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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설

경쟁과 협동 어떤 것이 발전과 혁신을 이룰까?

by 은빛연어 2009. 7. 22.
 

 이제 경쟁이라는 놈은 사회를 발전시키는데 한계를 보이기 시작한다. 경쟁 피로증이랄까? 경쟁에 대한 맹목적인 믿음으로 인해서 약육강식의 정글과도 같은 경쟁사회에서 많은 사람들은 힘들어하며 지치기 시작했다. 정신까지 메마르게 만드는 치열한 경쟁은 결국에 사람이 하나의 소중한 존재로서 사회에 적응하기를 거부하게 만들기 시작했다. 은둔형 외톨이들을 비롯해서, 과거에 비해서 급속한 증가를 보인 정신병 환자수, 그리고 스스로 목숨을 끊는 사람들 또한 급속하게 증가하고 있다. 경쟁에 대한 그런 사회적 부작용과 피해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많은 사람들은 경쟁에 대한 맹목적인 신봉과 지금까지 자신들이 걸어온 인생에 대한 경로의존성 때문에 쉽게 경쟁사회에서 탈출하거나 저항하지 못하고, 여전히 순종하고 있다. 그래서 일까? 여전히 경쟁이 사회를 발전시킨다는 맹목적인 믿음으로 경쟁이라는 단어를 신앙처럼 받든다.

 

 그런데 경쟁이 과연 사회를 그렇게 발전시켜왔던가? 최근의 경향만 보더라도 경쟁보다는 협동을 택하는 경우가 많은 같은데 말이다. 산업 쪽에서는 현대와 삼성이 자동차용 반도체의 공동개발에 합의했다는 소식이 들려왔었다.  Iter라고 불리는 핵융합 발전 프로젝트에는 유럽연합, 일본, 러시아, 중국, 한국, 인도, 미국이 참여해서 하고 있다. 엄청난 개발비와 성공여부도 불투명하기에 독자개발보다는 다국적 프로젝트로 진행되고 있다. 미국의 차세대 전투기 JSF 사업에는 7개국의 참여하고 있다. 사업 역시 막대한 개발비 때문에 다국적프로젝트로 진행 중이다.

 

 인간게놈프로젝트는 재미있다. 유전자 해독작업은 처음에 몇몇 제약회사들이 독자적으로 경쟁하면서 시작하다가 자금과 기술력이 일반기업이 감당하기 힘들었을 뿐만 아니라 성공가능성도 장담할 없어서 글로벌 프로젝트 형태로 진행되었다. 결과 예상했던 시간보다 빠르게 인간게놈지도를 완벽하게 완성하는 성과를 거두었다. 마이크로 소프트의 윈도우와 경쟁하는 리눅스의 탄생과 발전과정을 보자. 리누스 토발즈라는 명의 개발자에서 시작한 프로젝트가 얼굴조차 없는 많은 사람들이 참여하면서 혁신적인 결과물을 지속적으로 만들어 내고 있다. 이런 리눅스의 성공을 통해서 다양한 프로그램들이 이런 식으로 만들어지고 있으며, 성과물 또한 상용 소프트웨어 못지 않다.

 

 이러한 현상들은 현대 사회의 기술의 발전과 복잡성 그리고 거대한 규모 때문에 개별적 경쟁이 불가능한 환경이 형성됨으로 인해서 생긴 경우가 많다. Iter JSF 게놈프로젝트나 개별 회사나 국가가 감당할 있는 범위를 넘어서는 천문학적인 재정의 투입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성공의 가능성이라도 높으면 모르겠지만, 실패의 가능성이 높은 프로젝트들이 많다. 특히 이들 중에 iter 게놈프로젝트의 경우 인류의 진보에 혁신적인 역할을 있는 것들로 기대를 모으고 또는 모았던 프로젝트들이다. 중에 게놈프로젝트에 대해서 이야기 해보자.

