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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고

첨단 기술에 상실해가는 생각하는 능력에 대하여. 책 "퓨처 마인드"를 읽고...

by 은빛연어 2011. 10. 23.

 스티브 잡스의 갑작스러운 죽음에 언론과 발빠른 네티즌들은 그 소식을 여기저기 전했다. 소식을 접한 세계에 많은 사람들은 그의 죽음에 안타까워하며 애도했다. 초등학교시절 애플 II를 가지고 놀던 때부터 스티브 잡스라는 인물에 대해서 알았고, 컴퓨터에 빠져 살았던 그 시절에 동경의 대상이자 우상이었던 그의 죽음 소식은 다른 많은 사람들처럼 충격이었다. 그런데 내가 삐딱해서 그런지 몰라도 스티브 잡스에 대한 언론과 시민들의 반응이 너무 과잉적이지 않냐는 생각이 들었다. 친하지는 않고 조금이나마 알고 있는 사람의 죽음에 애도하고 안타까워하는 것은 당연한 인간의 도리이지만, 한 기업의 CEO의 죽음에 대한 반응으로는 쉽게 이해가 가지 않았다. 물론 스티브 잡스가 만들어낸 제품들이 우리의 삶에 많은 영향을 끼친 것도 사실이고, 그가 만들어낸 혁신이 우리의 삶을 진보 시킨 것도 사실이지만, 그가 인류애적 헌신을 발휘한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민주주의를 위해서 헌신했던 사람도 아닐 뿐더러, 더더욱 그는 인류의 문명발전에 혁혁한 공을 세웠던 학자도 아니지 않던가?

 

생각해 보면 그의 혁신이라는 것도 기업적 관점과 경제적 관점에서 발현된 것일 뿐 아니라, 지금 많은 사람들이 열광하는 아이폰이나 아이패드 같은 기기들이 과연 우리가 생각하는 것 만큼이나 우리의 삶을 풍요롭게 만들었는지 의문이다. 개인적으로 평가하자면 아이폰이나 아이패드는 fun과 편의성의 결합한 오락도구라고 생각한다. 물론 제대로 활용해 자신의 업무나 실생활에서 기대 이상으로 활용하는 사람들이 있지만, 대부분은 그렇지 않은 게 현실이다. 누구나 쉽게 즐길 수 있는 게임기 Wii를 만들어내 소니의 플레이스테이션과 MSXbox를 밀어내고 세계 최고의 게임회사가 되었던 닌텐도가 스마트 폰과 테블릿 pc의 등장으로 순식간에 침체기로 빠져든 것을 보면 지금 소비자들의 소비형태에 fun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지 않을까? 잡스가 만들어낸 애플의 제품들은 분명 fun이상의 혁신적인 기능들이 존재하지만, 실제로 소비자들은 혁신보다는 fun을 더 추구했고, 잡스 또한 fun을 자신의 혁신적인 제품에 담고 있었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지 않을까?

 

그렇게 보면 스티브 잡스에 대한 열광은 현대 소비 만능 시대가 만들어낸 자화상이라는 생각이 든다. fun을 소비하기를 바라는 소비자의 욕망을 잘 이용하는 기업들이 만들어낸 판타지적 세계에서 현대인들은 빠져있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물질과 돈의 가치가 최고가 되고, 정작 중요한 가치에 대해서는 현대인들은 생각하지 않는다. 인간에 대한 다양한 정의와 가치는 무시하고, 스스로를 단순히 소비자라는 가치에 고정 시켜 버린다. 그런데 그들은 스스로를 지극히 논리적이며 똑똑하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기업의 마케팅이나 상술에 쉽게 놀아나지 않는다고 착각한다. 소비자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는 사회 변화가 그런 착각을 더 강화 시킨다. 실제로는 그들의 소비 행태를 냉정하게 분석하면 똑똑한 소비는 거의 없다. 그런데 이런 소비 세계에서 만들어진 스스로가 이성적이면서 똑똑하다는 착각이 현실의 사회문제에서도 작동하는 것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제주도 강정마을 사태를 두고 해군과 충돌한 강정마을 사람들에 관한 한 기사가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커뮤니티 사이트에 올라왔었다. 강정마을 해군기지에 대한 찬반은 생각과 가치관이 다를 수 있기에 단순히 찬반 논쟁으로 댓글들이 흘렀다면 개인적으로 화가 안 났을텐데, 댓글의 시작부터 어이가 없게 흘러 갔다. 해군이 쳐 놓은 철책을 넘어온 강정마을 사람과 활동가들에게 대해서 "총살이나 사살해도 할 말이 없다."라는 어이 없는 댓글들이 뒤에 숫자를 붙여가면서 줄줄이 달려있었다. 이게 뭐가 어이없는 댓글이냐고 생각한다면 당신도 생각이 없고 상식이 없는 사람이다. 강정마을 사태에 대해서 전혀 모르더라도 말이다. 그 커뮤니티가 그냥 네티즌들이 장난이나 치는 사이트였으면 실망감이 덜 했을텐데.. 나름 스스로를 객관적이고 논리적이라고 칭하는 사람들이 점잖은 척 하면서 예의라는 것을 지키는 사이트였기에 더 어이가 없었다. 화가 나서 "웃음 밖에 안 나오는 어이없는 댓글들"이라고 한 마디 했더니, 구성원들을 배려하지 못하는 댓글이라는 공격이 들어온다. 인류 보편적 상식은 비무장한 민간인에게 어떠한 경우에라도 총격을 가해서는 안된다는 것인데... 시민에게 군인이 총격을 가해도 할 말이 없다라는 댓글을 당당하게 달면서 예의나 예절을 찾는다.

