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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고

이게 너희가 사는 세상이야. 책 "생태요괴전"을 읽고..

by 은빛연어 2010. 1. 9.
 

 얼마 전에 자주 가는 사이트에 이런 질문이 올라왔다. "지금의 청년실업의 문제가 고졸만의 문제인가?". 88만원 세대라고 불리는 지금의 20대들의 심각한 현실과 고민들이 가득 묻어남과 동시에 현실에 대한 한탄과 절망감이 같이 묻어나는 질문이었다. 사이트의 이용자들이 주로 10대와 20대들이다 보니 대부분의 답변은 열심히 공부해서 취업하라는 소리 뿐이다. 질문을 올린 사람이 열심히 해서 지금의 문제에 직면했는지 정확히 수는 없지만, 과연 지금의 20대들이 지금의 기득권층이 되어버린 세대에 비해서 열심히 안하고 있다고 말할 있을까? 지독한 취업경쟁으로 인해서 대학생활의 낭만이라는 말은 추억이 된지 오래고, 스팩 쌓기가 대학생활의 목표가 되어 버린 지금의 20대들에게 말이다. 자신의 대학생활은 생각해보지 않고, 지금의 20대가 게으르고 패기도 없고 나태하다는 식의 막말을 함부로 하는 사람들, 그들이 바로 지금의 기성세대이다.

 

 지금의 기성세대는 지독한 물신주의 속에서 삶을 살아간다. 그래서 어떻게든 많은 부와 권력을 얻기 위해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 비도덕적인 방법이라도 상관하지 않으며 어떻게든 그들이 숭배하고 있는 것들을 차지하려고 한다. 그러다 보니 경쟁이라는 놈을 최고의 덕목으로 생각하게 된다. 경쟁에서 낙오한 사람들에게는 패배자라는 딱지와 함께 제기할 기회조차 없는 가혹한 사회를 만들어 버렸다. 아무리 안철수 교수가 실리콘 벨리는 실패의 요람이고, 우리 사회에서도 실패하더라도 다시 일어 설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고 외치고 다닌다고 해도 그런 가혹한 사회구조는 쉽게 바뀌지 않는다. 과도한 탐욕으로 현실을 제대로 바로 있는 이성적 판단이 이미 마비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니 생명의 가치라는 것은 언제나 돈의 가치로 평가해버린다. 용산사태의 본질은 개발의 광풍에 삶의 터전을 잃은 사람들이 생존권을 찾으려는 몸부림이다. 용산의 사람들이 치열할 밖에 없었고, 결연할 밖에 없었던 이유는 바로 그것이 생명과 직결되는 문제였기 때문이다. 그런데 물신주의의 숭배자들은 간단히 그들의 생명에 대한 가치와 정당한 요구를 묵살해 버린다. 때문이라는 마디로. 생각 같아서는 면전에다 대고 당신이라면 때문에 목숨 있겠냐고 묻고 싶으나, 분명 그럴 있다고 생각하는 인간들이라는 생각이 문득 든다. 그런 물신주의자들은 자신이 그럴 있으니까 남도 그럴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런데 사람들 중에 과연 얼마나 자신이 원하는 물질적인 부와 권력을 얻었을까? 통계적으로 본다면 5% 정도는 될까? 이제는 있으나 마나 것이 되어 버린 "종부세"쯤은 있는 정도는 되어야 그들이 추구한 부를 얻었다고 있지 않을까? 그럼 나머지 95% 사람들은 뭐가 될까? 그들은 그렇게 치열하게 물신을 숭배하고 치열하게 경쟁하면서도 자신들의 탐욕을 채우지 못하면서도 여전히 경쟁 속에서 아등바등 거리는 처량한 신세다. 사람들의 특징이라면 자신의 이득보다는 상위 5% 사람들을 위해서 움직이는 좀비들이랄까? 정부의 정책이나 제도에 대해서 철저하게 자신의 이익을 배제하고 5% 사람들을 위해서 움직인다. 뇌는 없고 단지 본능에 충실한 좀비들. 그들은 자신의 본능이라는 것이 누군가에 의해서 만들어진 것인지 모른다. 그들은 "노동자가 노예냐" 나의 질문에 "노예"라고 당당히 말씀하시는 나의 아버지 같은 그런 사람들이다. 자신이 노동자이면서도 노동의 가치나 의미를 전혀 모르는.

 

 그럼 지금의 기성세대에 비해서 20대나 10대가 달라질까? 별차이는 없어 보인다. 우석훈 교수는 대학교에서 강의를 하면서 지금의 기성세대와는 다른 20대들을 많이 만나봐서 그런지 "혁명은 이렇게 조용히"라는 책을 썼지만, 나는 쉽게 그런 사람들을 발견할 수가 없다. 전부 패배의식에 쩔어서 어떻게든 좋은 학벌만을 추종하고, 높은 연봉을 향해서 맹목적인 경쟁 중인 사람들이었다. 이들의 현식 인식 또한 기성세대와 차이를 보이지 않는다. 글의 처음에 언급한 질문에 대한 답변으로 나는 기성세대의 책임론을 거론했다. Mb 딴나라당 그리고 기성세대를 쓰레기라고 규정하고, 지금의 20대는 사회에 처음으로 진출하기 때문에 사회적 자본을 비롯한 정치적 힘이 없어서 착취당하는 구조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나는 20대들에게 깨어있음을 강조했고, 연대를 통해서 정치력을 키우라고 주문했다. 기본적으로 많이 공감하는 우석훈 박사와 박노자 교수의 글들의 안에서 제대로 현실을 보라는 뜻에서 과격하게 썼다.

