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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고

반항하지 못해 희생자가 된 사람들. 책 "차가운 밤"을 읽고..

by 은빛연어 2011. 2. 13.

차가운밤 상세보기


 소설의 도입부터 무기력함이 풍겨온다. 대피소를 빠져나 왕원쉬안이 스스로를 줏대 없는 인간이라고 자학한다. 멍하게 자신의 처한 딜레마 같은 상황에서 혼잣말을 중얼거리면서 우왕좌왕한다. 자신이 처한 문제를 알면서도 해결방법을 모르는 자신이 그저 답답할 뿐이다. 차라리 지금 벌어지고 있는 중국과 일본의 전쟁과 같이 작은 개인의 힘으로 어쩔 없는 문제라면 거대한 역사의 흐름에 자신을 맡겨 버리면 되겠지만, 집안의 가장으로 스스로 풀어야 가정의 문제지만 함부로 결단을 내릴 수가 없다. 그래서 자신은 스스로를 자학 중이다.

 

  인간을 무기력하게 만드는 것이 사람의 성격일까 아니면 사회일까 생각해 본다. 많은 사람들은 요즘 젊은 세대를 무기력하고 이기적인 세대라고 말하는데, 그들을 분석한 다양한 글들을 보면 결국에 책임은 기성세대가 만들어 놓은 지금 세상이라고 지적하는 것들이 많다. 물론 개인의 우유부단한 성격과 같은 것들이 개인을 무기력하게 만들기도 하겠지만, 결국 주변을 둘러싸고 있는 세상이 그를 무기력하게 만드는 것이 아닐까? 그럼에도 기성세대는 젊은 세대를 비난할 , 사회적 문제를 둘러보지 않는다. 철저하게 개인화되어 버린 사람들. 그래서 철저하게 문제의 책임을 모두 개인에게 돌려버린다.

 

  소설의 작가 바진도 주인공 왕원쉬안이라는 개인에 집중한다. 왕원쉬안의 무기력함이 개인의 문제인 것처럼. 병에 걸린 주인공, 어머니와 아내의 심각할 정도의 고부갈등, 자신의 삶을 찾아가기 열망하는 아내, 직장 동료의 갈등 . 개인이 겪는 다양한 갈등이 소설에 등장한다. 특히 소설의 처음부터 끝까지 평행선을 달리는 고부간의 갈등은 왕원쉬안에게 너무 잔인한 고통을 야기 한다. 현실에서도 고부간의 갈등 중심에 있는 아들이자 남편이 어느 쪽의 편을 들어 쉽게 끝낼 있는 문제가 아닌 것처럼, 왕원쉬안의 고민과 고통 또한 쉽게 답을 찾을 없는 상황이다. 그래서 왕원쉬안의 무기력함과 소설 속의 나타난 허무주의에 감염되는 같다. 소설의 끝까지 이런 분위기의 반전은 없다.

 

 아들을 지극히 사랑하는 어머니와 사이에 끼어드는 아내라는 존재로 관계를 한정 한다면, 누군가는 고부간의 갈등을 남자를 사이에 여자들의 질투라고 쉽게 말할 있을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바진은 사이의 갈등을 단순하게 개인의 문제로 묘사하지 않는다. 조금은 극단적인 같은 갈등의 내용이지만, 다른 세대간의 갈등을 보여준다. 아들의 병을 두고 철저하게 전통의학을 고집하는 어머니의 모습과 그와 대립해 현대의학의 진료를 권하는 아내의 모습은 세대간의 차이를 극명하게 보여주는 단순한 예일 뿐이다. 속에서 반복되는 많은 갈등을 시대적 변화에 따른 구시대적 인물인 어머니와 신세대적 인물 아내의 대립을 고부간의 갈등으로 단순화할 수가 없다.

 

 뿐만 아니라, 속의 세대 갈등은 절대로 만나지 않은 기차의 양쪽 철로 처럼 접점 없이 마주 달리기만 한다. 그렇지만 함부로 쉽게 구시대적 인물의 나쁘다 아니면 신시대적 인물이 나쁘다 쉽게 단정할 없다. 바진은 어느 쪽을 일방적으로 편들지도 비난하지도 않는다. 가치관의 차이에서 일어나는 갈등을 두고 누가 쉽게 옳고 그름을 판단할 있단 말인가. 하지만, 주인공인 왕원쉬안을 무기력하고 허무주의적 인간으로 만드는데 가장 영향을 끼치는 인물이 어머니라는 점에서 본다면 바진은 구시대적 인물에 대해서 조금 비판적이다.

