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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를 보고

원작과는 또 다른 매력의 영화. 영화 "고백"

by 은빛연어 2011. 3. 30.


고백
감독 나카시마 테츠야 (2010 / 일본)
출연 마츠 다카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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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나토 가나에의 소설 "고백"은 충격적인 소재를 바탕으로 사건에 등장하는 사람들 각자의 독백으로 이야기를 풀어간다. 소재나 이야기도 읽는 사람으로 하여금 충분히 매력적이지만, 독백하는 개별 인물의 심리를 탁월하게 끌어내서 보여주는 미나토 가나에의 능력에 경탄하게 되는 소설이다. 윤리적으로 보면 교사가 어떻게라는 시선으로 볼 수 있는 작품이기는 하지만, 교사도 한 인간이라는 관점에서 접근하고 있는 이 소설은 인간의 불완전성을 매력적으로 보여주는 작품이다. 아마도 그런 매력이 많은 사람들에게 읽히게 만드는 힘이지 않았을까. 


 소설을 읽고 나면 한 동안 마나토 가나에가 만든 세계에서 빠져 나올 수가 없다. 조금씩 엇갈리는 각자의 시선과 이야기가 결국에는 파괴적인 결말로 치닫는데, 그 과정을 통해서 작가는 각각의 인물들에게 따뜻한 동정의 시선을 내뿜는다. 삐뚤어진 등장인물들의 독백과 이야기를 듣다보면 그들의 실수나 잘못에 연민을 느끼기에 충분하다. 하지만, 독자가 느끼는 연민에 비해서 등장인물들이 가지고 있는 분노와 파괴적 에너지는 더 크다. 결국 그것이 파괴적 결말을 만들어내고, 연민의 감정을 많이 느끼던 독자는 그 파괴적 결말에서 쉽게 빠져나올 수 없는 강렬한 인상은 받는다. 그리고 그 강렬한 인상은 뇌리에 깊이 박혀 쉽게 잊혀지지 않는다. 


 그런 소설의 매력은 영화에 대한 호기심을 충분히 자극한다. 등장인물의 독백으로 이야기하는 소설을 어떤 방식으로 영화로 표현할 것인지 궁금하고, 거기에 과연 소설에서 만큼 탁월하게 등장인물들의 심리나 개성을 표현해 낼 수 있을지도 궁금해진다. 소설이 가진 힘은 단순한 이야기가 아니라 탁월한 심리묘사가 어우러진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소설을 원작으로 하는 영화 중에 원작과 비교당해 평가절하 당하는 것은 원작이 가진 장점을 빼고 이야기을 영화로 구현한 경우가 많기 때문인데, 영화와 소설은 표현방식이 완전히 다른 매체이다보니 나타날 수 밖에 없는 현상이기도 하다. 


 영화는 아이들이 시끄럽게 떠들고 있는 교실에서 담임교사가 이야기하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이야기하는 와중에도 아이들이 떠들고 장난치는 것에 괘념치 않으며, 차분한 목소리로 아이들에게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한다. 그러다 여교사 유코는 얼마전 죽은 딸이 사고사가 아니라 살해 당했다고 말하고, 그 범인은 우리반에 있다고 말한다. 갑자기 교실의 아이들은 차분해지고 흥미진진한 유코의 이야기에 집중하기 시작한다. 사건을 차분히 이야기한 유코는 법적으로 처벌할 수 없는 범인들에게 자신만의 방법으로 벌을 주겠다고 말한다. 그렇게 유코의 고백은 끝나고 본격적으로 다른 등장인물들의 고백이 시작된다. 


 영화는 원작 소설의 무겁고, 진중한 분위기를 매력적으로 살려내고 있다. 우선 영화의 화면을 전체적으로 조금 어두운 톤으로 만들어져 있다. 거기에 조금 과도하다 싶은 슬로우 모션 장면들이 포함되어 있는데, 배경음악과 묘한 조화를 이루면서 소설이 가지고 있는 분위기를 완벽하게 구현하고 있다. 보통 소설을 읽으면 상상력을 발휘해 이미지를 머리속에 그리게 되지만, 분위기를 살리는 음악은 상상하지 못한다. 그런데 이 영화에서 음악은 영상과 절묘하게 어우러지면서 팽팽한 긴장감을 끝까지 끌고간다. 영화가 원작 소설보다 더 강렬한 인상을 남기는 것은 원작의 뛰어난 재해석과 완벽한 재현도 있겠지만, 영화와 잘 조화를 이룬 음악의 힘이 크다는 생각이 든다. 


 때론 원작에 충실하고 때론 원작 이상의 감동을 주는 작품이긴하지만, 영화의 마지막에 다시 등장하는 유코는 원작과는 조금 다른 느낌이 든다. 원래 "고백"이라는 단어에는 차분함이 묻어난다. 영화 초반부의 딸을 잃었음에도 분노하지 않고 차분하게 사건과 범인에 대해서 고백하는 유코의 모습이 바로 그런 전형적인 느낌을 담고 있다. 하지만, 영화의 마지막에 등장하는 유코는 냉철함을 가지고 있기는 하지만 죄의식과 슬픔을 동시에 표현해 낸다. 복수라는 칼을 갈면서도 교사로써의 윤리의식과 한 인간으로써의 양심이 동시에 묻어난다.


 원작의 느낌이나 영화의 느낌 중 어느 것이 더 좋다 나쁘다고 함부로 판단할 수는 없지만, 영화 속 유코를 연기한 마츠 다카코는 복수를 하기 위해서 냉정함을 유지하다가 복수가 완료된 순간에 나타나는 겉잡을 수 없는 나타나는 다양한 감정들을 매력적으로 표현해내고 있다. 교사가 제자에게 복수한다는 동양적 정서에 반하는 이야기를 통해서 윤리의식이나 양심을 넘어서는 인간의 불완전성을 말했던 원작을 생각해 본다면, 영화의 마지막에 표현된 유코의 복잡한 감정이 더 이해하기 쉽게 다가온다. 


 이 작품은 원작도 영화도 매우 수작이라고 생각된다. 분명 각각의 표현 매체가 가지는 한계와 차이는 분명히 존재하는 작품이기는 하지만, 그 한계와 차이를 이용해 각자가 표현할 수 있는 것을 모두 표현한 작품이지 않을까. 원작은 등장인물들의 탁월한 심리묘사가 돋보인다면, 영화는 원작이 가지고 있는 분위기와 정서를 음악과 조화시켜 긴장감있게 표현해내고 있다. 원작을 보고 영화를 보는 사람에게는 두 작품을 비교해 보는 재미가, 원작을 보지 못한 사람에게도 영화의 매력적인 분위기와 이야기는 강한 인상을 남기기에 충분해 보인다.


고백 - 10점
나카시마 테츠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