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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를 보고

단절된 관계와 새로운 관계가 공존하는 영화. 영화 "미안해 고마워"를 보고

by 은빛연어 2011. 7. 27.

 책 "죽음의 밥상"의 저자 피터 싱어는 처참하게 사육되고 도살되는 가축들의 현실을 고발하면서 동물이나 가축에 대해서도 사람의 인권과 같은 접근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사람의 인권도 제대로 보호 받지 못하는 현실에서 동물이나 가축의 권리나 생명도 존중해줘야 한다는 그의 주장은 처음에는 당황스럽고 놀라움을 주는 주장이었지만, 최근에 애완동물을 키우는 인구가 증가하면서 그런지 몰라도 살아있는 생명 자체는 소중히 여기는 분위기가 늘어나는 것 같다. 그래서 피터 싱어가 주장했던 것 만큼은 강력하지만 않지만, 요즘은 동물에 대한 사람들의 인식은 많이 변했다. 흔히 집에서 키우던 애완동물을 이제는 반려동물이라고 해서 단순히 사람의 소유물이 아니라 사람과 더불어 살아가는 존재로 인식되기 시작했다. 

 그런 인식의 변화랄까? 영화 "미안해 고마워"는 일상 속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동물과 사람과의 이야기를 통해서 변화한 애완동물들의 위상을 보여주는 작품이다. 4개의 에피소드로 되어 있는 이 영화는 하나하나 뜯어보면 별로 새로울 것 없는 이야기를 들려주는 것 같다. 갑작스럽게 돌아가신 아버지가 남겨주신 개를 통해서 아버지와 가족이라는 존재를 더 이해하게 되는 "고마워 미안해" 에피소드. 강아지를 인간 동생으로 인식해서 순수한 6살 소녀의 시선을 매력적으로 보여주는 "내 동생". 서로 사이가 좋지 않은 아버지와 딸이 길고양이를 통해서 서로를 이해하게 된다는 "고양이 키스". 이 3편의 이야기는 그렇게 특별하게 다가오지 않는다. 하지만, 영화 전반에 묻어 나는 따스함이 이야기를 더 매력적으로 만드는 것 같다. 

 하지만, 개인적으로 가장 인상 깊었던 에피소드는 노숙자 영진과 반려견 쭈쭈의 이야기를 그린 에피소드 "쭈쭈" 다. 이 에피소드는 반려동물들이 우리의 삶에 왜 점점 더 소중한 존재가 되어 가는지를 보여주는 듯할 정도로 이야기나 에피소드 그리고 영진의 마지막 대사가 동시에 인상적이다. 영등포 근처에서 노숙하는 영진은 주변 노숙자들의 강요에 의해서 쭈쭈를 분양 받게 되는데, 주변 노숙자들이 쭈쭈를 잡아 먹으려고 하자 쭈쭈에게 연민이 들어서 같이 도망친다. 그렇다고 쭈쭈에 대한 애정이 컷던 것이 아니라 노숙생활을 하면서도 영민은 쭈쭈가 조금은 귀찮게 여긴다. 하지만, 둘 사이는 점점 가까워지게 되는데, 어느 날 쭈쭈가 갑자기 힘을 잃어버리고 쓰러진다. 쭈쭈에게 종양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된 영민은 쭈쭈를 위해서 노숙생활을 청산하고 일상으로 복귀를 한다. 

 이렇게 행복하게 끝날 것 같던 이야기는 다른 노숙자들이 등장해 다시 쭈쭈를 잡아 먹으려 하면서 긴장감 있게 흘러간다. 쭈쭈를 살리기 위해서 온 힘을 다해 노숙자들과 싸우는 영민은 자신도 큰 부상을 입는다. 그러면서도 쭈쭈를 살리기 위해서 현실을 향해 울분에 찬 대사를 쏟아낸다. 서로 도움을 주면서 살아가도 모자랄 노숙자들이 서로와 서로를 착취하는 현실에 대한 슬픔이 그대로 묻어나는 대사들이다. 그 대사에 자극받은 다른 노숙자들이 힘으로 상징되는 깡패같은 노숙자 무리를 제압하면서 이 사건은 일단락 된다. 

 쭈쭈를 떠나 보낸 영민은 다시 반려견을 입양하지 않겠냐는 담당 직원의 권유를 받는다. 영민은 나중에라는 단서를 단다. 이제는 동물이 아니라 사람들 무리 속으로 들어가고 싶다는 자신의 소망을 말한다. 이 영민의 대사가 개인적으로 이 영화에서 가장 인상적이다. 왜 반려동물과 함께 하는 사람들이 늘어만 가는 것일까 하는 의문에 대해 영민의 대사는 그러한 현상의 단면을 어느 정도 명확하게 보여준다고 생각된다. 노숙자라는 영민과 같은 극단적인 상황은 아니라도 현대인들은 과거의 끈끈했던 다양한 인간관계가 점점 느슨해 지거나 끊어지고 있는 현실. 바로 그 자리를 대체해가는 것이 반려동물이다. 

 그렇게 보면 다른 세편의 에피소드들도 그런 모습들을 다 포함하고 있다. 결혼해서 따로 살고 있는 딸과  혼자 개와 살고 있는 아버지나, 부모님들은 각자의 일로 바쁘고 혼자서 집에 있는 6살 소녀의 모습, 그리고 무뚝뚝한 아버지와 그런 아버지와의 관계가 불편한 딸. 이런 모습들은 우리 사회의 관계라는 것이 얼마나 점점 느슨해 지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단면들이다. 이 영화는 반려동물과의 따뜻한 일상과 모습들을 보여주고 있는 작품이기는 하지만, 어떤 면에서 점점 단절되어가고 있는 관계에 대한 안타까움이 같이 묻어 나는 작품이다. 

미안해, 고마워 - 8점
송일곤임순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