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고편만 봤을 때 상당히 유쾌한 영화로 기억하는데, 두 명의 주인공이 드라이브를 하는 장면으로 시작하는 영화는 무거운 침묵과 함께 뭔가 억누른 분위기가 펼쳐진다. 차창을 통해서 먼 곳을 바라보는 필립과 그의 눈치를 보면서 묵묵히 운전을 하는 드리스. 무슨 이유 때문인지 아직 알 수 없지만, 둘 사이의 우정보다는 서먹서먹함이 묻어 난다. 그런 무거운 침묵을 깨고, 드리스가 필립에게 내기를 제안한다. 도로에서 엄청난 속도로 과속을 하고, 결국에 경찰에게 쫓기기 시작한다. 어떻게 보면 더 심각해질 수 있는 상황이지만, 필립과 드리스 사이에 조금씩 활기가 돌아온다. 결국 경찰을 따돌리지 못하고 붙잡히고 말지만, 필립과 드리스는 그 상황을 아주 유쾌하게 넘겨 버린다. 눈 빛 만으로도 서로가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 아는 것처럼, 입을 맞추지도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둘은 서로의 마음을 이해하고 행동한다. 이 위기상황을 모면한 필립과 드리스는 다시 그들만의 여행을 떠난다. 그리고 영화는 그들의 첫 만남이 있었던 시점을 보여준다.
필립과 드리스는 어떻게 보면 극과 극의 사람이다. 상위 1%의 남자와 정부 보조금을 받으면서 인생의 목표 없이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남자니. 우연히 서로가 만날 수 있는 확률은 더 떨어진다. 하지만, 드리스는 확인서를 받기 위해서 필립에게 면접을 보게 되고, 필립은 지금껏 자신을 보살펴주던 사람과 전혀 다른 성격과 행동을 보여주는 드리스에게 흥미를 느낀다. 사실 보통의 사람들은 취향, 경제적 상황 등등 자신과 비슷한 사람에게 더 호감을 느낀다. 학창시절에는 비슷한 성향의 또래들이 무리를 이루어서 다니고, 다민족 국가에서는 인종이 다른 사람들끼리 모여서 마을을 이루는 것을 쉽게 볼 수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아파트를 두고 이런 현상이 나타나는데, 비싼 아파트 사는 사람과 임대 아파트 사는 사람들을 구분 짓는 이상한 행태로도 나타난다. 사람을 원자로 비유해, 비슷한 원자끼리 강한 인력이 작용하는 것과 같은 현상이라고 설명하기도 한다.
그렇게 보면, 필립과 드리스의 우정은 쉽게 설명되지 않고, 이해되지도 않는다. 환경의 차이에서 오는 큰 간극은 쉽게 메워지지 않는 것이 현실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필립은 드리스의 많은 실수와 잘못에도 관대하게 바라본다. 자신이 자신이 가지지 못한 자유로움에 끌려서라고 한마디로 설명하기는 힘들지만, 필립은 그런 드리스를 통해서 자신의 인생에서 조그만 즐거움을 찾는 것 같다. 반면 복잡한 가족사와 현실적 무기력 앞에서 미래에 대한 희망이라는 것을 포기하고 살던 드리스는 처음에 필립의 도발에 자존심 때문에 일을 시작한다. 제대로 아는 것이 없어서 실수도 많이 하고, 순진한 호기심에 큰 실수도 하지만, 점점 필립을 진심으로 돌보기 시작한다. 채울 수 없을 것 같았던 둘 사이의 간극은 우정이라는 이름으로 점점 메워진다. 서로의 차이를 구분하기 보다는 서로의 차이를 이해하려고 노력한다. 그래서 서로의 취향을 이야기하고 보여주며 들려준다. 그 둘을 지켜보는 주변 사람들은 그들의 그런 행동을 이해하지 못하지만, 서로에 대한 끌림이 만들어낸 큰 힘이랄까?
그렇게 둘 사이의 우정이 오래 될 것 같았지만, 드리스의 가족문제로 더 이상 필립과 함께 할 수 없는 상황이 된다. 그러면서 필립 또한 이성문제가 겹치면서 삶에 대한 흥미를 잃은 사람처럼 행동한다. 필립의 상황이 좋지 않다는 것을 연락받은 드리스는 필립과 함께 드라이브를 떠나면서 다시 영화의 초반 이야기를 이어진다. 어떻게 보면 영화의 초반부분은 영화의 전체적인 분위기와 과정을 함축적으로 보여주는 장면 같다. 두 주인공 다 공허한 삶을 살다가 서로가 가까워지면서 유쾌하고 행복해지는 모습이 그 짧은 순간에 함축되어 보여진다. 그리고 이어지는 영화의 마지막은 서로 용기와 희망을 주는 두 주인공의 우정이 진하게 묘사 된다.
이렇게 영화는 어울리지 못할 것 같은 두 사람의 우정을 보여주지만, 어떤 의미에서 서로 같은 사람들이 만나서 어떤 화학작용을 하는지 보여준다. 이민자 자녀 출신으로 빈민가에 사는 가난하고 희망 없는 드리스 삶의 어두운 면과 돈은 많이 가졌지만 아내를 잃고 평생을 휠체어에서 살아야 하며 다른 사람의 도움 없이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필립 삶의 어두운 면은 서로 같다. 마이너스와 마이너스를 더 하면 마이너스가 되지만, 마이너스와 마이너스를 곱해서 플러스가 되는 삶의 행복이 이 영화의 큰 즐거움이다. 두 사람의 우정이 아름다워 인상적인 영화이기도 하지만, 이 영화를 더 유쾌하게 볼 수 있는 이유는 바로 마이너스가 플러스가 되어 보여지는 행복이 따뜻하게 때문을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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