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책을 읽고

모호함과 불명확함이 만들어내는 묘한 매력의 소설. 책 "나사의 회전"을 읽고.

by 은빛연어 2011. 4. 24.
나사의회전
카테고리 소설 > 영미소설 > 영미소설문학선
지은이 헨리 제임스 (시공사, 2010년)
상세보기



 현대 예술의 가장 큰 특징은 "대상성"이 파괴된다는데 있다고 한다. 대상성이란 대상이 가지고 있는 속성이나 특징을 말하는데, 그 대상성이 파괴된다는 것은 쉽게 이야기 하면 우리가 알고 있는 어떤 물체의 형태나 색감이 전혀 다른 형태로 표현 또는 해방되는 것을 말한다. 이것은 기존에 가지고 있던 명확함은 사라지거나 불명확해지게 만들고,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해석의 여지를 넓게 만든다. 작가가 생각했던 명확한 주제의식과 표현은 독자나 관람자들의 저마다 다양한 해석을 통해서 재탄생 된는 것이다. 


 이렇듯 모호함과 불명확함은 다양한 해석의 여지를 남겨두지만, 다른 한편에서는 명확하게 알 수 없다는 것에 대해서 불쾌감이나 짜증을 만들기도 한다. 시험 칠 때 머리속에만 맴돌던 답이 생각나지 않을 때의 짜증이나, 대화를 할 때 특정 단어가 머리 속에서만 맴돌때의 짜증은 누구나 경험하는 것들이다. 예술이라는 분야가 해석의 다양성과 상상력의 자유를 추구하는 경향이 크다보니 불명확성이 차지하는 공간을 상상력이 자유롭게 놀수 있도록 만들지만, 그 외의 분야에서는 불명확성이란 인간이 극복해야 될 대상으로 취급된다.


 사람들은 보통 진실은 존재하고, 그 진실은 명확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것을 종교라는 믿음으로 생각하는 사람도 있고, 아인슈타인과 같은 과학자들은 세상의 진리를 풀어줄 통합이론이라는 것인 존재할 것으로 생각하고 연구에 매진한다. 아직까지는 종교도 과학도 인간이 궁금해하는 절대적인 진실이나 진리를 명쾌하게 풀어주지 못하고 있다. 그런데 사람들은 그런 분야에서도 모호함을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하이젠베르크가 발표한 불확정성의 원리는 명확함을 추구하는 학자들의 목표에 충격을 줬고, 아인슈타인은 "신은 주사위 놀이를 하지 않는다."라는 말로 당혹감을 표시했다. 


 객관성과 명확함을 추구하는 과학분야에서도 불명확함이 하나의 이론으로 등장했지만, 사람들은 여전히 명확한 것을 좋아하고 불명확한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그래서 아무리 불명확성을 예술로 승화시켜 자유로운 상상력을 긍정하는 예술분야라고 해도 호불호는 극명하게 갈리게 된다. 해석의 자유 마큼, 좋고 싫음에 다양한 이유가 존재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불명확한 것을 싫어하는 사람들의 성향이 더 많이 반영된 것이 아닐까.


 소설 "나선의 회전"은 불명확함으로 점철된 책이다. 소설의 전반에 분위기를 만들어내는 이야기나 존재들이 끝까지 명확하게 드러나지 않는다. 넓고 두르뭉실하게 전개되었던 이야기와 존재 그리고 사건이 소설이 진행되면서 점점 명확한 결말을 보여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면 크게 실망하게 만든다. 그런데 그런 실망감보다 묘한 매력을 발산한다. 소설 전반에 표현되는 기괴하면서도 섬뜩한 분위기는 읽는 사람을 앞도하는 듯 하다. 


 원래 공포라는 것은 보이지 않는 것 불명확한 것에 의한 것들이 많다. 죽음이라는 것 자체가 무섭기도 하지만, 우리가 죽음을 무서워하는 것은 죽음 이후의 세상에 대해서 모른다는 것이 더 두렵게 만든다. 종교가 내세나 사후세계의 모습을 각자의 모습으로 만들어서, 종교를 믿는 사람들에게 죽어서 구원받을 것이라고 하는 것은 바로 불명확한 것에 대한 공포를 명확함으로 없애려는 행위인 것이다. 이 소설의 전반에 흐르는 불명확성은 궁금증을 야기하기에 앞서서 공포나 섬뜩함을 만들어 낸다. 


 그런데 불명확성이 만들어낸 공포감으로 이 소설의 분위기를 다 설명하기는 힘들다. 불명확성 하나만으로는 쉽게 짜증내는 사람들도 있으니까. 저자가 서문에서 " 문제는 순전한 통합성, 명료성과 완결성을 목표로 삼으면서도 자유롭게 작용하는, (말하자면) 지나칠 정도로 작용하는 상상력에 의존하는 것이었다. 이러한 법칙에 따르면, 상상력은 자유롭지 않으면 발휘되지 않고 통제되지 않으면 즐거움을 주지 않는다."라고 말한 것 처럼, 불명확성에 수 많은 상상의 여지를 남겨둔다. 거기에 책 제목 "나사의 회전"처럼 실체가 들어날 듯 아닐 듯 방빙 맴도는 듯한 특이한 묘사가 쉽게 손을 땔 수 없게 만든다.


 어느 미학 책의 "작품이 불확실할 때 우리는 '미적 쾌감'을 느끼고, 작품이 질서정연하고 예측 가능할 때 우리는 작품의 '의미'를 이해한다"라는 말처럼, 불명확성이 넘쳐나는 이 소설은 읽는 독자들로 하여금 작품의 의미를 쉽게 이해하지 못하게 만든다. 그렇다고 이 작품의 모호함이 '미적 쾌감'을 만들어내는지도 잘 모르겠다. 하지만, 모호함과 불명확성은 읽는 사람으로 하여금 묘한 매력에 빠져들게 만들고 쉽게 빠져나오지 못하게 만든다.

나사의 회전 - 8점
헨리 제임스 지음, 정상준 옮김/시공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