셰익스피어는 없다 - 버지니아 펠로스 지음, 정탄 옮김/눈과마음 |
어느 일요일, 더 이상 잠자는 것이 지루해 이불을 박차고 일어나, 졸린 눈으로 TV를 봤다. 때마침 M방송국의 "서프라이즈"가 방송되고 있었다. 좋아하는 프로그램은 아니지만, 누군가 보고 있었기에 그냥 같이 보게 되었다. 그때 방송된 내용이 셰익스피어의 정체에 관한 이야기였다. 셰익스피어라는 이름을 빌려준 인물의 주변배경으로 볼 때는 영국이 인도와는 바꾸지 않는다는 셰익스피어의 천재성은 결코 나올 수 없는 상황이었다고 한다. 부모가 문맹이고 정규교육도 받은 흔적이 없다는 것이 그 증거라고 한다. 그래서 많은 학자들은 진짜 셰익스피어는 "프랜시스 베이컨"이라고 주장했다고 한다. 그리고 얼마 뒤 읽은 신문의 해외뉴스에 비슷한 내용의 기사가 실려있었다.
셰익스피어의 책은 초등학교에 집에 있던 문고판으로 조금 읽어봤을 뿐, 그의 작품을 보고 문학적으로나 언어학적으로 대단하다고 생각한 적은 없다. 초등학생이 문고판을 읽고 셰익스피어 작품의 가치를 안다는 것이 웃긴 일 일이다. 그 이후로 셰익스피어의 작품을 제대로 읽어본 적이 없으니 나에게 셰익스피어는 언론과 역사가들이 평가하는 그냥 위대한 작가일 뿐이다. 그러다 셰익스피어를 주목하게 된 것은 경영의 아버지라는 "피터 드러커"의 책 "나의 이력서"를 통해서다. 피터 드러커는 3년 단위로 계획을 세우는 것이 있는데 그 예로든 것이 "셰익스피어 전집을 주의깊게 천천히 읽는 것"이다. 그 글을 보는 순간 나도 셰익스피어 전집을 제대로 읽어봐야겠다는 결심만 했고 아직 실천에 옮기지는 못하고 있다.
셰익스피어에 대해서 잊혀져 갈 때쯤 이 책을 접하게 되었다. 책 표지와 제목을 보면서 "단테의 신곡살인"이나 "단테의 그림자 살인" 작품 같이 역사적 인물을 가지고 만든 역사소설이라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한 폐이지, 한 폐이지를 넘기면서 내가 생각했던 그런 책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다. 그러면서 새록새록 기억이 나는 것이 앞에서 이야기 했던 "서프라이즈"라는 방송이었다. 그 방송에서 처럼 이 책은 진짜 셰익스피어 "프랜시스 베이컨"에 관한 책이다.
베이컨이 남겼다는 암호를 번역하면서 베이컨과 셰익스피어와 엘리자베스 여왕과의 관계에 대해서 자세하게 이야기하고 있다. 숨겨진 왕자로써의 서러움과 왕권과 권력을 향한 다툼과 또 다른 숨겨진 왕자인 에식스 이야기까지, 인물들과 역사적 상황이 만들어내는 갈등관계는 추리소설을 읽는 것 같은 긴장감을 준다. 전체적으로 본다면 셰익스피어의 실체에 관한 것이라기 보다는 베이컨이라는 인물과 그 주변의 역사를 보여주는 책이다. 재미있는 것은 베이컨의 당시 현실과 셰익스피어의 작품에서 나타난 현실과 상황의 묘사가 절묘하게 맞아 떨어지기도 한다. 그래서 "셰익스피어는 없나?"라는 의문에서 책 제목처럼 "셰익스피어는 없다"라고 확신을 가지게 된다. 하지만 이 책은 누가 셰익스피어인지보다 프랜스시 베이컨이라는 인물에 더 초점을 맞춘 책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셰익피어의 정체보다 베이컨의 삶에 관한 이야기가 더 흥미를 끈다.
이 책을 읽으면서 안타까웠던 것은 내가 베이컨의 작품과 사상에 대해서도 잘 모르고 셰익스피어의 작품에 대해서도 잘 모른다는 거였다. 이 책을 통해서 베이컨의 상황과 사상을 조금은 이해가 되었지만, 베이컨이라는 인물과 그의 작품들에 대한 호기심은 커졌다. 그래서 나도 결심했다. "셰익스피어 전집"과 베이컨의 작품을 모두 읽어봐야겠다고……. 그게 언제가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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