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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를 보고

미디어와 언론이 만들어 내는 허구 알기. 영화 "트루맛 쇼"를 보고..

by 은빛연어 2011. 6. 28.

 언론은 언제나 진실을 추구한다는 이상적인 말은 이제는 역사의 유물이 되어 간다. 물론 아직도 투철한 사명 의식으로 치열하게 진실을 추구하는 언론과 언론인이 존재하긴 하지만, 그들의 영향력은 거대 미디어 그룹의 힘 앞에서 미약하기만 하다. 이러한 현상을 단순히 언론끼리의 치열한 경쟁에서 생겨난 결과라고 치부할 수 있으면 좋겠지만, 사실은 재미와 선정적인 것을 추구하는 대중들의 기호 또한 언론의 이러한 변화에 많은 영향을 주지 않았을까? 결국 언론의 타락과 변심은 단순히 그들만의 죄라고 함부로 말할 수가 없을 것 같다. 

 이탈리아에 거대 미디어 제국을 건설했고, 나중에는 총리까지 오른 베를루스코니라는 인물의 행태와 이탈리아 국민들의 의식 수준을 보면, 아직까지 우리나라는 거대 미디어 그룹이 존재하지 않아서 외국만큼 피해가 심각하지는 않다고 할 수 있다. 수 많은 추문과 부정부패에도 굳건한 지지도를 형성하고 있는 베를루스코니를 보면, 언론의 사명의식을 상실한 대가가 얼마나 큰 지를 알 수 있다.베를루스코니는 언론과 정치권력이 결합한 병폐라면, 거대한 미디어 그룹이 탄생해서 일어나는 독점의 폐해도 곳곳에서 일어나고 있다. 지역의 목소리를 대변하는 언론은 거대 미디어에 합병 인수되어 지역의 목소리를 담지 못하는 현실을 물론, 진실은 왜곡되고 거대 미디어 기업의 이해에 따른 거짓 된 사실이 널리 퍼진다. 

 바그디키언의 책 "미디어 모노폴리"는 우리가 인식하지 못하고 있는 미디어와 언론의 현실에 대해서 놀라운 사실을 전해준다. 언론은 물론이고 학문의 영역에서도 진리보다는 이익을 위해서 움직이고 있는 현실을 보게 된다면 과연 우리가 믿어야 할 것은 무엇인지 대해서 의문을 가질 수 밖에 없게 만든다. 아무리 배금주의가 판을 치는 세상이라고 해도, 변하지 말아야 할 가치마저 변해가는 세상이 서글프다. 

 그런데 지금 우리나라도 이제 거대 미디어 그룹들이 탄생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되고 있다. CJ 같은 경우는 케이블 방송과 영화 분야에서 거대한 미디어 그룹을 이루고 있다. 아직 언론사와 출판사를 가지고 있지 않긴 하지만, CJ의 영토확장은 앞으로도 계속 될 것으로 보인다. 미디어 빙뱅의 시대를 맞이해서 탄생한 종편방송 또한 거대 미디어 그룹의 탄생을 촉진할 것으로 보인다. 거대 언론사들이 너도 나도 뛰어들고 있는 종편방송은 우리나라 미디어 시장에 비해서 너무 많이 허가되어 생존을 위한 경쟁이 치열하겠지만, 경쟁에서 살아 남은 종편방송은 거대 신문사와 결합해서 미국의 FOX TV같은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이렇게 되면, 우리는 진실을 추구하는 언론과 미디어 보다는 미디어 그룹의 이익을 위한 언론과 미디어를 만날 수 밖에 없게 된다. 치열한 생존 경쟁의 환경에서 미디어 그룹들은 돈이 되는 것을 추구할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결국 이러한 피해는 시민들에게 돌아오게 되고, 결국 알고 싶은 것을 알게 되는 것이 아니라 미디어 그룹에게 돈이 되는 알려주고 싶은 것만 알게 된다. 그런 현상에 대해서 깨어있는 시민들은 자기만의 기준으로 비판적으로 정보를 수용하겠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무조건적으로 수용하게 된다. 무의식적으로 언론과 미디어가 가지고 있는 신뢰와 권위를 그대로 믿기 때문이다. 

 무의식적인 신뢰와 권위에 기대어 미디어와 언론은 사실이 아니라 허구를 창조해 낸다. 영화 "트루맛 쇼"는 언론과 미디어가 만들어낸 허구 중에 "맛집"에 대해서 날카롭게 파헤친 작품이다. 방송을 보고 맛집을 방문한 사람들의 입을 통해서, 방송에서 보여주는 맛집이 진정한 맛집이 아니라는 사실을 어렴풋이 알고는 있지만, 이렇게 노골적으로 그 행태를 보여주는 작품은 일찍이 없다는 느낌을 줄 정도로 제대로 방송과 미디어를 조롱한다. 허구와 거짓을 방송하는 방송과 미디어에 대해서 분노하고 화가 나기도 하지만, 영화에서 보여주는 조롱에 방송에 속았다는 사실을 잠시 망각하게 만들고 보는 이로 하여금 잠깐 민망함을 느끼게 만드는 것 같다. 

 시사 고발 다큐멘터리의 경우 대체로 보는 이로 하여금 주로 분노 만을 느끼게 만든다. 세상의 통념과 상식을 뒤집어 버리는 위선과 거짓말에 속았다는 감정과 함께 자기 내부의 정의감까지 더해지면서 그 분노는 극대화 되어 표출되는 것이다. 이 영화도 시사 고발 다큐멘터리 답게 보는 내내 몰랐던 사실에 대한 불편함과 거짓과 위선으로 가득 찬 방송에 대한 분노를 느끼게 된다. 그런데 이 영화는 그런 감정을 한 단계 뛰어 넘는다. 딱딱하게 느껴지기 쉬운 내용과 함께 이야기가 더해져 있다. 단순히 잠입 취재와 몰래 카메라로 거짓을 밝혀내는데 그치지 않고, 직접 그런 거짓 방송 속으로 뛰어든 이야기를 담고 있다. 잠입과 몰래 카메라와 함께 거짓 맛집으로 실제로 방송을 따는 것을 보여주는 이 영화는 종종 긴장감 있는 스릴러 같은 느낌이 들 정도로 재미있는 이야기를 만들어 낸다. 

 단순하게 현실은 이런 것이고, 지금까지 우리는 거짓과 위선에 속으며 살아왔다고 보여 주는게 지금까지의 시사 다큐였다면, 이 영화는 위선과 거짓으로 찬 세상에서 우리도 거짓과 위선으로 우리를 속여온 이들을 속였습니다라는 식으로 통쾌함을 전해 준다. 이 영화가 소수의 극장에서 개봉해 소수의 관객만이 찾을 작품으로 남을 수 밖에 없는 것이 안타깝게 느껴진다. 여전히 현실과 사실을 모르는 사람들은 언론과 미디어에 속을 것이고, 언론과 미디어는 여전히 거짓과 허구를 만들어 그것이 사실인 것처럼 꾸며낸다. 결국 우리가 살고 있는 이곳은 사실이 존재하는 곳이 아니라 만들어진 판타지 세상이 되지 않을까. 언론과 미디어의 신뢰와 권위에 대한 맹목적인 믿음을 이제 거부해야 할 때다. 

트루맛쇼 - 10점
김재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