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 오는 날이지만, 차를 타고 예비 시부모님에게 인사를 가는 연인들의 모습 행복해 보인다. 하지만, 여자의 모습은 어딘지 모르게 조그만 불안감이 감 돈다. 휴게소에 도착한 연인들은 둘이 있어 행복한 시간을 잠시 미룬다. 남자는 커피를 사러 가고, 여자는 차에 남아, 갑자기 걸려온 전화를 받는다. 카메라는 전화 받는 여자의 모습을 직접 담지 않는다. 특이하게 백미러에 여자가 전화 받는 모습이 비친다. 거울에 비친 여자의 모습은 앞으로 보여질 그녀의 이중성을 보여주는 것 같다. 그리고 화면이 바뀌고 커피를 사 들고 온 남자는 여자친구가 사라졌다는 것을 발견하고 당황한다. 남자는 쏟아지는 빗줄기를 온 몸으로 맞으며 여자를 찾아 나서지만, 여자의 흔적은 화장실 앞에 떨어진 머리핀이 전부다. 영화는 고속도로 휴게소에서 사라진 여자를 찾기 위해서 고군분투하는 남자의 애처로운 모습을 보여주기 시작한다.
여자친구를 찾기 위해서 초조해 하는 남자는 여자의 흔적들을 조금씩 추적하면서, 자신이 알고 있는 여자친구가 전혀 다른 사람이라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결혼하기로 한 여자친구의 이름 뿐만 아니라, 과거의 행적까지도 도대체 알 수가 없다. 혼란스러움에 빠진 남자는 사랑하는 여자의 정체도 궁금하지만, 말도 없이 갑작스럽게 사라진 여자친구에 대한 걱정이 앞선다. 그래서 사이가 좋지 않은 사촌 형, 전직 형사인 그 형을 찾아가서 자신의 여자친구를 찾아 달라고 부탁한다. 처음에 거절하던 형도 사건의 내용에 흥미를 느껴, 남자의 부탁을 들어준다. 지금까지 영화를 이끌던 남자는 여기서 부터 뒤로 빠지고, 이제는 그 정체를 알 수 없는 여자를 중심으로 흘러간다.
영화는 이제부터 여자의 정체를 하나씩 하나씩 드러내기 시작한다. 관객들이 호기심을 잃지 않도록, 조금씩 조금씩 여자의 실체에 대해서 접근한다. 드러난 여자에 대한 조그만 정보는 그녀의 잔혹한 면을 드러낸다. 여자를 사랑하는 남자는 드러난 정보를 부정하고, 전직 형사 출신의 형은 형사의 촉감으로 더 큰 사건이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남자에게 말한다. 아직 여자의 정체가 완전히 드러나지 않은 상태에서 관객들도 그의 형의 논리가 더 설득력을 가진다. 앞으로 여자의 잔혹한 면이 더 드러나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을 가지게 만든다.
하지만, 영화는 여자의 잔혹한 면만 보여주지 않는다. 오히려 뒤로 갈수록 드러나는 여자의 모습에 연민을 가지게 만든다. 여자의 잔인한 행위에 면죄부를 줄 수는 없지만, 점점 드러나는 여자의 슬픈 과거는 관객들의 공감을 얻기에 충분한 모습을 보여준다. 관객들의 공감을 얻기 위해서는 단순히 여자의 슬픈 과거 사실 만으로 되지 않는다. 더 중요한 것은 그런 여자의 아픔을 관객들에게 그대로 전달해줄 배우의 연기다. 여자 차경선역을 맡은 김민희는 여자의 슬픔을 진정성 있게 표현해 낸다. 그렇게 여자는 영화의 중심으로 서서히 다가간다. 다른 영화에서 보여주지 못했던 김민희는 이 영화를 이선균의 영화가 아니라 자신의 영화로 만들어 버린다.
