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여학생의 핀란드 유학기인 "핀란드 교육법"이라는 책을 보면, 동아시아적 교육 가치관과는 완전히 다른 대목이 나온다. 자신이 홈 스테이를 하고 있는 집 아들 중에 한 명이 유급을 하게 되는데, 그것을 두고 핀란드의 교사, 부모, 그리고 학생의 인식이나 대처법을 보면 우리의 보편적 생각으로는 쉽게 이해하기가 쉽지 않다. 우선 유급 당한 아이의 입장과 상황을 간단히 보면. 그 아이는 스포츠, 아이스 하키에는 재능이 있으나 공부에는 전혀 흥미가 없다. 뿐만 아니라 오토바이를 좋아하고 조금은 탈선도 하는 아이인데 어떤 경우에는 경찰에 잡히기도 할 정도였다.
여기까지만 보면, 그 부모들이 그 아이에게 어떤 교육방침을 가지고 해야 되는지, 우리의 가치관에 맞춰진 행동들이 머리 속에 저절로 떠오른다. 그렇게 떠오르는 방법이라는 것들을 생각해보면, 체벌이라는 폭력에 대해서 관대하게 허용하고 인식하는 우리와 같은 정서에는 강하게 체벌을 해서라도 그 아이를 바른 길로 인도해야 되고, 유급하지 않도록 과외교사를 붙여야 한다는 대한국민 부모 대다수의 보편적인 방법들일 것이다. 우리나라와 같이 부모의 책임을 강조하고 자녀를 평등한 인격체로 보지 않고, 하나의 소유물로 보는 문화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것이다.
그럼 핀란드의 부모들은 어떻게 했을까? 물론 경찰에게 잡힐 정도의 잘못에 대해서는 따끔하게 야단을 친다. 하지만, 다른 문제에 대해서는 너무 관대하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자유방임적 행동을 취한다. 핀란드의 경우 10대의 음주나 흡연에 대해서도 아주 관대한데, 교사와 학생이 같이 담배를 피기도 할 정도라면 우리네 정서로는 감당할 수 없는 문화적 충격이다. 나도 아직은 보수적인 유교문화의 영향이 많이 남아 있어서 그런지 흡연이나 음주에 대한 핀란드인들의 인식에는 강한 거부감이 든다.
유급에 대해서는 핀란드의 철학은 엘리트주의와 학벌주의로 똘똘 뭉친 우리들이 전혀 용납하기 쉽지 않은 행동을 보인다. 우리의 부모들 같으면 아이의 유급을 쉽게 용납하지 못한다. 교사를 찾아가 사정을 해서라도 진급을 시키려고 한다. 그리고 정에 약한 우리의 교사들은 학업 성적이 낮다고 쉽게 유급을 시키지 않는다. 그래서 보통 우리나라에서 유급을 당하는 아이들은 결석이 너무 많아서 출석 일수를 채우지 못한 학생일 뿐이다.
그런데 핀란드 교사들은 정확하게 성적이 모자라면 유급을 시킨다. 같은 또래에 비해서 1년이라도 늦어지면, 실패자로 생각하는 우리의 정서와는 다르게 핀란드의 교사들이나 부모들은 몇 살에 어느 학년이어야 하고, 몇 살에 대학에 진학해야 하는 것이 중요한 게 아니라 기본적인 실력을 갖춰는 것을 더 중요하게 생각한다. 오히려 실력을 갖추지 않고 위에 학년으로 진급하는 것을 더 나쁘게 생각한다. 그러다 보니, 유급 당하는 것이 나쁜 것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왜 핀란드 국민들이 교육에 대해서 이런 일반적인 정서를 가지게 된 것일까? 개인주의 문화가 발달해서 그런지 몰라도, 핀란드는 자기 책임성을 아주 강조한다. 공부를 잘하고 못하고 하는 것도 모두 자기의 책임이고, 음주와 흡연을 하는 것도 자기의 책임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래서 그러한 것들이 처벌이나 제재의 대상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우리 같은 학교에는 교칙이라는 것이 있어서 법 이외에도 학생을 마음대로 억압하는 도구들을 어른들 마음대로 만들어서 다양한 폭력과 인권의 침해를 정당화하지만, 핀란드에는 교칙이라는 것이 존재할 필요가 없게 된다.(핀란드의 학교에는 교칙이 없다고 한다.)
