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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버트 맥키는 영화의 장르에 대해서 "관객들이 장르에 대해 이미 가지고 있는 지식과 예견력을 상상하면서 이야기를 구성해야 하기 때문에 어떤 장르를 선택한다는 것은 하나의 이야기 안에서 무엇이 가능하고 무엇이 불가능한지를 분명하게 결정지어 준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말한다. 맥키의 이 말은 작가의 입장에서 장르가 어떤 역할을 하는지 보여준다. 하지만, 이 말에는 관객의 입장이 어떤지도 포함되어 있다. 문장의 첫 부분을 보면 관객들은 어떤 장르냐에 따라서 "이미 가지고 있는 지식과 예견력을 상상하면서 이야기를 재구성"한다는 사실을 말해준다. 예고편이나 영화의 시놉시스를 보면서 사람들은 그 영화의 첫 인상을 많이 좌우하는데 그 중에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하는게 장르다.
영화 "하울링"은 영화 초반부터 스릴러의 긴장감을 극대화 시키면서 시작한다. 차량 안에서 순식간에 불 나는 바람에 사람이 불에 타 죽는 장면은 이 영화에 대한 기대감을 끌어 올린다. 그리고 이어지는 또 다른 죽음은 스릴러적 법칙을 충실히 따르면서 관객들을 범인에 대한 호기심을 자극 시킨다. 하지만, 영화는 관객이 기대하는 스릴러적 이야기를 끝까지 끌고 가지 않는다. 시간이 흐르면서 관객이 예측 또는 기대하는 스릴러의 법칙을 조금씩 거스른다. 장르에 대한 기대가 컸던 관객들에게는 장르적 배반이 큰 실망으로 다가 온다. 이 영화에 대한 호불호가 갈리는 가장 큰 지점이 이 부분이 아닐까.
스릴러라는 장르로 이 영화를 봤을 때는 분명히 실망스러운 전개를 보이는 작품이다. 그렇지만, 영화 속에 보여지는 이야기나 영화 속 캐릭터들을 보면 드라마라는 장르에서 풍겨지는 매력을 충분히 발견할 수 있다. 상길(송강호)과 은영(이나영)이 처음 대면하는 부분은 이 영화에서 그렇게 매력적인 장면은 아니지만,감독이 보여주고자 하는 아웃 사이더들에 대해서 조금씩 길을 잡는 부분이다. 오랜 경력에도 불구하고 승진을 하지 못하는 상길이 여성들이 꺼려하는 강력반에 들어온 은영의 사수가 되면서 영화는 바로 이들의 범죄를 추적하는 영화가 아니라 이 두 사람이 은유적으로 보여주는 사람들의 이야기라는 것을 보여준다.
은영의 경우는 남성주의 문화가 가득한 강력반 내에서 여성이라는 존재로 소수자가 되어 버리는 인간의 모습을 그대로 보여준다. 은영을 연기한 이나영이 가지고 있는 묘한 얼굴표정 자체에서 풍기는 쓸쓸함과 외로움 그리고 소외감들이 절묘하게 결합되면서 영화 속에 보여지는 은영의 소외감은 더 강렬하게 전달된다. 어떤 사람들은 여성상위시대라며 은영에 대한 묘사가 너무 강하고 현실에서 보기 힘든 모습이지 않냐고 문제제기를 하지만, 은영이라는 존재는 단순히 여성으로만 볼 것이 아니라 무리에서 소외받은 인물들의 상징성으로 봐야되지 않을까? 우리 사회에서 문제되고 있는 왕따나 집단 따돌림의 행태와 그 폭력성은 결코 영화보다 못하지 않고, 영화는 그런 현실을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
영화에서 늑대개 또한 은영과 같은 소외된 사람들의 심정을 대변한다. 은영이 범인을 쫓다가 바닥에 쓰러진 사이에 용의자 중에 한명을 죽이고 은영을 바라보는 늑대개. 이 때 개와 은영의 묘한 시선 교환은 둘 사이의 교감을 상징하기도 하지만, 교감보다는 은유적 상징이 아닐까. 정통성있는 개가 아니라 늑대와 개 사이에서 태어난 혼혈종인 늑대개, 사람들의 애정을 받는 반려견이 아니라 사람을 죽이는 늑대개는 조직에 소외된 은영의 모습이다. 그래서 은영은 늑대개에 대한 묘한 애정을 품은 것 같다. 범인을 잡는 것도 중요하고, 시민들이 늑대개의 위험에서 벗어나기 위해서 중요한 현실에서 은영만은 늑대개를 믿는다. 어떻게든 늑대개를 살리려는 그녀의 몸부림은 조직에서 소외되는 은영을 향해서 조금씩 마음을 열고 도움을 주는 상길의 모습과 연결된다.
상길이라는 캐릭터도 어떻게 보면 비주류다. 자신의 상사는 동기이고, 나중에는 후배에게 마저 승진에 밀리면서 상길은 수사의 핵심에서도 밀린다. 은영의 사수 역할을 하면서 덜 중요한 수사를 맡는다. 은영과 다른 점은 상길은 처음부터 비주류가 아니라 주류에서 비주류로 떨어진 인물이다. 그러다 보니 주류의 특성을 잘 이해하고 주류에 영합하는 경향을 많이 보여준다. 은영을 처음 대면했을 때의 상길의 태도나 형태는 그런 성향을 잘 보여준다. 그런 상길은 은영을 이해하면서 은영을 도우려고 노력을 한다. 비록 그의 그런 몸부림이 은영을 위해서 큰 힘이 되지 못할지라도. 그래서 은영이 늑대개에 품었던 연민이나 감정은 상길이 은영에게 품었던 연민이나 감정은 바로 같은 선상에 있다고 할 수 있다.
영화는 결국 이 소외된 사람들이 힘을 합쳐서 사건을 해결한다. 하지만, 사건 해결 후에 각자의 처지는 너무나 다르다. 상길은 그토록 바라던 승진을 하지만, 은영은 원래 있던 순찰대로 돌아가고, 늑대개는 죽는다. 마치 소외된 자에도 계급이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 같다. 원래 주류에 있던 상길은 승진으로 비주류에서 주류로, 은영은 비주류에서 여전히 비주류로. 늑대개의 죽음은 절망적인 비주류에 있는 사람의 절망을 그대로 표현한다. 늑대개의 주인의 현실이 바로 늑대개의 죽음으로 표현된다. 그렇게 영화의 엔딩은 비주류의 소외감과 절망감을 매력적으로 표현된다.
영화 속에 이나영이 오토바이를 타는 두 장면이 인상적이다. 영화의 중반부에 홀로 오토바이를 타는 이나영의 모습이 영화에서 보여주는 소외감, 외로움을 매력적으로 보여준다. 그리고 이 영화 엔딩의 오토바이 장면이 인상적이다. 혼자 오토바이를 탔던 이나영이 이번에 뒤에 한 사람을 태우고 길을 달리는 장면인데, 두 사람이 탔음에도 중반에 보여줬던 소외감, 외로움이 전혀 사라지지 않는다. 오히려 절망감까지 더 해져 더 외롭고, 어둡다. 외롭고 소외된 사람들의 연대는 그들에게 위로가 되지 못함을 보여주는 것 같다. 완전한 주류는 아니였지만, 비주류의 마음을 하는 상길 같은 인물들이 더 손을 내밀어야 할텐데. 영화는 비주류의 아픔과 슬픔만 강렬하게 보여줄 뿐, 희망의 손길이 부족하다. 철저하게 주류끼리만 놀아나는 그게 우리의 모습이기에 더 슬프게 다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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