 

문득 진중권의 말이 생각났다. 자신이 독설을 퍼부으면 논리적으로 따지는 사람은 거의 없다고... 단지 자신의 말하는 태도에 문제를 삼는다고... 그래도 진중권은 논리가 통하는 상대와 논쟁을 벌였기에 그런 반응이 나왔겠지만, 기본적인 상식이 없는 사람들에게 무슨 논리로 말해야 할까? 내 댓글에 예의를 찾고 논리를 찾는 사람들을 보면서 웃음이 났다. 상식도 없으면서 예의와 논리를 찾는데.... 무슨 논리로 상식을 설명할 것인가? 있는 척하고 잘난 척하면서 형식적인 논리를 따지는지 몰라도 인류 보편적 가치에 대한 생각이 없고 상식이 논리를 대체하는 전형적인 모습이 아닐까? 이것을 단순히 소비 시대에 가치 상실로만 설명할 수 있을까? 아니면 우리나라 군대가 만들어낸 폐혜라고 단순하게 말할 수 있을까? 나도 군대는 갔다왔는데...... 정확한 원인이야 무엇인지 알 수는 없지만, 우리는 논리라는 것이 상식을 뛰어넘고, 보편적 가치를 뛰어넘는 이상한 시대에 살고 있는 것 같다. 그 논리라는 것도 어떤 가치나 진리를 포함하는 것이 아니라 지극히 형식적인 논리라는 것이 더 큰 문제다. 사실 군 철책을 넘어온 침입자에 대해서는 사살해도 좋다는 규정이 존재하는 현실은 그런 댓글을 달았던 사람들의 형식 논리는 맞다고 할 수도 있으니까. 그렇지만 기본 상식과 보편적 가치를 무시한 형식 논리는 지극히 폭력적이라는 것이라는 것을 "총살이나 사살해도 할 말이 없다."라는 댓글을 함부로 다는 사람들을 통해서 명확하게 보여지지 않는가.

 

그 일에 대한 의문과 궁금증이 계속 더 해가는데, 이 책의 내용이 그 일에 대한 어느 정도의 해답을 주는 것 같았다. 생각하는 능력을 상실해 가는 현대인들의 문제점과 원인을 지적하고 그것에 대한 해결 방법을 제시하는 책이다. 창의적 인간이 어떻게 만들어지고 또는 창의적 생각을 하기 위해서 어떻게 해야 되는지 제시하면서 기업 경영이나 혁신의 관점이 들어가서 인문학적 성찰이라는 면에서는 조금 부족해 보이지만, 우리가 열광하고 있는 IT 문화에 대해서 상당히 비판적으로 접근하고 있다. 그런 비판과 논리가 공감이 가는 것은 이 책의 저자처럼 정확하게 인식하지는 못해도 추상적으로나마 알고 있던 것들이기에 그렇다. 저자의 이런 성찰이나 문제인식은 이미 "생각의 탄생"이나 "집중력의 탄생"이라는 책과 연관해서 생각할 여지가 많다. 황농문 교수는 "몰입"이라는 자신의 책을 통해서 "천천히 생각하기"라는 화두를 던지고 그 힘을 설명하기도 했다. 그 만큼 우리는 현대 문명의 이기를 즐겁게 이용하면서 생각하는 능력을 점점 상실하고 있는 현실을 말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이 책과 다른 여러 책들은 형식 논리에 치중해 다른 가치를 빼먹고 자신의 생각을 짧은 댓글로 즉자적으로 표현하는 사람들을 행위를 설명하는데 충분하다는 생각이 든다. 즉 그들은 깊은 생각을 하지 못하고 단순한 형식적인 논리로 빠르게 응답했을 뿐이다. 그들은 빠르지 않으면 생존하기 힘든 속도 경쟁의 시대에 생존하기 위해 잘 적응된 모습을 보여준 것 뿐이다. 그래서 중요한 가치를 망각하고 즉자적으로 생각하고 표현할 뿐이다.

 

우리는 수 많은 정보의 바다 속에서 자유롭게 헤엄치면서 수 많은 정보를 손 쉽게 접한다. 1960년대와 비교해 2008년 사람들은 300배 이상의 많은 정보를 받아들인다고 하니 엄청나지 않은가? 그런데 과연 그런 정보들이 얼마나 가치가 있는 것이며, 과연 우리는 얼마나 그런 정보들을 취합해서 지식과 지혜를 넓혀가고 있는가? 단지 정보마저도 fun을 추구하기 위해서 그저 소비하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그렇게 생각하면, "지금은 우리가 인터넷을 이용하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아마도 종국에는 인터넷이 우리를 이용하게 될 것이다. 우리는 보통 시간이 가면 지식이 늘어난다고 가정한다. 그래서 인터넷이 지식을 확장시킨다고 믿는 것이다. 그러나 그와 정반대의 일이 일어날 가능성은 항상 존재한다. 현재 너무 쉽게 공동 생산과 배포가 가능한, 방대한 양의 디저털 쓰레기와 혼란이 학습과 지혜를 집어삼키고 있기 때문에 시간이 지날수록 우리의 무지가 확대될 수 있다."라는 저자의 주장은 어쩌면 지금 우리의 모습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퓨처 마인드 - 8점
리처드 왓슨 지음, 이진원 옮김/청림출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