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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고

파괴적인 자기 성찰과 회의적인 인간의 이야기. 책 "인간실격"을 읽고...

by 은빛연어 2011. 3. 17.

인간실격
카테고리 소설 > 세계문학 > 일본문학선
지은이 다자이 오사무 (시공사, 2010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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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교성이 많이 부족한 인간이다보니 어느 무리에 속하지 못하고 동떨어져 있다는 생각을 많이 할 때가 있다. 무리에 섞여 있어도 동화되지 못했던, "미운 오리 새끼" 같다고 할까. 자신이 백조이기에 오리 무리에 섞이지 못한 "미운오리새끼"는 나중에 자신의 정체성을 다시 확인하고 백조무리와 어울리면서 해피엔딩으로 끝나지만, 같은 종으로 이루어진 무리에 어울리지 쉽게 어울리지 못하는 아웃사이더들에게는 어떤 엔딩이 기다리고 있을까? 


 무리에 속하지 못해 자신을 독특한 존재로 규정하고 스스로 광대짓을 하는 주인공 요조. 그가 행하는 자기자신에 대한 회의와 성찰의 과정은 잔혹하다. 석가모니는 태어나면서 "천상천하 유아독존"이라고 말하며, 존재하는 것 자체가 유일하며 존귀하다고 설파했지만, 요조는 자신의 존엄성과 존귀함을 깨닫지 못한다. "생각하면 할수록 알 수가 없어서 나 혼자만 완전히 괴상한 사람인 듯한 불안감과 공포감이 덮쳐들 뿐입니다."라며 스스로의 존엄성을 갉아먹는 요조. 그는 단순한 아웃사이더가 아니다. 스스로를 무리와는 다른 존재로 새롭게 규정한다. 어쩌면 그 잔혹함은 그런 자기자신에게서 나오는 것 같다. "미운오리"가 오리 무리에 속하지 못하는 것이 자신이 백조라는 것 때문이듯. 


 그럼에도 주인공 요조가 보여주는 자기파괴적 성찰이나 자기규정은 낯설거나 거부감이 들지 않는다. 스스로에 대한 성찰과 정의는 다를지 몰라도 나는 여전히 요조처럼 나에 대해 생각하고 "인간실격"이라고 자조한다. 무리에 적응하지 못해, 그냥 동떨어진 존재로. 내성적인 성격이나 부족한 사교성의 문제라고 나는 결론을 내린다. 언제나 같은 고민 같은 결론. 그리고 변화없는 일상. 요조는 스스로를 다른 존재로 정의하고 자신의 존재를 광대짓으로 깊은 곳에 숨겨버렸지만, 나는 언제나 정체 중. 결과적으로 자기의 존재를 완전히 파괴해버리는 요조가 어쩌면 더 인간다운 삶을 살았다는 생각이 든다. 지금의 삶이 어떻든 살아가는 것이 삶이고 인생이니까.


 그럼에도 요조는 왜 점점 더 자신을 파괴하게 되었을까 생각해본다. 자기 나름대로 살아가면서 삶을 이루고 있었으면서도, 왜 해변을 향해서 걷지 않고 깊은 바다 심연으로 걸어갔을까. "겁쟁이는 행복조차도 두려워하는 것입니다. 솜에도 상처를 입는 것입니다. 행복에 상처를 입는 일도 분명 있습니다."라는 부분에서 요조 안에 두려움을 본다. "행복"조차 두려워하는 나약함이랄까. 그런데 요조 만큼은 아니지만, 자신의 인생 그리고 미래에 대해서 두려움을 갖지 않는 사람은 어디에 있을까.  삶이란 예정된 것이 아니니까 그냥 살아가는 것이 아니던가. 미움을 받으며 살아가던 오리가 백조를 만나서 자신의 정체성을 확인하듯. 하지만 요조는 철저하게 자신을 고립시켜 버린다. 자신에 대해서 "인간실격"이라고 말하고 결국에 죽음이라는 선택을 할 정도로. 


  이런 그의 인생과 생각 그리고 선택에 대해서 외로워서 두려워서라고 함부로 말할 수가 없다. 무리에서 버림받지 않기 위해서 아등바등 거렸던 미운 오래처럼, 우리도 사회라는 시스템에서 낙오되지 않기 위해서 아등바등거리지 않는가. 외롭지 않기 위해서 두렵지 않기 위해서. 요조는 그냥 살아가는 삶에서 자신을 중심에 두었다면, 우리는 무리라고 불리는 사회 시스템에 삶의 중심을 두면서 살지 않는가. 자신의 삶을 파괴하는 요조의 삶이 멋지다고 말 할 수는 없지만, 외로움과 두려움 때문에 사회에 삶을 맞추는 우리네 인생은 또한 과연 멋진 것일까? 인생과 자신에 대해서 회의와 성찰을 하지 못하고, 사회의 부품이 되어 살아가는 우리들이 더 "인간실격"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인간실격 - 10점
다자이 오사무 지음, 양윤옥 옮김/시공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