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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를 보고

위로 받지 못한 이들을 위한 따뜻한 코메디 영화. 영화 "멋진 악몽"을 보고.

by 은빛연어 2012. 4. 29.


한 때 일본 특유의 코메디 영화를 좋아 했었는데, 언제부터인가 현실을 너무 비약적으로 비틀어 억지스러운 코메디 설정에 실증나기 시작했다. 좋은 유머나 코메디는 억지스러운 설정이나 조작으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자연스러운 현실 속에서 의외성으로 만들어진다. 남을 울리는 것보다 웃기는 것이 어려운 것은 이런 기발한 의외성을 찾아내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자연스러운 웃음을 유발하는데 어려움을 느끼는 이들은 좀 더 강한 액션과 행동으로 웃음을 유발하려고 하지만, 대중들은 쉽게 실증을 내고, 기억 속에서 쉽게 잊어 버린다. 요즘 중국 코메디 영화나 일본 코메디 영화가 식상하고 재미 없는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다.

 

"멋진 악몽"이라는 영화의 예고편과 시놉시스만을 봤을 때는 일본특유의 코메디 코드가 있을 것 같은 거부감이 들었다. 하지만, 소재의 독특함이나 출연 배우들의 면모 그리고 일본 최고의 코메디 감독이라는 미타니 코키의 연출이라는 것에 왠지 모를 호기심이 발생한다. 이 영화도 어떻게 보면 억지스러운 설정으로 시작한다. 유령을 법정의 증인으로 세운다는 기본 시놉시스는 누가봐도 현실스럽지 않다. 이럴수록 연기나 연출이 이런 억지스러운 연출을 현실성 있는 이야기로 끌어오는 힘이 필요하다. 그런 점에서 본다면, 일본 영화 특유의 연기톤이나 느낌은 가지고 있지만, 적절하게 균형을 유지해 억지스러움이 만들어내는 거부감을 줄여준다.

 

영화는 소송에서 패하기만 하던 에미에게 회사가 마지막 기회라면서 부인 살해 의혹을 받고 있는 남자의 변호를 맞기면서 시작한다. 증인도 증거도 모두 피고에게 불리한 상태에서 에미는 어떻게는 무죄를 입증할 증거를 찾으려 하지만, 피고의 무죄를 증명할 수 있는 유일한 증언은 패전 무사에 의해서 가위에 눌렸다는 사실 뿐이다. 혹시나 하는 작은 희망을 가지고 피고가 가위에 눌렸다는 여관을 찾아가 본다. 하지만, 증거가 될 만한 것은 전혀 없고, 버스를 놓치면서 여관에 투숙할 수 밖에 없게 된다. 피고가 묵었던 방에 투숙한 에미는 잠을 청하고, 패전 무사에 가위 눌리게 된다. 보통의 사람은 유령을 볼 수 없지만, 에미는 그 패전 무사를 보고, 이야기까지 한다. 무죄를 입증해야 한다는 사명감에 에미는 패전 무사 로쿠베를 설득해 증인으로 법정에 세우려 한다.

 

이 후에 영화는 유령이 법정에 증인으로 등장하면서 일어나는 다양한 에피소드들로 이야기를 끌어간다. 어떻게든 유령의 존재를 증명해서 피고의 무죄를 밝히려는 변호인 측과 유령의 존재를 부정하는 검사 측의 치열한 공방이 진행된다. 하지만, 이 영화의 이야기가 단순히 법정 공방으로만 머물었다면 평범한 코메디 영화에 머물렀지도 모르겠다. 영화는 단순하게 유무죄의 증명하는 공방이 아니라 그 과정에서 보여지는 인간의 상처를 보여준다. 이 영화에서는 유령을 볼 수 있는 조건이 있다. 하던 일이 풀리지 않고, 사고로 죽음 가까이 직면했거나 가까운 주변의 죽음을 경험했거나, 그리고 특정한 향신료를 먹어야 한다는 것이다. 마지막 설정은 그냥 영화적 재미나 코드를 위해서 사용한 장치로 보여지지만, 앞의 두 가지는 큰 상처로 인해서 현실에서 위로받지 못했던 이들의 상황을 나타낸다.

 

즉 현실에서 위로받지 못한 상처받은 영혼들이 귀신이라는 존재를 통해서 대신 위로 받는다. 그 사람이 받은 상처가 상실로 인한 상처라는 점에서 현실에서 쉽게 위로 받을 수도 있다. 하지만, 실제로 그런 상처에 대해서 얼마나 제대로 이해하고 위로 하려 했냐고 묻는다면 쉽게 그렇다고 대답할 사람이 얼마나 될까? 영화 속 냉철한 검사의 상처를 에미는 이해하고 위로해 주는 식당 장면은 이런 우리의 모습을 은유적으로 보여준다. 유령을 보지 못하는 대다수의 식당 손님들은 죽은 개 유령과 뒤엉켜 즐거워 하는 검사의 모습을 미친 사람 보듯이 한다. 그것은 타인의 상처에 대해서 무관심한 대중들의 모습을 은유적으로 보여주는 것이 아닐까? 처음에 에미는 단순히 짤리지 않기 위해서 피고인의 변호를 하지만, 영화가 진행되면서 에미는 일이 아닌 마음으로 사람를 이해하고 상처를 보듬는 변호사로 변해 간다.

 

영화 후반은 이렇게 변한 에미가 점점 더 주도적인 인물로 변해간다. 현실의 힘겨움에 눌려서 수동적이고 어리바리 하던 에미는 스스로 껍질을 깨고 나온다. 누군가의 도움에만 의존해서 재판을 이끌어 가던 에미는 스스로 재판을 주도해간다. 결국 불리하게 전개되던 재판을 유리한 방향으로 전개 시킨다. 그렇게 보면 이 영화는 단순한 코메디 영화가 아니다. 에미라는 인물에 집중해서 보면, 상처 받은 인간이 위로 받고 성장해 가는 따뜻한 영화다. 왜 미타니 코키가 일본 최고의 코메디 감독인지는 보여주는 것은 영화 속에 있는 다양한 유머 코드가 아니라 에미라는 인물을 중심으로 보여지는 인간적 따뜻함과 성장이 보여주는 잔잔한 감동 때문이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