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골의사의 아름다운 동행 2"를 친구의 추천으로 읽고, 시골의사라는 필명으로 활동하는 박경철이라는 사람에게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관심을 가지게 되니까 그의 다양한 활동들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고, 그의 자취를 하나 둘 더듬어 가면서, 책 속의 글만큼 현실 속에서도 그가 풍기는 매력은 나를 사로잡았다. 이후에 그가 출간한 책들은 나의 관심사가 되었고, 꼭 읽는 작가 중에 한 명이 되었다. 그가 출연하는 방송은 꼭 챙겨보지는 않지만, 우연히 채널을 돌리다가도 그가 보이면 잠시 채널을 고정시키며 그 프로그램을 보기도 한다. 그의 블로그를 이웃으로 추가하고 rss 피드를 신청해서 그의 글들을 수시로 받기도 한다.
내가 관심을 많이 가지던 그가 몇 일전에 부산에서 강연회를 했다. 이번에 부산시교육청에서 주최하는 "2008 원 북 원 부산" 행사에 그의 책 "시골의사의 아름다운 동행 1"이 선정되면서 저자와의 만남행사를 통해서다. 마침 강연회의 장소도 집에서 가장 가까운 '부산시민도서관'이고 해서 꼭 참가하기를 결심했다. 일주일 전부터 행사의 소식을 접하고, 짝사랑하는 이를 기다리는 설레임으로 그 날이 오기만을 기다렸다.
마침내 강연회날 몇 시간 전에 도서관에 도착해서, 남은 시간을 열람실에서 책을 읽었다. 강연회 1시간을 남겨두고 화장실이 급해서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화장실로 가는데 도서관 한 곳에 우람한 덩치에 낯익은 인상의 사람이 앉아 있었다. 편안한 복장에 휴대폰을 조작하는 평범한 인상의 사람인데 어디서 본 것 같은 느낌이 문득 스치고 지나갔다. 화장실에 갔다가 돌아와서 그 사람을 다시 한번 보니 오늘 강연회의 초청강사인 시골의사였다. 짝사랑하는 이를 몰래 훔쳐보듯이 몇 번이고 그를 보았고, 오늘 사인을 받으려고 가져왔던 그의 책 "착한 인생, 당신에게 배웁니다."을 내밀고 사인을 요청할까 하는 생각이 머리를 스치고 지나간다. 내 기준으로 유명인사이자 내가 좋아하는 사람이 있으니 몇 m 앞에 심장마저 요동을 친다. "다가가 말을 걸어도 볼까?"라는 생각이 문득 떠오기도 한다. 생각은 많아지고 심장은 두근거리고 읽고 있던 책은 눈에 들어오지도 않는다. 그러다가 도서관에서 열심히 공부하는 사람들에게 피해를 주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과 1시간 뒤면 강연도 듣고 사인도 받을 수도 있다고 스스로를 진정시켰다. 그리고 다시 책 속으로 빠져들었다.
강연회 시작 5분전, 강연회장으로 발걸음을 빠르게 옮겼다. 이미 많은 사람들이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맨 뒷자리에 한 자리가 비어있어서 앉았다. 만약 조금만 늦었다면 앉을 자리조차 없었다. 늦게 온 많은 분들이 서서 강연회를 들었다. 강연회가 시작되었다. 자신의 글쓰기 연습과정에 대해서 우선 설명을 한다. 지금이야 논술이 도입되어서 문과나 이과를 떠나서 글쓰기가 자체가 중요한 교육으로 여겨지고 있지만, 그 이전에는 이과 사람들이 글을 잘 쓴다는 것은 쉽지 않다. 시골의사는 자신도 처음부터 글을 잘 쓴 것이 아니라고 한다. 책 속의 좋아하는 문구를 10번 정도 베껴 쓰고, 좋은 신문 사설을 선택해서 10번 정도 옮겨 섰다고 한다. 그러다가 베껴 쓰던 글에 자신의 의견을 하나 둘씩 더해서 새로운 글을 쓰면서 자신이 좋아하던 문체를 어느 순간 닮아가게 되었다고 한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이 되니까 자신의 생각을 완벽하게 글로 표현할 수 있는 수준에 이르게 되었다고 한다.
