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 가장 두려워하는 것 중에 하나를 꼽으라면 첫 번째가 죽음이 아닐까? 그 이유가 생명과 삶에 대한 자기 집착일 수도 있겠지만, 우선은 우리가 죽음 이후의 세계에 대해서 전혀 알지 못하는 것에서 그 두려움과 공포는 시작한다고 할 수 있다. "알지 못하는 것", 그것은 지극히 막연한 공포감을 준다. 접해보지 못했던 음식을 접했을 때, 두려움으로 쉽게 젓가락이 가지 않는 것도 그 때문이요. 낯선 곳에서 홀로 떨어져 있을 때의 당혹감이나 공포감 또한 자신이 그곳에 대해서 정확하게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한 때 유행했던 신종인플루엔자에 대한 공포 또한 거기에 기인한다. 전문가들에 의하면 독감보다 낮은 치사율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들이 공포에 떨었었다. 감염속도가 다른 인플루엔자에 비해서 월등히 높다는 것도 한 목을 했겠지만, 핵심은 이제껏 우리가 경험하지 못했던 새로운 유형의 인플루엔자였기에 생겨났던 공포였다고 할 수 있다. 시간이 지나면서 신종인플루엔자를 조금씩 경험하면서, 과장 되었던 우리의 공포는 이제 조금씩 사라져갔다.
하지만, 공포 장사꾼들은 이런 '알지 못하는 것'에 의한 공포를 활용해 사람들을 기만한다. 특히 사회가 혼란스럽고 삶이 힘겨운 사람들이 많을 때 이런 장사꾼들이 기승을 부린다. 특히 종교를 이용한 장사꾼들의 술수는 대단히 놀랍다. 그들은 특히 죽음에 대한 공포를 잘 활용한다. 특히 그들은 "예수천국 불신지옥"이라는 말로 자신들의 종교를 팔아 치운다. 자신들의 종교를 믿으면 천국에 갈 것이고, 불교를 믿으면 지옥에 간다는 극단적인 말로 공포감을 심어주어서 자신들의 종교를 믿도록 유도하는 것이다. 공포 장사꾼들은 그렇게 알지 못하는 죽음이라는 공포를 활용해서 자신들의 배를 채운다.
"알지 못하는 것"의 공포로 인해서 많은 사람들은 정보를 장악하려고 한다. 자신이 그 정보를 장악해 "알지 못하는 것에 대한 공포"를 유발해 사람들을 좌지우지 하려는 것이다. 중요한 정보를 은폐해서 자신들의 치부를 드러내지 않고, 다른 곳의 정보를 흘려서 공포로 인한 두려움과 분노의 방향을 좌지우지해 버린다. 이러한 행위를 하는 대표적인 집단이 바로 "국가"다. 부시 정부의 미국은 WMD(대량 살상무기) 정보를 왜곡해서, 미국 국민들에게 이라크에 대한 공포감을 심어줬고, 그 공포감으로 야기된 미국 국민들의 분노를 바탕으로 이라크 침공의 정당성을 확보했다.
이러한 예는 지금의 우리 현실에서도 쉽게 발견할 수 있다. 천암함 침몰이라는 비극적인 사건을 두고 일어나는 군당국과 정부의 비밀주의는 국가라는 이름의 공포가 어떤 것인지를 명확하게 보여준다. 영국의 파이낸셜 타임즈가 천안함에 대한 한국정부의 대응을 두고 영화 "괴물"과 흡사하다고 했던 것도 같은 맥락이라고 할 수 있다. 정보를 통제하고, 미지의 정보를 공포로 가공해 국민들에게 "알지 못하는 것"의 공포를 극대화하는 것이다.
최근에 개봉한 "크레이지"는 "국가라는 이름의 공포"가 어떤 것인지를 명확히 보여주는 작품이다. 이 작품은 좀비 영화와 컬트영화의 거장 조지 A.로메로 감독의 작품을 리메이크 한 것으로, 이 영화도 좀비처럼 변한 사람들로 인해 일어나는 공포를 표면에 내세우고 있다. 하지만, 그 이면에 숨어 있는 국가의 정보통제와 비밀주의가 만들어낸 공포와 비극을 보여줌으로써 "국가라는 이름의 공포"가 어떤 것인지를 잘 묘사한 작품이다.
영화는 미국의 한 작은 시골 마을에서 시작된다. 한가로이 야구경기가 펼쳐지는 경기장에 한 사람이 총을 들고 난입하고, 마을의 보안관은 그 사람을 사살한다. 이 후에 마을 사람들이 조금씩 조금씩 미쳐가면서 도시는 폐허가 되어간다. 이는 정부에서 폐기 처분 하려던 바이러스 "트릭스"의 유출로 인한 사고로, 이를 은폐하기 위해서 정부는 군을 투입해서 마을을 폐쇄하고 모든 주민들을 몰살시키려 한다. 보안관과 부인 그리고 2명의 생존자는 그곳을 벗어나기 위해서 몸부림친다.
