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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를 보고

보이지 않는 공포와 보이는 공포의 묘한 조합. 영화 "줄리아의 눈"을 보고...

by 은빛연어 2011. 3. 28.
줄리아의 눈
감독 기옘 모랄레스 (2010 / 스페인)
출연 벨렌 루에다,루이스 호마르,파블로 데르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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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눈이 보이지 않는 사라의 시선을 따라 카메라의 시선이 움직인다. 사라는 그 방향을 향해 말을 쏟아내지만, 관객에게 보이는 사람은 없다. 지하실로 자리를 옮긴 사라는 천장의 밧줄에 자신의 목을 걸고 아무도 없는 빈 공간을 바라보면서 자신은 죽지 않을거라고 외친다. 그 순간 커다란 발이 사라가 지탱해 서 있던 의자를 차버린다. 매달려 몸부림치며 죽어가는 사라의 모습을 누군가가 어두운 구석에서 카메라로 찍어 댄다. 장면은 바뀌고 프리젠테이션 중인 줄리아가 갑자기 호흡관란을 일으킨다. 쌍둥이 언니 사라에게 무슨 일이 생긴 것을 직감한 줄리아는 남편과 사라가 있는 곳으로 간다. 


 죽은 사라를 발견한 줄리아는 사라의 죽음에 의문스러운 점들을 발견한다. 경찰과 남편은 단순한 자살이라고 말하지만, 줄리아는 언니의 죽음이 타살이라고 생각해 언니의 삶을 추적하기 시작한다. 그렇게 영화는 본격적으로 언니의 삶을 추적하는 줄리아를 보여준다. 사라의 주변 사람들을 만나면서 줄리아는 외롭고 평범해 보이는 언니의 삶 속에서 낯선 존재가 있었음을 알게 된다. 그 낯선 존재가 언니의 죽음에 열쇠를 쥐고 있다고 생각한 줄리아는 정체를 알아내기 위해서 애쓰지만, 주변에 누구도 낯선 존재를 정확하게 기억하는 사람은 없다.


 그렇게 줄리아는 존재가 잘 드러나지 않은 낯선 존재를 추격한다. 눈에는 잘 보이지 않는 존재. 눈이 보이지 않는 사람이 더 잘 알수 있는 존재를 추적한다. 병으로 인해 점점 멀어져가는 눈이 완전히 안 보이기 전에 범인을 잡기 위해서. 영화는 범인이라는 존재를 잘 보이지 않는 존재로 설정하고 긴장감을 극대화 하는 것 처럼 보인다. 워낙 존재감이 없는 존재, 사람들의 시선을 피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존재를 만들어 놓고. 보이면서도 볼 수 없는 살인자에 대한 공포를 만들어 내는 듯하다. 칠흑같은 어둠 자체가 보통 사람에게 공포인 것 처럼.

 

 끝내 범인을 잡지 못한 줄리아는 시력을 상실하게 되고, 수술을 받게 된다. 줄리아는 붕대를 풀기 전까지 휴식과 치료를 병행하며 간병인의 도움을 받게 된다. 그런데 누군가 줄리아를 노리고 집안에 침투하고 공포스러운 분위기를 연출한다. 볼 수 없는 줄리아의 공포는 점점 커지게 된다. 결국 줄리아는 붕대를 풀고 범인과 직접 대결에 나서게 된다. 줄리아가 붕대를 푸는 것은 어둠이라는 공포를 깨고 보는 것으로 그것을 극복하려는 것 처럼 보인다.


 하지만, 영화는 역설적으로 어둠보다 더 공포스러운 것이 빛이라는 것을 보여준다. 영화 초반에 사라가 죽어가는 순간 어둠 속에서 터지는 카메라 플래시는 살인범의 냉혹감과 광기를 돋보이게 보여준 것 처럼. 그리고 줄리아에게 쫓기던 범인이 빛으로 줄리아를 따돌리는 장면이나, 범인에게 자신의 시력이 살아있다는 것을 안 들키려고 연기하던 줄리아에게 보이는 주변상황과 냉동실의 시체는 더 공포스럽다. 어둠과 보이지 않는 공포보다 보이는 것과 빛의 공포가 더 크다는 것을 영화는 매력적으로 표현한다. 


 특히 범인과 줄리아의 마지막 대결에서 보여지는 연출은 인상적이다. 줄리아는 범인의 시선을 피하기 위해서 집의 전원을 완전히 차단해버리고 어둡게 만들어 버린다. 어둠 속에서 줄리아를 찾기 위해서 범인 카메라 플래시를 터트리며 추격한다. 반짝 반짝 빛나는 플래시 불빛 사이로 펼쳐지는 줄리아와 범인의 대결은 긴장감을 극대화 한다. 이 과정에서 어둠에 숨어 있는데 능한 범인이 오히려 빛을 이용해 줄리아를 찾고, 보기 위해서 붕대를 풀었던 줄리아는 오히려 어둠 뒤에 숨는다. 결국 두 사람의 처지는 뒤바뀌고 범인은 줄리아가 비추는 빛에 공포감을 느끼게 되고, 줄리아는 점점 보이지 않는 눈에도 불구하고 범인을 압도 한다. 


 이 영화에서 또 인상적인 장면은 범인의 최후다. 뭉크의 "절규"를 연상시키는 듯한 연출은 강한 인상을 남긴다. 보이지 않는 것 존재감 없는 것이 자신이 범죄로 이용할 수 있는 최대의 무기이지만 오히려 그것이 범인 내부의 커다란 절망감이었다는 것을 매력적으로 보여주는 장면이다. 영화의 초반은 좀 지루한 감이 있기는 하지만, 전체적으로 영화는 빛과 어둠,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의 공포를 잘 혼합해서 어쩌면 보이는 것이 더 공포스럽다는 것을 매력적으로 보여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