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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를 보고

소속에 대한 선택을 강요 당하는 슬픔. 영화 "풍산개"를 보고...

by 은빛연어 2011. 6. 26.

인간은 태어나자마자 어디에 소속이 된다. 아버지와 어머니로 이루어진 가족이라는 조직에 의지와 상관없이 소속된다. 가족이라는 소속감이나 연대감은 정서적 안정성을 부여함과 동시에 치열한 약육강식의 세상에 든든한 울타리가 된다. 성인이 되어 자신 만의 가족을 새롭게 구성한다고 해도, 이전에 가지고 있던 가족이라는 조직이 해체되는 것이 아니라 더 넓은 의미의 가족을 형성하게 된다. 그리고 인간은 자라면서 가족이라는 조직 외에도 수 많은 조직에 소속되고, 소속되기를 갈망한다. 자라면서 자신의 나이에 맞는 학교와 직장 그리고 다른 여러 조직들에 들어가게 된다. 이러한 과정이 마치 당연하다는 듯이 사람들은 인식한다.

 

 사람을 만나고 그 사람에 대해서 알기 위해서 사람들은 그 사람이 어디에 속해 있는지 묻는다. 내가 누구인지 보다 누구의 자식인지가 우선이고, 내가 어떤 사람인지 보다 어느 학교에 있는지가 우선이다. 성인이 되면 어떤 직장에 소속되어 있는지 사람들은 묻는다. 단순히 어디에 소속 되었는지에 대한 호기심이라면 괜찮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묻는 사람이 알고자 하는 사실에 부합하지 않고, 묻는 사람이 보편적으로 생각하는 조직에서 벗어나 있다면, 차이를 인정하고 받아들이기 보다는 삐딱한 시선으로 바라본다. 내가 누구이고 어떤 사람인지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내가 어느 조직에 속해 있는 가가 더 중요하게 받아 들여진다.

 

 그래서 어떤 사람들은 자신이 속해 있는 조직을 다른 사람에게 강요한다. ""라는 자아는 죽어버리고, 조직이 대신 자신의 정체성을 대신하기 때문에 조직 자체가 나 자신이 된다. 나와 동등하게 생각되어진 조직은 생명을 가진 절대적 존재가 되어 버린다. 사회적 동물인 인간을 위한 조직이 아니라 조직을 위한 인간으로 존엄성을 격화 시킨다. 지하철이나 사람들이 많은 공공장소에서 보이는 시끄러운 포교 활동을 하는 사람들의 행태나 사이비 종교에 미쳐서 가족을 저버리는 사람들의 행태가 바로 그렇다.

 

 이러한 현상이 종교에서만 일어나는 것은 아니다. 어떤 조직과 어떤 조직이 극렬하게 대치하고 있을 때 조직이 인간의 존엄을 우선하는 종교적 맹신과 같은 형태를 보인다. 정치라는 것은 바로 그런 맹신이고 사상과 이념이라는 것이 극단으로 갔을 때 그런 맹신이 된다. 시사 평론가 정관용씨는 그런 현실을 냉철하게 인식하고 회색지 또는 회색인간이 되기를 자청한다. 극단적 맹신을 피하고 무엇이 옳은 지에 대해서 냉철하게 사회와 현상을 바라보자는 것이다.

 

 그런데 세상은 어떤 조직에 속하지 않은 사람은 물론 양극단에 속하지 않은 소수의 사람들에 대해서 가만히 놔두지 않는다. 끊임없이 그 사람들의 소속을 묻고 확인하며 자신의 편이냐 아니냐로 구분한다. 거침없이 폭력을 가해가면서 자신이 속한 조직의 우월함을 과시한다. 영화 "풍산개"는 휴전선을 넘어서 이산가족의 소식과 물건을 전하는 이름 없는 인물을 중심으로 독특한 이야기를 보여주는 작품이지만, 영화 내내 이름 없는 인물에 대해서 사람들은 계속해서"너는 어느 편이냐"고 묻는다. 주인공에게 그런 질문을 하는 사람들은 기본적으로 아군이 아니면 적이라는이분법적 사고에 기반해서 질문을 반복한다.