 

 현실을 마주해보자. 사실 우리는 책을 읽으면서 작가가 만들어 놓은 가치관을 통해서 그가 만든 세계를 바라보기에 가치의 판단을 쉽게 있다. 작가의 의도를 이해하고 공감하며, 그가 창조한 인물들에 대해서 각각의 감정을 이입시켜 소설 속의 세계를 바라본다. 하지만, 소설의 갈등을 현실의 진보와 보수의 갈등이나 세대간의 갈등으로 확대 생각해보면 쉽사리 판단할 없는 딜레마 같은 상황들이 많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래서 접점이 없는 갈등이 반복된다. 그것은 어느 세대 어느 시대에서는 똑같이 발생한다. 그렇다고 갈등은 언제나 존재한다고 무관심하게 바라보면 그것 또한 허무주의이나 무기력함이다.

 

 생각해보면, 오늘날의 구세력 또는 구세계로 불리던 사람들은 과거의 신세계적인 인물들이지 않았을까? 그들도 모르는 사이에 조금씩 변화한 세상에 적응하면서, 자신이 자라왔던 과거와는 다른 지금의 세계를 만들어 오지 않았던가. 하지만, 그들이 권력의 중심부에 올라가면서 언제부터인가 그들은 자신의 권력에 취해서 구세력이 되어 버렸다. 신세력 또는 신세대들의 변화의 요구나 의지에 대립하는 것은 변화흐름을 읽지 못해서라기 보다 자신이 차지한 힘을 놓지 않기 위해서다. 그래서 소설 속의 구세력들이 왕원쉬안과 그의 가족의 행복한 삶을 보장하기는 커녕 다양한 갈등을 방치하거나 조장한다. 어머니가 표면적인 존재이기는 하지만, 가정과 개인의 삶을 피폐하게 만드는 구세력은 인물이나 사건으로 특정하기 힘든 보이지 않는 것들에 숨어 버린다.

 

 소설 속의 사람의 극단적인 갈등으로 붕괴되는 가정의 모습을 보면 1차적 문제의 책임은 가정내부로 돌려버리는 같다. 인간을 무기력하게 만드는, 아니 지금 나약하고 무기력하며 허무주의에 빠진 젊은 세대들에 대해서, 책임을 개인의 탓으로 돌려버리는 구세대적 책임회피 처럼. 젊은 세대들을 옴짝달싹 하지 못하게 만들어 허무주의와 패배감 그리고 무기력함을 느낄 밖에 없는 사회를 만들어 놓고, "너희가 못나서 그렇게 거니까 너희 책임이야"라고 말하고 책임을 회피하면서 많은 왕원쉬안을 계속 만들어내고 그들을 비난한다. 그렇게 현재의 구세력들은 파편화된 개인 뒤에 숨어버렸다.

 

 바진은 자신의 소설 인물들에 대해서 "그들의 모든 행동은 본심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다. 붕괴할 구사회, 구제도, 구세력이 뒤에서 그들을 지휘하고 있다. 그들은 반항하지 않았기 때문에 모두 희생자가 되고만 것이다."라고 하며 "나는 명의 주인공 모두 동정하지만, 그러나 또한 그들 모두를 비판한다."라고 말한다.


 홍익대 청소 노동자들 문제에 대해서 총학이나 홍익대 학생들이 보여줬던 무관심이나 구세력에 순응적인 모습을 보면서 "반항하지 않았기 때문에 모두 희생자가 되고만 것이다."라는 말이 뇌리에 머문다. 반항하지 않는 그들 중에 누군가는 자신의 꿈을 위해서 열렬히 살았지만 허망하게 죽어야 했던 시나리오 작가 최고은처럼 언젠가 다른 희생자가 되지 않을까. 이젠 파편화된 개인의 뒤에 숨어 있는 구세력에 대해서 반항해야 때가 되지 않을까? 언제까지 왕원시안이나 최고은처럼 희생자가 수는 없지 않는가


차가운 밤 - 10점
바진 지음, 김하림 옮김/시공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