그러면서 글을 쓰게 된 동기에 대해서 설명했다. 서울의 종합병원 근무시절에 만난 환자와 어머니가 자신을 바꿔 놓았다면서 말문을 열었다. 그의 이야기는 책에서 읽어본 내용인 거 같기도 하고 아닌 거 같기도 하는 이야기였다.(아직 "시골의사의 아름다운 동행 1"은 읽어보지 못했다.) 복부 부근에 피부가 없어 내장과 심장이 모두 다 드러나는 상태로 태어난 신생아와 어머니 이야기였다. 그 당시 국내에서는 생존한 사례가 없고 세계적으로 3~4건의 생존사례가 있을 정도로 좋지 않은 상태인데 아이의 부모님은 치료를 포기하지 않았다고 한다. 그 어머니는 제왕절개 수술을 해서 몸이 좋지 않은 상태인데도 불구하고 아이의 병실 앞 복도 의자에서 하루도 떠나지 않고 머물렀다고 한다. 그런 어머니의 사랑 때문인지 아이는 첫 번째 고비인 3일을 무사히 넘겼다. 하지만, 마지막 고비인 3주를 얼마 안 남겨두고 죽었다고 한다. 그리고 얼마 뒤 그 아이의 어머니로부터 편지를 받았는데 그 동안 감사했다던 내용과 그 아이를 기억해 줄 수 있는 사람이 부모밖에 없는 외로운 아이의 곁으로 간다는 내용이었다고 한다. 그래서 급히 그 아이의 보모 집으로 전화를 걸었으나 이미 전날에 그 어머니는 자살했다고 한다.
그 이후에 자신은 환자에 대한 감정을 쉽게 컨트롤 할 수 없었고, 그래서 삶과 죽음이 수시로 교차하는 종합병원에서 더 이상 근무할 수 없었다고 한다. 그래서 시골에서 활동하게 되었다고 한다. 그 어머니가 자신을 의료 기술자가 아니도록 일 깨워 주었으며, 자신을 스쳐 지나갔단 많은 환자들이 세상의 누군가에 의미가 있고 기억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글을 쓰기 시작했다고 한다. 그래서 자신은 작가가 아니라 나래이터 뿐이라고 말한다. 그 책들의 인세는 자기 것이 아니라 그 분들의 것이기에 전부 기부되고 있다는 말도 했다. 참 감동적인 강연이었는데 그대로 옮겨 적을 수가 없어서 안타깝다.
그렇게 강연은 끝이 났고 질의 응답시간이 되었다. 그 중에 어떻게 그렇게 다재 다능한 활동을 하냐는 것이었다. 시골의사는 자신은 머리가 똑똑하지도 않고, 단지 뛰어난 끈기가 있다고 했다. 관심을 가진 분야를 꾸준히 끈기 있게 파고 있을 뿐이었고, 우연히 다양한 기회가 왔으며, 자신은 그런 기회를 결코 거절하지 않는다고 한다. 자신이 못할지도 모른다는 걱정보다는 새로운 분야에 대한 도전이 더 즐겁다고 한다. 그러면서 지난 일요일 날 토익 시험을 쳤다고 한다. 남들은 취업 할 것도 아니면서 왜 치냐고 이상하게 생각하지만, 자신은 만점을 받기 위해서 그냥 친다고 했다.
또 다른 질문 중에 20대에게 하고 충고하고 싶은 말이 뭐냐는 질문이었다. 그는 "20대에는 죽을 만큼 열심히 살아라."고 했다. 40대에는 열매를 수확하고 30대에는 인생의 방향이 결정되는 시기인데, 20대에 죽을 만큼 열심히 살아야 인생의 선택지가 넓어진다는 것이다. 그 말을 들으면서 대충 사는 내가 참 한심해 지는 것 같았다. 시골의사 같은 도전의식도 약하고 끈기도 없으며 죽을 만큼 열심히 살지 않았으니, 그 말을 듣는 그 순간에는 죽을 만큼 부끄러웠다. 후회보다는 반성하는 삶을 살고자 매번 결심하면서도 후회만 하는 삶만을 사는…… 이번에도 이 강연을 듣고 후회만 하는 것은 아닐까?
ps> 어떤 분이 어떤 책이 자신의 삶에 영향을 주었냐는 질문을 했다. 특별한 책이 있는 것이 아니라 좋은 책들 모두가 다 양향을 준다고 했다. 그러면서 아이들에게는 만화책을 절대로 읽히지 말라고 한다. 아이들의 상상력을 저하시킨다는 것이다. 그래서 자신은 아이들에게 그림책도 잘 사주지 않는다고 한다. 단지 문자들로 된 책들을 읽어주면서 아이들이 상상할 수 있는 여지를 많이 남겨준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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