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이브러햄 매슬로는 욕구를 5단계로 설명한다. 그에 따르면 1단계 욕구는 생리적 욕구(먹고, 자는 등), 2단계는 안전에 대한 욕구(추위, 질병, 위험 등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하는), 3단계 욕구는 애정과 소속에 대한 욕구, 4단계는 자기존중의 욕구(소속단체의 구성원으로 명예나 권력을 누리려는), 5단계 욕구는 자아실현의 욕구(자신의 재능과 잠재력을 발휘해 자아성취를 이루려는)로 설명한다. 아래 단계의 욕구가 성취되면 더 높은 단계의 욕구를 성취하려는 행동을 하게 된다고 한다.
영화 "데이브레이커"는 매슬로의 욕구5단계를 보여주는 작품이라는 생각이 든다. 매슬로의 설명처럼 각각의 단계를 성취하면서 다음 단계로 넘어간다고 보기는 힘들지만, 인간의 기본적인 욕구를 노골적으로 묘사하는 작품이 아닐까? 그래서 영화 초반에 인간에게서 혈액을 채취하기 위해서 가둬 놓은 공장식 시설의 모습은 충격적이다. 벌거벗은 채, 움직이지도 못하게 자리에 앉아있는 모습은 생존을 위해서 가축을 공장식 사육하는 우리의 모습을 비춰주는 거울 같다. 좁은 닭장에서 움직이지도 못하고 인간에게 계란을 공급하는 닭의 모습일 생각나게 만들고, 좁은 우리에서 움직이지 못하고 먹고 살만 찌우는 돼지들이 생각난다. 그리고 강제로 임신했다가 출산하자마자 기계로 우유를 흡입 당하는 젖소들이 생각난다.
우리 인간에게 닭과 돼지, 그리고 소가 1단계 욕구를 충족시켜주는 중요한 하나의 요소이듯, 뱀파이어에게 인간은 생존이라는 욕구를 충족시켜주는 필수요소이다. 종이 다른 닭과 돼지 그리고 소 같은 동물들이 인간에 의해서 마구잡이로 사육당 할 때는 느끼지 못했던 것이, 처지가 바뀌어 인간이 누군가에게 사육 당하는 모습을 공포나 충격은 쉽게 설명할 수가 없다. 인간에 대해서는 연민을 느끼고 생명을 존중하면서, 다른 종(가축과 같은)에 대해서는 생명에 대한 존중이나 연민 없는 것을 보고 피터 싱어는 "종 차별주의자"라고 했는데, 영화를 통해서 그런 우리의 모습을 대면하게 된다.
영화에 등장하는 뱀파이어라는 존재는 매슬로의 2단계 욕구를 보여준다. 샘 닐이 연기한 찰스 브롬리를 통해서 2단계 욕구를 명확하게 보여준다. 암으로 인해서 시한부 인생을 선고 받았던 찰스 브롬리가 뱀파이어가 되면서 2단계 욕구를 충족시킨 것이다. 이 영화의 뱀파이어는 추위와 질병이라는 위험에서 완전히 자유로운 존재이다. 비록 뱀파이어의 약점인 햇빛에 대한 위험이 존재하기는 하지만, 그 이외의 다른 위험적인 요소는 존재하지 않는다. 인간을 사냥하고 지배하는 상황에서 그들의 위험은 거의 존재하지 않게 된다.
3단계와 4단계 욕구는 에드워드 댈턴(에단 호크)와 그의 동생 사이에서 벌어진다. 형제간의 갈등과 화해를 통해서 3단계 욕구를 보여줌과 동시에 군인인 에드워드의 동생을 통해서 4단계 욕구에 대한 인간의 모습을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그러다 영화가 진행되면서 변해가는 동생의 모습을 통해서 내면에는 명예나 권력에 대한 욕구를 뛰어넘는 선함이 존재한다는 것을 보여준다. 이 영화 속에서 욕구의 변화가 가장 입체적으로 변하는 존재가 에드워드의 동생이다. 그를 통해서 가장 자연스러운 인간의 모습을 보여준다. 누구나 욕구에서 자유롭지 못하지만, 내면 어딘가에는 욕구를 뛰어넘을 수 있는 또 다른 힘이 있다는 것이다.
반면에 가장 높은 5단계 욕구에 이른 인물은 에드워드다. 뱀파이어면서 생명에 대한 존중은 물론이고, 자아실현에 대한 완벽한 욕구를 가진 존재다. 회사의 중역이나 연구원들이 1단계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해서 혈액 대체재 개발에 매진할 때, 그는 생명에 대한 높은 가치를 바탕으로 자신의 재능과 잠재력을 발휘한다. 나중에 치료제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을 때, 자신의 신체에 직접적으로 실험을 하면서 헌신하는 이유도 바로 5단계 욕구 때문이다.
하지만, 영화는 인간들에 대한 사명감을 가진(5단계 욕구에 다다른) 몇 몇을 제외하면 대부분의 존재들은 4단계 이하의 욕구에서 벗어나지 못함을 보여준다. 특히 인간혈액 부족으로 인해서 일어나는 사태를 통해서 대부분의 존재들이 1단계 욕구 수준에서 머무를 수 밖에 없음을 영화전반에 보여준다. 가끔 1단계에서 자유로는 몇몇은 종국에 돈에 대한 욕구로 귀결됨으로써 인간은 끝없는 욕구를 가진 탐욕스러운 존재라는 것이다. 그러한 것들이 현실 속에 돈에 대한 탐욕과 욕구로 인간생명에 대한 가치를 폄하(생존을 외치던 용산의 희생자들을 향해서 돈에 대한 탐욕 때문이라는 식으로 매도하는 이들)하는 많은 사람들을 통해서 허구로 창작되어진 작품을 더 현실적으로 보여지게 만드는 중요한 작용을 하는 것 같다.
'영화를 보고' 카테고리의 다른 글
국가라는 이름의 공포에 대한 영화. <4월 2주> (0) | 2010.04.12 |
---|---|
샤를 페로의 동화와 영화들. <이번 주말엔 무슨 영화를 볼까? 4월 1주> (0) | 2010.04.02 |
"부인"하고 "외면"하고 싶은 사실들에 대한. 이번 주말엔 무슨 영화를 볼까? 3월 4주. (0) | 2010.03.27 |
화해와 통합을 위한 여정. 영화 "인빅터스"를 보고..... (0) | 2010.03.20 |
통쾌한 사적 복수를 상상한다. 이번 주말엔 무슨 영화를 볼까? 3월 3주. (0) | 2010.03.1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