 

 그래서 폭력은 무차별적으로 행사하고, 약속은 곧바로 지켜지지 않는 협박이 된다. 계속해서 속고 또 속는 다는 것을 뻔히 알면서도 이용 당하는 이름 없는 인물을 보면서 관객들이 오히려 답답함을 느낄 정도다. 휴전선을 넘나들면서 남북을 오가는 주인공이 무엇 때문에 지켜지지 않을지도 알고 있는 약속을 계속해서 믿는지 의문만 쌓일 뿐이다. 감독은 의리와 신뢰가 바닥으로 떨어진 모습을 주인공이 계속해서 속는 모습을 통해서 더 적나라하게 표현하는 듯한 느낌이 든다.

 

 영화에는 주인공과는 다르지만, 의도하지 않게 자신의 소속에 대해서 불분명한 존재가 등장한다. 귀순한 북한 고위 간부의 연인으로 원래 북한에서 살고 있었지만, 주인공의 도움으로 남한으로 넘어온 인물이다. 그녀는 국가나 이념에 대한 신념이 존재하지 않는다. 단지, 사랑하는 사람의 곁에 있는 다는 것이 더 중요한 사람이다. 그러다 보니 그녀가 남한이라는 사회에서 풍요로움을 누리지만, 자유에 대해서 어느 정도 제약을 받는다. 감독은 이런 인옥의 상황을 상징적인 장면을 통해서 은유적으로 인상적이게 보여준다. 카메라는 창문 밖에 있고, 창문의 창살 사이로 인옥과 북한 고위 간부가 대화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장면인데, 창문의 창살이 남한에서 인옥의 상황을 암시하는 것 같다.

 

 영화는 양극단에 있는 사람들의 맹신적 행태에 대해서 후반부에 가서 조롱하고 비꼰다. 좁은 공간에 양쪽 조직의 사람을 몰아넣고 관객들로 하여금 양쪽 사람들의 행태를 관찰하도록 만든다. 주먹으로 서로를 치고 받다가 나중에는 서로가 서로에게 총을 겨누는 상황을 통해서 양쪽의 불신이 얼마나 극에 달하는지를 보여준다. 이런 모습은 단순하게 보면 우리 남북 양국의 지금의 모습을 그대로 보여준다. 서로를 믿지 못해서 총 뿌리를 겨누는 행태를 직설적으로 보여주는 장면이다. 경제학에서 말하는 죄수의 딜레마 같은 상황이 양쪽 모두에게 피해가 된다는 것을 알게 해준다. 남북의 극단적 대치 상황에 대한 감독의 직설적인 표현이다.

 

 하지만, 개인적으로 그런 장면들을 보면서 이 영화의 시나리오를 쓴 김기덕 감독과 겹쳐진다. 영화계 주류에서 외면 당하고, 독자적으로 영화를 만들어온 그의 모습이 윤계상이 연기한 주인공의 모습인 것만 같다. 소속에 대한 선택을 강요 당하는 현실에 대한 항변으로도 보인다. 이 영화는 어떻게 보면 최인훈의 소설 "광장"과 비슷하다. 단지 차이가 있다면, 소속을 강요 당하는 현실적 폭력이 더 강하게 표현되어 "광장"이 배경으로 하고 있는 시대보다 지금이 더 시대에 뒤쳐졌다는 느낌을 줄 정도다. 시민들의 의식이 점점 더 성숙하고 사회는 민주화 되었는데, 보이지 않는 협박과 강요 그리고 교묘해지고 잔인해진 폭력에 대한 감독과 김기덕 감독의 성찰과 이해가 영화의 엔딩과 함께 긴 슬픔을 남긴다.



풍산개 - 8점
전재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