한국에도 독재가 횡횡하던 시절, 정보는 통제되고 사람들의 왕래까지 막으면서 저질러졌던 국가의 만행은 여전히 현대사에 상처로 남아있다. 여전히 많은 사람들은 그 만행의 희생자들을 향해서 "빨갱이"로 매도하면서 국가가 정보조작을 통해서 만들어낸 공포를 그대로 믿고 있다. 진실을 대면했을 때, 그들이 겪어야 할 내적 혼란과 국가가 만들어낸 거짓 정보에 속은 분노 그리고 자신의 무지함이 동시에 작용했을 때 발생하는 자아의 혼란에 대한 공포를 미리 차단하기 위해서라도 그들은 여전히 조작된 정보로 만들어진 공포를 믿는다.
그래서 그들은 광주민주화 운동에 평가 절하하거나 오히려 매도해 버린다. 그들은 진정으로 "국가라는 이름의 공포"를 대면할 용기가 없기 때문이다. 그 공포를 직접 대면하는 것보다 오히려 외면하고 부인하는 편이 그들에게는 덜 공포스럽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리는 그럴수록 진실을 대면할 용기를 가져야 한다. 다시는 "국가라는 이름의 공포"가 재생산되지 않도록. 영화 "화려한 휴가"는 우리에게 그런 직접적인 대면의 기회를 제공해준다.
1980년 5월, 광주에서 일어난 비극적인 사건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이 영화는 광주에 사는 택시기사 민우와 동생 진우를 중심으로 펼쳐진다. 진우는 같은 성당에 다니는 신애를 맘에 두고 구애를 하는 등 소소한 일상을 살아간다. 하지만 그런 일상을 살아가던 사람들에게 어느 날 무고한 시민들이 총, 칼로 무장한 진압군에 폭행을 당하거나 무참히 죽임을 당하는 일이 발생한다. 이에 많은 시민들이 퇴역 장교 출신 흥수를 중심으로 시민군을 결성하고 진압군에 저항하게 된다. 이 영화의 마지막에 광주의 그들을 잊지 말아 달라는 신애의 당부처럼 기억될 영화가 될 것이다.
미국에서 일어난 9.11사태 이후에 애국법이라는 이름의 이상한 법이 탄생하게 된다. 테러에 대한 공포 때문에 미리 그런 공포를 일으키는 대상을 차단하겠다는 발상에서 나온 것이다. 이민자에 대한 철저한 감시와 통제를 통해서 자신들의 공포심을 줄여보겠다는 것이 그 법의 시작이었다. 하지만, 선진국이라는 미국에서 이 법은 무시무시한 또 다른 공포를 유발했다. 테러용의자 또는 테러리스트라는 딱지를 평범한 사람들에게 붙여가면서 그들의 인권을 침해함은 물론이고 온갖 불법적인 고문과 폭력을 행사했던 것이다. 국제사회의 지적에도 불구하고 자신들의 공포감을 해소하기 위해서 죄 없는 많은 사람들이 미국이라는 나라가 만들어낸 "국가라는 이름의 공포"에 놓여지게 된다.
영화 "관타나모로 가는 길"은 바로 그런 미국의 이면을 보여주는 작품이다. 영화의 감독도 사람들에게 이런 곳이 실제로 존재한다는 것을 알리기 위해서 만들었다고 할 정도로 평범한 미국인들이나 많은 사람들이 이곳에서 행해진 탈법과 불법의 국가 폭력을 알지 못했기 때문이다. 감독은 사실성을 높이기 위해서 세미다큐형식으로 영화를 만들어 많은 사람들이 알려지지 않은 현실을 바로 알 수 있도록 도움을 준다.
파스키탄계 영국 청년 4명은 친구의 결혼식 참석을 위해서 파키스탄에 간다. 신부가 될 사람이 살고 있는 곳으로 향하던 그들은 아프가니스탄에 들르게 되고, 그곳에서 미군의 폭격을 받게 된다. 아수라장이 된 그곳에서 한 명은 실종되고 나머지 세 명은 탈레반의 본거지에서 연합군에 잡히게 되고. 미군에게 넘겨져 관타나모 소용소에 끌려가 2년이 넘는 시간을 고통으로 보내게 된다.
미국의 오바마 대통령이 당선되면서 "관타나모 수용소"를 폐쇄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그럼, 관타노모 수용소가 폐쇄단다는 것 만으로 미국이라는 나라에서 만들어진 "국가라는 이름의 폭력"이 완전히 사라지는 것일까? 아니다. 여전히 많은 정보를 좌지우지하는 국가는 많은 국민들에게 공포감을 조성하고 그것을 이용해서 자신들의 권력을 휘두른다. 여전히 많은 사람들은 "알지 못하는 것"에 의한 공포에 취약하다. 그래서 우리이게 필요한 것은 진실을 대면할 수 있는 용기와 알지 못하는 것을 알아가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영화들을 통해서라도 직접 대면할 기회가 됐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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