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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고

경영전략보다는 학문과 현실의 괴리를 경험한 사회초년생들을 위로하는 책 같은.. 책 "전략퍼즐"을 읽고.

by 은빛연어 2012. 2. 27.

 다양한 책을 읽으면서도 내가 읽어왔던 것들이 무의미하지 않냐는 회의가 가끔 든다. 책을 읽는 이유가 단순하게 정보와 지식을 습득해 어딘가에 써먹기 위한 것 만은 아니지만, 책에서 보았던 내용을 현실에서 응용해야 될 일이 발생한다. 이상과 현실의 괴리라는 말처럼, 책과 현실과의 괴리가 존재한다고 해야할까? 책 속의 지식이 현실에 그대로 적용되는 경우를 쉽게 찾을 수가 없다. 책에 포함된 내용이라는 것이 현실 중에 일부분으로 어느 정도 증명되고 모두가 공감할 만한 것을 바탕으로 하고 있기에 복잡한 현실적인 요소들을 다 포함하지 못하는 한계를 가질 수 밖에 없다. 그래서 책의 지식을 현실에 적용하는데는 많은 시행착오를 거치고, 책의 지식을 현실로 확장시켜야 한다. 단순 암기라는 학습법에 익숙한 우리나라의 교육현실에서 보면 조금은 힘들고 어려운 과정이다. 지금 말하는 내용과는 전혀 상관 없지만, 가끔 "책만 보는 바보"라는 제목을 보면서 그게 나라고 자조한다.

 

이런 생각은 나만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니라 사회적의 또 다른 단면이기도 하다. 한 경제신문의 기사에 의하면 기업들이 신입직원을 재교육하는데 평균 38.9일의 기간과 217만원의 비용이 들어간다고 한다. 대기업의 경우는 56.1일의 기간과 406만원이라는 비용이 든다고 한다. 대학에서 가르치는 내용과 산업현장에서 필요한 내용과 많이 달라서 불필요한 사회적 비용이 낭비되고 있는 것을 보여준다. 앨빈 토플러의 저서 "부의 미래"를 보면 변화의 속도를 이야기한 부분이 있다. 거기서 토플러는 기업은 시속 100마일로 변화하고 있다면 미국의 학교는 시속 10마일로 변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토플러의 말이 맞다면 기업과 학교의 변화 속도 차이를 보충하기 위해서 신입사원에 대한 재교육의 시간과 비용이 필요하다는 말이 된다.

 

그런데 여기에는 학교라는 곳의 존재 목적에 대한 심각한 왜곡이 있는 것 같다. 학교는 기업에 필요한 노동자를 양산하기 위해서 존재하는 기관이라는 명제를 너무나 당연하게 만들어 버린다. 시민적 소양이나 비판적 지성인을 키워야 될 학교 교육은 기업에 필요한 인력을 키우는 인력 양성소로 변해 버린 것이다. 우리나라의 학교 현실을 보면 더욱 비참하다. 중고등학교에서는 좋은 대학에 가기 위한 것이 유일한 목표가 되고, 대학교에서는 대기업에 가기 위한 것은 유일한 목표가 된다. 중고등학교에서는 점수 경쟁에 매몰되고, 대학교에서는 스팩 쌓기에 매몰된다. 돈이 되지 않는 학문이라고 생각되면 학과를 마구잡이로 통폐합 시켜버리는 기업 친화적인 교육의 환경은 학문의 다양성을 심각하게 침해할 뿐만 아니라, 그들이 눈을 시퍼렇게 뜨고 찾는 창조적 인재들이 자라기 전부터 짓 밟는 것이다.

 

어떤 면에서 우리나라의 지금 교육 형태와 문제에 원인을 제공한 것은 기업이라고 할 수 있다. 제대로 된 평가시스템을 갖추지 못하다 보니, 가장 손쉽게 사람의 능력을 평가할 수 있는 스팩에만 의존한다. 교육을 마치고 사회에 진출하는 사회초년생들이 취업을 하기 위해서 그런 평가 시스템에 자신을 맞추기 위해서 스팩 쌓기에 몰입한다. 영어로 업무하지 않으면서 왜 높은 영어성적이 필요하며, 재교육 과정을 거치면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에 높은 학력은 왜 요구해야만 하는지 정작 기업들도 제대로 대답하지 못 할 것이다. 그냥 편하고 쉬운 관행적 평가 시스템에 익숙하기에 그냥 이런 평가 시스템을 이용할 뿐이다. 기업들은 경쟁이 심한 시장에서는 숨 가쁜 속도로 변화하고 있을지 모르지만, 이런 면에서 기업의 변화 속도는 학교의 변화 속도와 별 차이가 없다.

