래서 자신의 꿈을 향해서 무모하리 만큼 맹목적으로 돌진하는 철수의 모습이나, 재능은 없지만 자신감 하나로 똘똘 뭉쳐서 자신이 하고 싶은 것을 하는 수민의 모습과 너무나 대비되어 보여진다. 그렇다고 그게 이 영화의 단점이라고 생각되지 않는다. 조금만 더 사회 비판적인 내용을 담았으면 하는 개인적 아쉬움이다. 오히려 철수와 수민의 그런 모습을 통해서 자신을 찾아가는 이랑의 모습이 오히려 잔잔한 감동과 아련하고 소중한 추억을 더 떠올리게 만든다.
그것은 "노스텔지아". 사람들이 가장 소중하게 생각하고 가장 되돌아가고 싶어하는 학창 시절에 대한 향수. 이 영화는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진한 향수를 자극한다. 나도 한 때 저랬었지, 나도 한 때 소중한 꿈이 있었지라고 생각하면서, 지금은 현재에 급급한 자신의 모습에 안타까움을 느끼게 만든다. 누군가 "젊은 이는 꿈을 먹고 살고, 늙은 이는 추억을 먹고 산다."라고 하지 않았던가? 문득 이 영화를 보면서 "노스텔지아"를 떠올리는 내가 늙은 이가 되어 버린 것 같다는 생각이 스쳐지나 간다. 소중한 시절의 꿈을 너무 일찍 가슴에서 지워버려서 너무 일찍 늙었나 보다.
소중한 날의 꿈 - 안재훈, 한혜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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