우리 나라에서는 교과서에 배웠던 "자유에는 책임이 따른다."는 말을 직접 체험할 수 있는 시기가 20대의 성인이라면, 핀란드의 아이들은 10대부터 철저하게 자유를 누림과 동시에 책임성에 대한 것을 직접 배운다. 여기에 하나 더 큰 차이가 있다면, 우리는 책임이라는 명목으로 폭력적인 제도를 만들어서 온갖 직접적인 제재를 가하는 반면, 핀란드의 경우는 직접적엔 제재를 최소화하고 인생의 어느 순간 또는 긴 기간 동안 한 순간의 방종으로 인한 책임을 강조한다. 즉 간접적인 책임을 더 강조하는 것이다.
어떻게 보면, 자유에 대한 책임을 가르치는데 효과가 없어 보일 정도로 너무나 방임적인 형태라고 할 수 있다. 우리의 정서로는 그것이 제대로 된 교육 철학인가라는 의문을 가질 수 밖에 없다. 그런데 핀란드란 나라가 어떤 나라인가? 아시다시피 교육 경쟁력이 세계1위인 나라요. 국가의 경쟁력도 세계 1~2위를 다투는 나라다. 비록 인구가 작아서 강대국이나 경제대국이 되지 못할 뿐이지, 최고의 선진국이다.
"왜?"라는 의문을 가지고 다시 한번 생각해보자. 기초학력을 중요시하고 거기 미달하면 철저하게 유급시켜 버리는 시스템으로 기본적인 학력에 대한 일정한 수준을 유지하는 시스템과 같은 핀란드 교육에 대한 자세한 분석한 책은 최근에 서점에 많기 때문에 자세한 이야기나 분석은 배제하고, "자기책임성"이라는 것에 대해서 생각 해보자. 방임에 가까운 "자기책임성"이라는 교육 철학이 어떤 효과를 발휘하는 것일까?
그것은 다르게 생각하면 자기 인생에 대한 책임은 자기가 지는 것이다. 즉, 스스로가 자기 인생에 대해서 많이 생각하고 고민할 기회를 제공할 수 밖에 없는 환경과 철학을 내포하고 있는 것이다. "자기책임성"을 강조하는 문화에서는 10대부터 자신의 인생에 대한 고민을 많이 하는 것이다. 대학이라는 한 가지 목표만을 위해서 아이들을 몰아 붙이는 우리와는 달리 핀란드는 10대에서부터 자기 인생과 미래의 꿈에 대해서 생각할 수 있는 환경과 교육문화를 갖추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고 핀란드의 아이들이 20대가 되어서 방황을 하지 않는 게 아니다. 방황의 방식이 우리와는 많이 다르다. 우선 대학에 무조건 입학해야 된다는 식의 사회적 분위기나 압박감이 없기 때문인지 몰라도 그들은 우선 배낭을 매고 세계 곳곳을 여행하거나 사회경험을 먼저 조금 쌓으면서 미래에 대해서 고민한다. 그런 과정을 통해서 자신의 인생에 대한 목표나 계획이 다 생기면 본격적으로 대학을 진학하거나 직업교육을 받는 식이다.
이 때, 핀란드의 부모나 사회는 우리나라의 부모들 처럼 어떻게 하면 부나 권력을 얻을 수 있는지에 대해서 인생과 미래의 꿈을 고민하라고 몰아붙이지 않는다. 핀란드 부모들의 아이들이 인생을 살면서 평생을 즐길 수 있는 일을 찾는데 많은 배려를 한다. 그래서 무조건 진급하는 것보다 유급을 해서라도 즐길 수 있는 일을 찾는 게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논어의 옹야편에 "알기만 하는 사람은 좋아하는 사람만 못하고, 좋아하는 사람은 즐기는 사람만 못하다."라는 공자 말씀이 있는데, 이 말의 영향을 가장 많이 받는다고 할 수 있는 유교문화권의 우리보다 전혀 유교문화권에 있지 않은 핀란드에서 더 이런 문화가 발전했다는 것이 아이러니하다.
그런 차이 때문인지, 핀란드의 아이들이 자기 인생에 대해서도 아주 주도적인 반면, 우리의 아이들은 성인이 되어서도 자신의 삶에 주도적이지 못하고 수동적이다. 남자의 경우 20대 초반에 군대라는 문제가 있어서 군대 가기 전까지는 인생에 대한 제대로 된 계획조차 세우지 않는 사람들도 많다. 그런데 더 큰 문제는 10대부터 인생에 대해서 고민하고 방황했어야 할 아이들이 20대가 넘어서 방황을 많이 한다. 등 떠밀리듯 적성도 생각해보지 않고, 주변에 떠밀려 들어간 과가 자신과 맞지 않아서 전과를 하거나 다시 대입을 준비하는 사람이 많은 것도 20대에 비로서 자신의 인생에 고민하고 방황하기 때문이다.
