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고를 졸업한 위대한 이라는 야구 선수가 있었다. 좋게 이야기하면 젊은 날의 객기로 실수겠지만, 소위 말하는 뻑치기 범죄 경력으로 인해서 졸업을 앞두고 과연 프로구단의 지명을 받을 수 있을 것인가에 많은 야구팬들의 관심을 집중시켰다. 능력이나 가능성으로 본다면 충분히 1차지명감이라고는 하는데, 과거의 경력 때문에 제2의 노장진이라는 꼬리표를 달고 있었다.
2차지명이 시작되면서 상위 순번에서 그를 지명하는 구단은 없었다. 그러다가 2차 3순위에 sk구단이 그를 지명한다. 스카우터는 위대한 선수의 야구에 대한 열정을 최종 판단의 근거로 삼았다고 한다. 2007년 sk에 입단한 위대한 선수는 그 열정을 피워보지 못하고 야구를 그만두게 된다. 과거 경력을 문제삼으면서 팬들이 구단에 항의를 표시하기 시작한 것이다. 팬들의 압박을 견디지 못한 위대한 선수는 그렇게 야구계를 떠났다. 이제 막 20살의 나이에......... 그것이 안타까워서 내 블로그에 "위대한 선수에 대한 단상"이라는 글을 썼었지만, 요즘들어 다시 그가 생각난다.
최진실의 자살이라는 사건이 이슈화 되면서 증권녀를 향한 "용서를 못하겠다."라는 댓글을 통해서, 그가 다시 생각났다기 보다는 그 당시 그를 비판하는 댓글에 "용서를 못하겠다."라는 댓글이 생각나면서 그가 다시 생각났다는 것이 올바른 말일 것이다.
위대한 선수를 향한 "용서를 못하겠다."라는 댓글을 보면서 피해자나 그의 가족들이 아니라 야구팬들이 용서라는 말을 올리는 것이 과연 바른 것인가라는 의문을 가졌었다. 야구를 사랑하는 사람들의 입장에서는 싫고 좋음은 있을 수 있어도 용서라는 말이 과연 어울리는 것일까? 분명히 위대한 선수는 법원에서 판사의 선고를 받고 죄값을 치뤘다.(물론 그 죄값이 가치는 보는 사람의 관점에 따라서 다르게 생각할 수 있다.) 피해자의 가족들이 그를 용서했는지 안했는지는 알 수 없지만, 그가 용서 받아야 할 2곳 중에 하나는 분명히 댓가를 치르고 용서를 받았다. 그 외에 누구도 그에게서 용서받을 위치에 있지않으며 용서할 권한도 없다.
증권녀에 대해서도 용서를 말할 수 있는 사람은 최진실의 유족들 외에는 없다. 하지만 많은 이들은 용서할 수 없다는 말로 울분을 표출한다. 뿐만 아니라 용서를 빌지 않았다고 분노한다. 그들이 용서를 말할 수 있는 위치나 권한이 있는 사람들일까? 물론 그들이 팬이라는 잣대를 가지고 자신들은 그런 위치와 권한이 있다고 말 할 수 있겠지만, 너무나 추상적이고 광범위한 것에 대해서 책임을 묻는다는 것도 과잉적인 것일 뿐만아니라, 그 많은 대중을 어떻게 만족시킬지도 의문이다.
어느 책에선가 용서란 "자신이 용서할 것이 없다는 것을 깨닫고 이를 감정적으로 수용할 수 있을 때 가능하다."고 했다. 이를 보고 어떤 이는 신만이 가능한 것이 아니냐고 농담반 진담반으로 나에게 말했지만, 그 만큼 용서라는 것이 어렵고 숭고한 과정이다. 그런 용서의 권한을 가질 수 없는 제3자나 간접적인 인물들이 함부로 용서라는 말을 쉽게 올릴 수 있을까? 하지만, 우리는 너무나 쉽게 용서의 권한이 자신에게 있는 것 처럼 스스로를 정당화 하면서도, 쉽게 용서를 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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