여자에게 일어난 다이나믹한 사건 만큼 감정의 변화 폭도 크다. 죽고 싶을 만큼 절망적인 상황에 있다가, 갑자기 살아야 할 용기를 얻는 여자. 그런 변화를 김민희는 얼굴에 다 담아낸다. 결정적인 순간 순간에 보여지는 감정의 표현력은 이 영화가 가지고 있는 이야기의 설득력을 더 배가 시킨다. 특히 첫 살인을 저지를 때 김민희의 연기는 인간이 가지고 있는 선함과 악함을 동시에 보여준다. 선과 악 사이에서 갈등하는 듯한 모습이 한 얼굴에 공존해서 보여진다. 그 모습은 여자의 살인 동기나 행위에 대해서 슬픔을 느끼게 만든다. 저간의 사정과 여자의 현재 감정들이 어우러지면서, 행복해지고 싶다는 여자는 단순한 욕망에 정당성을 부여해주는 듯하다.
하지만, 이 장면에서 감독은 피에 젖어 날지 못해 파닥거리는 나비 한마리를 비춘다. 남의 인생으로 변신해 화려한 나비가 된다고 한 들, 여자의 인생은 행복을 향해서 화려하게 날개 짓 하는 나비가 아니라, 바로 피에 젖어 그 나비라는 것을 암시한다. 잘못 된 선택과 인생에 대한 죄값은 이미 정해져 있는 것 처럼. "화차"라는 영화의 제목에서 보여지는 상징성을 피에 젖은 나비가 축약해 보여준다. 사실 여자도 자신의 앞날에 대해서 미리 아는 듯한 대사가 영화 초반에 나온다. 남자에게 청혼을 받았을 때 여자가 읍조리듯 말하는 그 대사는 행복해지고 싶다는 단순한 욕망 만으로 변신을 했던 것이 아니라 나름의 고뇌를 가졌다는 것을 보여준다.
영화가 뒤로 갈수록 여자는 변해간다. 드러난 과거는 이제 과거의 모습일 뿐, 그녀는 행복하고 싶다는 욕망을 걷잡을 수 없다. 또 다시 변신만 할 수 있다면, 행복해질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이제부터 영화는 다시 변신하려는 여자와 그녀를 막으려는 사람들과의 이야기로 전개된다. 그 사이에서 남자는 다른 사람들 모르게 여자를 막으려 한다. 용산역 장면은 남자와 여자의 관계를 정리한다. 자신을 진심으로 사랑했냐고 묻는 남자와 슬픈 눈으로 진실을 말하면서, 입으로 다른 말을 할 수 밖에 없는 여자의 안타까운 사랑이 그대로 보여진다. 여자는 남자를 위해서 남자는 여자를 위해서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으로 이별을 한다.
결국 영화는 파국으로 끝난다. 힘차게 날개 짓을 하지만, 어떤 굴레로 인해서 날지 못하는 나비처럼, 여자도 날지 못하고 추락한다. 나도 행복하고 싶다는 단순한 욕망일 뿐이지만, 잘못된 선택이 비극적인 결말을 이끌어낸 것이다. 영화의 이런 결말은 영화의 시작과 함께 충분히 예상할 수 있는 부분이다. 그럼에도 이 영화가 보여주는 결말이 애절하고, 슬픈 이유는 여자의 슬픈 과거와 그 변화를 관객들에게 흡인력 있고 보여주는 연출과 여자를 연기한 김민희 뛰어난 감정 표현이지 않을까? 오랜만에 복귀하는 변영주 감독의 뛰어난 연출도 영화를 보는 즐거움이었지만, 배우 김민희의 재발견하는 즐거움이 더 큰 영화다.
'영화를 보고' 카테고리의 다른 글
독특한 카메라 연출인 인상적인 영화. 영화 "크로니클"을 보고. (0) | 2012.03.30 |
---|---|
음과 음이 만나서 양이 되는 행복한 영화. 영화 "언터처블"을 보고. (0) | 2012.03.30 |
용두사미 액션 영화. 영화 "콘트라밴드"를 보고. (0) | 2012.03.30 |
비주류의 슬픔이 인상적인 영화. 영하 "하울링"을 보고. (0) | 2012.02.29 |
이야기만 있고, 캐릭터가 없는 영화. 영화 "액트 오브 밸러"를 보고 (0) | 2012.02.2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