그래도 자신의 인생에 대해서 생각하고 고민하는 사람은 자신은 자기자신의 인생을 자기 것으로 만들려고 노력이라도 하는 것이지만, 더 많은 사람들은 사회에 만들어진 시스템에 순응해 버린다. 그것이 자신의 인생에 왜 필요한지에 대한 명확한 답조차 없으면서 스펙 경쟁에 열중한다. 아니면, 안정적인 것이 최고라는 믿음으로 공무원 시험에 인생을 쏟아 붙는다. 그것은 자기의 인생에 대한 것이 되지 못하고, 생존에 대한 것이 되어 버린다. 치열한 약육강식의 세상에서 어떻게든 생존하기 위한 수단으로.
그런데 그렇게 살아가는 인생은 행복하지 않다. 생존을 위한 인생을 살다 보니, 세상의 맞춰진 삶을 살게 되고, 자기의 삶과 인생이 아니라 강요된 삶을 사는 것 같다. 그래서 존재의 의미를 상실하고, 살아야 할 이유를 잃어 버리는 사람들이 많다. 결국 극단적인 선택으로 자신의 인생을 버리는 사람들이 점점 늘어나게 된다. 이것이 나이와 계층에 상관없이 우리나라의 자살률이 세계 최고인 이유 중에 하는 일 것이다. 결국, 자기 인생에 대해서 10대에서부터 진지하게 고민해 보지 않은 사람들, 그리고 20대가 되어서도 인생에 대해서 진지한 고민을 할 기회를 박탈당한 사람들은 자기 인생에 대해서 주도의식이 부족하고 더한 경우에는 책임에 대한 인식도 미약하다.
제대로 된 인격체로써 아이들이 자라 날 수 있도록 필요한 것은 자기인생에 대한 책임성을 이젠 강조할 필요가 있다. 어떻게든 아이들을 속박할지 고민할 것이 아니라, 어떻게 하면 아이들이 자유를 누리면서 책임감을 가질 수 있는지를 고민해야 한다. 스스로가 자기 인생에 대해서 고민할 수 있는 자유를 줌과 동시에, 그 아이들이 꿈을 실현하기 위해서 사회에 나올 때 그 꿈을 실현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교육시스템과 사회적 구조를 갖출 필요가 있다. 최근에 본 시사주간지를 보니 많은 학교들이 상위 10~20%의 학생들만을 위해 모든 학교의 시스템을 운영하고 있다고 한다. Mb가 만들어낸 최악의 경쟁교육시스템으로 아이들을 점점 몰아 넣고 있는 것이다. 해마다 많은 아이들이 스트레스로 인해서 죽음을 선택해도, 해마다 많은 성인들이 경쟁의 스트레스를 이기지 못해서 죽음을 선택해도 우리는 여전히 경쟁을 최고의 덕목으로 경쟁을 강요한다. 강요된 경쟁이 누군가의 인생이고 삶이 될 수 있을까? 왜 우리는 계속 아이들에게 억압을 강요하고 경쟁의 수렁으로만 몰아 넣는 것일까?
ps> 원래 중국의 신세대 작가 한한의 "연꽃도시"의 리뷰를 쓰려고 했었다. 그 책에서는 중국의 20대 무기력함과 방황 그리고 속물주의를 잘 묘사하고 있다. 그 책에 묘사된 중국 20대의 무기력함과 방황과 속물주의 등이 우리의 20대들과 별차이가 없어 보였다. 그래서 그 원인은 무엇일까?라는 생각을 하면서 리뷰를 쓰려고 했었다. 쓰려고 하는데 문득 핀란드의 교육 철학과 가치와 우리의 교육 철학과 가치에 대한 차이가 떠오르고, 그 중에서 자기책임성에 대한 명확한 차이가 생각났다. 즉 10대는 자기 인생에 대해서 고민하고 방황하는 시기임에도 불구하고 입시에만 매달린 우리의 아이들, 그리고 20대가 되어서 방황을 많이 하고 했던 우리의 아이들과 나의 기억들이 겹쳤다.(나는 지금도 여전히 방황하는 인간이지만…..) 그러다 보니 "연꽃도시"에 대한 리뷰는 완전히 삼천포로 빠져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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