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명의 천재가 십만명을 먹여살린다."라는 이건희의 말은 개인적으로 제일 싫어하는 말 중에 하나다. 왕족으로 태어난 그의 태생을 그대로 보여주는 말로, 그의 계급적 사고 방식이 그대로 반영된 말이라고 생각한다. 뛰어난 왕이 있으면, 아래 백성들은 잘 먹고 잘 살 수 있다는 식이다. 그의 사고방식에는 공동체 사회라는 관념이 존재하지 않는다. 모든 것이 수직적 관계로 형성되어 있고, 계급의 하층에 있는 사람들은 먹고 살기 위해서 왕족이나 귀족을 떠 받들라는 것이다. 이런 이건희가 가지고 있는 인재론을 언론들은 받아쓰기 하듯 옮겨 적고, 거기에 왕의 뛰어난 안목과 식견을 찬양했다. 광고라는 권력으로 언론을 이미 장악한 왕의 힘 앞에서 왕의 주옥 같은 말씀을 거부할 간신들이 어디 있겠는가?
이러한 사고 방식이 이건희 혼자만의 것이라면, 사회는 좀 더 희망적이었을 것이다. 문제는 왕을 떠 받드는 간신들에 의해서 그 아래 백성들까지도 그런 사고 방식에 익숙한 것이다. 자신의 피와 땀이 어린 정당한 노동의 댓가를 받지 못함을 물론이고, 스스로가 정당한 댓가에 대해서 요구할 줄 모른다. 왕을 떠 받들기에 바빠서 자신의 입장보다 왕과 귀족들의 입장을 먼저 생각한다. 자신이 희생해서 왕과 귀족들이 기쁘다면야 기꺼이 희생을 치른다. 왕과 귀족들을 위해서라면 고환률의 고통은 상관하지 않는다. 왕과 귀족들이 수출을 잘해서 돈을 많이 벌면 자신에게도 떡고물이라도 떨어질 줄 안다.
그러한 생각은 낙수효과 또는 트리클 다운 효과라는 이름으로 불리면서, 왕과 귀족들의 착취를 정당해왔다. 언젠가 왕과 귀족들의 시혜가 내려 갈테니 조금만 참으면 된다는 것이다. 실증적으로 학문적으로 증명되지 않은 효과를 무지 몽매한 백성들은 그 말을 그대로 믿었다. 나라가 있어야 내가 잘 살 수 있다는 순진한 의식을 가진 국민은 나라를 곧 왕과 귀족으로 생각하고 그들이 잘되라고 스스로를 희생했다. 고물가와 고유가의 고통 속에서 왕과 귀족들의 환희에 찬 만찬상 위에 샴페인 잔을 보면서 눈으로만 같이 샴페인을 들었다. 왕과 귀족들의 성은이 이제 곧 내려 올 것을 믿으며...
그 사이 왕과 귀족들은 감세 정책이라는 것을 내놓았다. 감세를 통해서 민간에 남겨진 자본을 통해서 소비와 투자를 활성화 시키겠다는 것이다. 세금이 높으면 소비와 투자에 쓸 돈이 줄어 들기 때문에 경제의 역동성을 저해하지만, 반대로 세금을 낮추는 감세는 소비자나 투자자들에게 소비와 투자에 쓸 돈의 여력을 높이기 때문에 경제의 역동성을 높일 수 있다는 논리다. 그러면 경제가 살아날 것이고, 살아난 경제로 인한 풍요로움은 백성들에게 퍼져나갈 것이라는 낙수효과가 일어날 것이다. 왕과 귀족들의 이 논리에 무지한 백성들은 기꺼이 동참했다. 감세를 하면 자신의 호주머니에도 돈이 남을 것이라는 것을 믿으며.