 

학문과 현실의 차이는 어쩌면 당연한 것인지 모른다. 토플러가 말한 변화의 속도 차이도 있지만, 기업을 위해서 학교가 존재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기업을 위한 노동자 양성이 중요하다면 일반적인 학교가 아니라 특수목적의 기술학교만 있으면 된다. 거기서 기업이 필요한 노동자를 양성하면 되는 것이다. 하지만, 이런 관점은 "변화"라는 것을 무시한 편협한 시각이다. 특정 기술에 대한 숙련가를 양성할 수 있을지는 몰라도 다양한 학문의 통합적 지식(통섭)이 필요로 하는 시대적 상황을 무시하는 형태가 된다. 월터 아이작슨은 "스티브 잡스"의 전기에서 스티브 잡스를 인문학과 공학기술의 교차점에 서 있는 뛰어난 천재라고 설명한다. 잡스가 단순한 숙련가였으면 모두가 놀라는 혁신적인 제품은 탄생할 수 없었다는 것을 보여준다. 기업을 위한 단순한 노동자의 양성보다는 인문학적 소양을 기본적으로 갖춘 인재의 양성이 시대적 화두인데, 신입사원들의 업무함량 미달 만을 지적하는 기업들과 경영자들의 행태는 여전히 시대적 흐름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했다는 것을 보여준다.

 

학문과 현실의 괴리에 대해서 기업이나 사회가 문제제기를 하고 있지만, 사실 당사자들이 더 많이 느끼게 마련이다. 스팩이라는 것을 쌓으면서 얼마나 열심히 달려온 배움의 길인가. 비록 스팩이라는 것이 보여주기 식으로 남발된 경향이 크긴 하지만, 그들은 기업이 요구하는 조건에 맞추어 힘들게 달려왔다. 그런 그들이 학문과 현실의 괴리에 직면했을 때 얼마나 혼란스러울까. 기업 내부의 치열한 경쟁에서 오는 압박감과 더불어 자신의 무능함을 한 번쯤은 자책하지 않을까. 이럴 때 가장 큰 도움이 되는 것은 회사에 있는 선배와 멘토들이다. 이미 같은 길을 걸어왔기에 신입사원들의 마음을 너무나 잘 아는 존재들이기에. "전략퍼즐"은 서문에서 "실제 현장에서 전략을 수립 실행하는 전도유망한 경영인들, 배움을 응용하고자 하는 경영대학원생들과 실제 경영 현장이 관심있는 일반 독자"를 위한 책이라고 설명하지만, 개인적으로 이 책은 저자가 서문에서 밝히는 이들을 위한 책이라기 보다는 멘토가 필요한 사회초년생들의 위한 책이라는 생각이 더 든다.

 

소설이 1 인칭으로 전개되다 보니, 경영학에 필요한 지식보다는 주인공의 내적 심리나 감정이 더 도드라지게 묘사되고 있다. 처음으로 직무에 들어갔을 때의 설레임을 비롯해 일을 하면서 실수를 했을 때의 당혹감이나 부끄러움이 그대로 드러난다. 저자가 목적에 둔 독자들을 위한 책이기도 하지만, 학문과 현실의 괴리에서 직면해 고민하는 사람이라면 충분히 공감하고 위로 받으며, 어느 정도 조언까지 받는 책이지 않을까. 주변의 선배나 멘토들에게 위로 받고 조언받을 수도 있지만, 자신의 내면을 그대로 볼 수 있는 이런 소설이 더 큰 공감을 얻고 더 큰 위로가 되지 않을까. 책의 이야기가 펼쳐지는 경영 컨설턴트 현장 속, 그 치열함을 헤치면서 현실에 대한 배움을 얻어 가는 과정 또한 학교에서 사회로 나온 이들에게 필요한 과정이지 않을까. 학문과 현실의 괴리에 두려워하지 마라. 이것 또한 배움의 과정이고 성숙해 가는 과정이다. 사회 초년생들에게 필요한 것은 완성된 직무 능력이 아니라 현실에 직면한 많은 문제들을 헤쳐가면서 배워나가는 열정과 그것을 견뎌내는 인내다. 이 책은 그런 것들을 주인공을 통해서 보여준다. 이 책이 경영학에 관한 책이기는 하지만, 멘토가 필요한 사회초년생들의 위한 책이라는 생각이 드는 이유다.

 

전략 퍼즐 - 6점
제이 B. 바니 & 트리시 고먼 클리포드 지음, 홍지수 옮김/부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