 

 내가 말하고자 하는 핵심을 제대로 이해하면서 공감하는 사람도 있었고, 문체를 문제 삼는 사람도 있었고, 정면으로 반박하는 사람도 있었다. 문체나 어투를 문제 삼는 사람은 전반적인 글의 내용에 동의를 표했다. 물고 늘어지는 내가 귀찮아서 였는지도 모르겠지만. 그런데 반박이라고 하는 수준이 말꼬리 잡기나 하면서 자신도 정치를 꿈꾼다고 말하는 꼬라지는 정말 뭐라고 표현해야 할까? 주주자본주의가 중심이 기업은 기술개발을 제대로 하지 않기 때문에 이상 발전하지 못한다는 글에 없이 현대의 과학기술의 발전이 과거에 비해서 더했으면 했지 덜하지는 않다는 답변을 보면서, 나는 글의 문맥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자신의 수준으로 정치를 꿈꾸는 용감함에 그저 박수를 보낼 뿐이다. 그가 박수의 의미를 알아 챌지는 모르겠다. 조롱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나도 미숙한 존재인데, 나보다 미숙한 존재가 있다고 한들 내가 뭐라고 것인가. 단지 나의 조롱과도 같은 박수의 의미는 화가 나서, 같은 놈을 밟아 버릴 있는 사람이 되라는 뜻이라는 것을.

 

 나는 같은 인간 밟아 벌리고 잘난 있는 10대나 20대들을 좋아한다. 지킬 것이 많은 인간들과 달리 내가 지켜야 것은 없기 때문에. 같은 인간 밟아 버리고 제대로 세상을 비판하고 바꾸려는 사람이 있다면 그것으로 나는 행복하겠다. 그런데 그런 사람이 많이 보이지 않는다. 그들이 받아온 교육과 부모들이 보여주는 모습으로 인해서 그대로 그들은 부모들의 물신주의를 답습하기 때문이다. 자녀는 부모의 거울이라고 하지 않았던가? 자신과 닮은 자녀를 보면서 깜짝 놀라서 자신을 반성해야 되는데 기성세대와 좀비들은 오히려 좋아한다. 자신들이 이루지 못한 것을 자녀들은 이뤄주기 바라는 욕망을 오히려 자식들에게 투영까지 한다. 그래서 10대나 20대들은 기성세대와 다를 수가 없어 보인다.

 

 그럼 이대로 살아야 할까? 그럼 현실은 각박해지고 절망적이지 않은가? 이제라도 어떻게 변화해야 하지 않을까? 어떻게 해야 우리가 변할 있을까? 어떻게 하면 기성세대들이 만들어 놓은 물신주의를 뛰어 넘어 새로운 세상을 창조하거나 만들 있는 생각과 힘이 생길까? 이미 온갖 고정관념과 편견 그리고 이데올로기로 찌들어 있는 기성세대가 변한다는 것은 죽기보다 어려운 일일 것이고, 아직 지식과 정보를 쉽게 습득하고, 기성세대가 가지고 있는 고정관념이나 편견이 없는 10대와 20대들을 변화시키는 것이 쉽다. 그래서 중요한 것은 그들이 깨어나야 하지 않을까? 제대로 현실을 인식하고 무엇인 잘못된 것인지를 바로 인식할 있게 만들어야 한다. 우석훈 박사의 "생태요괴전" 그런 현실을 다양한 요괴들의 은유나 메타포를 활용해서 쉽고 재미있게 펼쳐 보인다.

 

 10대들의 겨냥해서 쓰여진 책이라서 그런지 어려운 이야기들은 전혀 없다. 아니 20 이상도 읽어야 좋은 책이라는 생각이 정도다. 오히려 사람이 경제학자인가라는 의문이 정도로 영화에 대한 박식함 뿐만 아니라 다양한 사회현상과 문학작품이나 철학저작물에 대해서 박식함을 뽐내면서 자신이 10대들에게 하고 싶은 말을 펼쳐 보이는 것을 보면 감탄이 절로 나올 뿐이다. 다만 요괴들과 현실을 같은 선상에 놓음으로써 지금의 현실을 너무 우울하게 설명하는 것이 아니냐는 생각이 스쳐 지나간다. 물론 나는 이런 우울한 분위기 좋아한다. 그게 바로 현실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하지만, 자신이 기존에 가지고 있던 현실과 다른 사실을 접했을 가장 먼저 하는 행위가 부인이나 외면인 것처럼 책이 조금은 외면 받을까 하는 기우에서 그런 생각이 든다.

 

생태요괴전 - 10점
우석훈 지음/개마고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