그런데 감세로 인한 백성들의 호주머니 사정은 나아지지 않았다. 감세는 왕과 귀족들을 위한 감세로 나라의 부채가 증가하는 심각한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왕과 귀족들은 "감세=경제성장"이라는 논리로 자신들의 뱃대지만 채웠다. 공공재정학자 조엘 슬렘로드는 "감세=경제성장"이라는 견해는 역사적 현실과 아무런 연관성이 없다고 지적했지만, 어리석은 백성들은 그 사실을 잘 알지 못한다. 오히려 피터 린더트는 "실제로 복지국가는 과세를 통한 사회적 지출 방식으로 많은 이득을 얻고 있는데, 이는 대부분의 자유 시장 국가들보다도 여러 가지로 훨씬 강력한 성장 지향 정책인 것이다."라고 한다. 이는 감세와 경제성장과는 상관관계가 없음은 물론이고, 반대로 제대로 된 과세를 통한 지출이 경제성장에 기여한다는 것이다.
그런 사실과 현실을 알리 없는 백성들은 왕과 귀족들의 성은이 내려오기 만을 기다렸다. 그런데, 왕과 귀족들의 성은은 내려 오지 않았다. 그들은 입으로 아직 온기가 퍼지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변명한다. 조금만 더 참으면 조금만 더 참으면 그 온기를 반드시 느낄 것이라고, 왕과 귀족을 의심하는 국민들에게 계속해서 안심 시킨다. 그러한 거짓말이 얼마나 오래 무지한 백성들에게 통할지 알 수 없지만, 조금씩 백성들은 몸으로 불합리함을 느낀다. 자신이 일한 만큼 정당한 댓가를 받지 못하는 사회시스템에 대해서 불합리함을 느낀다. 흔히 말하는 "승자독식"의 사회가 얼마나 정글과도 같은지 본능적으로 느낀다.
그렇게 분배의 불평등에 대한 불만의 소리는 점점 커진다. 하지만, 여전히 백성들의 사고는 왕과 귀족들이 심어 놓은 관념에 의해서 그 불평등을 명확하게 설명하지 못한다. 돈이 돈을 독점하고, 독점이 돈을 독점하고, 권력이 돈을 독점하는 현실에 대해서 신고전경제학이 만들어 놓은 관념을 그대로 추종하면서 그러한 현상이 정당하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지금의 현실이나 사회 시스템에 대한 본능적 감정적 거부감을 명확하게 하지 못하다 보니, 결국 우리는 왕과 귀족들이 만들어 놓은 패러다임 속에서 저항하기는 커녕 오히려 순응하는 듯한 모습을 보인다.
책 "독식비판"은 우리가 거부하지 못했던 패러다임에 대해서 새로운 전환을 요구하는 책이다. 신고전경제학적 패러다임을 넘어서 지식경제시대의 패러다임으로 전환을 보여준다. 오래 전부터 우리는 지식경제의 시대에 살고 있지만, 지식경제의 패러다임으로 받아들이지 못했다. 기존의 경제학적 관점으로 보면 부의 창출과 분배에 대해서 개인의 능력을 중요시 했다면, 지식경제는 사회에서 만들어지고 생산되는 부는 사회에서 나온 것이지 개인에게서 나온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인류의 역사라는 긴 시간 동안 층층이 쌓여온 지식과 제도 그리고 문화 같은 것들이 만들어낸 가치라는 것이다.
이것을 설명하기 위해서 이 책은 상당히 광범위한 학자들의 연구와 철학자들의 논증을 인용한다. 유명한 워렌 버핏과 빌 게이츠의 아버지를 말을 인용하기도 하고, 1등만 기억하는 역사의 이면에 존재하는 수 많은 2등들을 조명하면서 비슷한 연구과 비슷한 시기에 시행되고 성공하는 것을 보여준다. 이것은 사회의 성숙도에 따라서 지식경제의 발전 정도가 정해진다는 것을 보여준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서 지식경제시대에 근로소득과 불로소득이 무엇인지 재정의하면서 불로소득의 재분배를 향한 개혁의 방향을 제시한다. 설명이 상당히 철학적이 학문적인 부분이 있어서 읽는데 힘겨운 면이 있기는 하지만, 기존 경제학 서적에서 쉽게 접하지 못했던 사상과 철학적 연구는 상당히 신선하고 충격적이다. 우매한 백성들이 아닌 깨어있는 시민이 되기 위한 패러다임의 전환과 지적 충만을 시켜줄 책이다.
독식 비판 - 가 알페로비츠 & 루 데일리 지음, 원용찬 옮김/민음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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