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올해는 한국전쟁 60년, 한일합방 100년이 되는 해다. 몇 몇 언론에서는 올해 초부터 한일합방 100년에 대한 다양한 특집기사를 비롯해 한일양국의 역사인식에 대한 다양한 시선을 보도하고 있지만, 전체적으로 보면 100년이라는 것에 큰 의미를 부여하고 성찰하는 움직임은 크지 않은 것 같다. 치욕스러운 역사적 사건이기에 기억하기 싫어서 그러는 것인지 정확히 모르겠지만….
반면 한국전쟁 60년에 대해서는 영상 산업 쪽에서는 일찌감치 작품을 기획하고 제작 중이거나 또는 계획 중이다. 영화로는 "포화 속으로"를 비롯해 연평해전을 소재로 한 곽경택 감독의 "아름다운 우리"와 뉴라이트가 후원하는 작품으로 알려진 "연평해전", 1964년에 만들어진 고 신상옥 감독의 "빨간 마후라"의 속편이 만들어질 예정이다. 드라마로는 100%사전 제작 방식으로 만들어지고 있는 mbc의 "로드넘버원"과 80년대 유명했던 드라마를 리메이크한 kbs의 "전우"가 있다. 이들 작품 중에 올해 만나 볼 수 있는 작품들은 "포화 속으로"와 "로드넘버원" 그리고 "전우"이고 나머지 작품들은 해를 넘겨서 관객들을 찾아올 예정들이다.
그 중에 가장 먼저 스타트를 끊는 작품이 이재한 감독의 "포화 속으로"다. 포항을 사수하기 위해서 목숨을 바쳐야 했던 71명 학도병의 실화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작품으로 100억이 넘는 제작비와 권상우, TOP, 김승우, 차승원 같은 스타배우들이 출연하기에 많은 기대를 받고 있는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많은 작품들이 월드컵을 피해서 개봉일을 뒤로 미루는 상황에서 용감하게도 월드컵 기간에 개봉을 감행할 정도로 제작사 측에서는 자신감이 충만한 작품인 것 같다. 개인적으로는 이재한 감독의 연출 스타일이 마음에 들어서 기대하는 작품이기도 하다.
영화는 나라를 지켜야 한다는 명목으로 전쟁이 어떤 것인지 알지 못하는 어린 학도병의 시선으로 전쟁을 그리고 있다. 어떻게 보면 전쟁의 잔혹함에 대한 성찰을 더 잘할 수 있는 시선으로 영화를 전개해 나간다. 특히 영화의 초반부부터 그런 TOP이 연기한 오장범의 시선으로 전쟁의 무서움과 죽음의 공포를 잘 이끌어간다. 겁에 질려서 총을 쏘지 못하고 그런 자신 때문에 중상을 입은 소대장의 곁을 끝까지 지키며 죽음이라는 것을 정면으로 대면해야 했던 어린 학도병의 시선과 감정은 잘 묘사되어 있다.
뿐만 아니라, 처음으로 북한군의 순찰대와 대면해서 총격적을 벌이고, 부상당한 북한병사가 죽어가며 엄마를 부르는 장면을 대면한 오장범이 어머니에게 편지를 쓰면서 북한군이 머리에 뿔이 난 괴물이 아니라 자기와 같은 보통 사람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는 모습도 보여준다. 자신들을 공격한 아주 어린 북한군 병사를 보고 총을 쏠지 말지 인간적 고민을 하는 오장범의 모습까지 더해서 영화는 전쟁에 대한 진지한 성찰과 고민을 보여주는 것 같다.
하지만, 영화는 그런 시선을 끝까지 유지하지 못한다. 전쟁의 광기 속에 오장범을 비롯한 71명의 학도병들이 물들어가는 것처럼, 영화도 전쟁의 광기에 같이 물들어 가버린다. 전쟁에 대한 성찰과 고민은 없고, 살기 위해서 죽여야 하고, 죽이기 위해서 살아야 하는 전장의 현실을 그대로 보여준다. 끊임없이 쏘아대는 총알과 포탄처럼, 끊임 없이 전쟁의 광기와 그 속에 있는 인간의 광기를 끊임없이 쏟아낸다.
그러다 보니, 영화는 마지막으로 갈수록 관객마저 광기에 물들게 만들어 버린다. 죽을 힘을 다해서 북한군에 저항하다 처량하게 하나 둘 씩 죽어가는 학도병들을 보면서 연민과 슬픔을 느끼게 만들고, 그렇게 함으로써 전쟁에 대한 공포나 무서움보다는 적을 죽여서 살아남아야 한다는 절박한 생존의 의지와 적에 대한 맹목적인 분노를 느끼게 만든다. 오장범과 구갑조의 장렬한 죽음과 북한군 대장 박무량의 잔인함과 냉혹함을 대비시켜서 놓아 명백하게 적과 아군을 구분시켜 놓은 것도 관객들을 물들인다.
이러한 전쟁에 대한 성찰의 부족으로 영화의 작품성이 떨어지는 것은 그렇게 큰 문제가 아닐 수도 있다. 관객을 마음을 움직이는 것은 결국에 영화의 작품성이 아니라, 영화가 보여주는 이야기의 감동이니까. 그런데 이 영화는 실화를 바탕으로 하고 있지만, 그 실화의 사실 71명의 학도병이 포항을 지키기 위해서 맹렬한 전투를 벌이다 전사했다는 사실을 넘지 못한다. 한국전쟁 당시 민간인들이 미군에 학살당한 노근리 사건을 기록한 영화 "작은 연못" 처럼 역사적 사실을 기록하기 위한 영화가 아니라, 분명 100억이 넘는 제작비가 들어간 흥행을 염두에 둔 작품이라는 관점에서 본다면, 이야기 구조는 그렇게 매력적으로 다가오지 않는다. 그러다 보니 매력적인 영상과 화끈한 전투씬으로 충분히 관객의 시선은 잡을지 몰라도 관객의 마음을 잡기에는 부족한 영화가 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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