 

 이미 게놈프로젝트는 성공을 해서 많은 후속연구가 진행되고 있다. 게놈프로젝트의 경우 유전자 지도에 대한 특허나 어떠한 권리를 포기한 상태다. 그러한 권리가 후속연구의 진행을 방해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인간게놈지도에 대한 이용은 누구나 자유롭게 있는 상황이다. 경쟁은 여기 후속연구에서 발생한다. 같은 정보와 자료를 가지고 있더라도 후속연구의 결과물에 대한 권리는 연구자가 가지기 때문에 기업들은 게놈지도를 이용해서 다양한 치료법과 의약품을 개발 중이다.

 

 그럼 여기서 한가지 생각해보자. 후속연구의 결과물이 혁신적인 진보일까 아니면 게놈프로젝트 자체가 혁신적인 진보일까? 혁신적인 진보라고 말할 있는 것은 게놈프로젝트라고 있다. 개별 경쟁으로 감당할 수도 언제 달성할지도 없었던 프로젝트가 협동을 통해서 순식간에 완성되었으니 말이다. 프로젝트는 유전학이라는 분야를 단계 도약시켰다.  그래서 이용할 있는 정보나 자료가 혁신적으로 변했다. 바꾸어 말하면 생명공학이라는 분야에 경쟁을 위한 새로운 경기장이 만들어진 것이다. 경기장에서 많은 학자들과 기업들이 이제 경쟁을 시작한 상황이 되었다. 그런데 그런 경쟁은 게놈프로젝트를 뛰어넘는 혁신이 되지 못한다. 프로젝트 안에서의 진보일 뿐이다.

 

 축구에 비유하면, 축구 경기장이 게놈지도이고 그런 경기장에서 경기하는 프로팀과 선수들이 게놈지도를 이용한 연구에 힘을 쓰고 있는 학자들과 기업들인 것이다. 그런데 그런 경쟁은 경기장 안에서만 일어난다. 경기장을 뛰어넘거나 벗어나지 못한다. 경쟁은 경기장이라는 한정된 공간에서만 펼쳐질 뿐이다. 그러한 경쟁이 만들어내는 결과는 경기장에 한정될 다른 분야를 새로 창출하지는 못하는 한계를 가진다. 경쟁으로 만들어진 진보라는 것은 개선이나 기량의 발전이라는 한계를 가지게 된다. 만약 축구에 관심이 없는 사람이라면, 경기장은 축구에 관심 없는 사람도 운동을 하기 위해서 이용할 있는 환경이 되지만, 거기서 일어난 경쟁으로 돌아오는 이득은 아무것도 없다.

 

 보통 우리가 말하는 경쟁은 축구와 같은 상황이 많다. 그래서 인류 역사에 혁신이라고 불리는 것들을 보면, 그런 경쟁으로 완성된 것이 거의 없다. 혁신이라고 불리는 결과물을 만든 사람들을 보면 대부분 누군가의 경쟁에서 이기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냥 일이 좋아서 그저 몰입했기 때문에 만들어진 것이 많다. 그런데도 많은 사람들은 경쟁이 사회를 발전시키고 진보시킨다고 착각하는 것이다.

 

 인류의 오랜 역사를 봐도, 인류가 경쟁했던 것은 인류 자신이 아니 였다. 인류는 척박한 자연환경과 싸우고 생존하기 위해서 부락을 형성하고 사회라는 것을 형성했다. 맹수들과의 생존경쟁을 하기 위해서 무기를 만들고, 협동을 해서 사냥을 했다. 그렇게 인류는 자연과 다른 종과 경쟁하면서 발전하고 진보한 것이다. 인류 내부의 경쟁으로 발전하게 것은 얼마 되지 않는다. 개인적으로 그것을 발전이라고 부르기에는 부족하고 개선이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언제부터 인류는 인류자체와 맹목적인 경쟁을 하기 시작한 것일까? 만물의 영장이라는 인류가 다른 종들의 우위를 점하면서부터 이상 경쟁의 상대를 외부에서 찾기 힘들어 지면서라고 생각한다. 자연이라는 것도 어느 정도 개발을 해서 인류의 의도대로 있는 정도가 됨으로써 경쟁의 상대를 상실하게 것이 원인이리라. 경쟁의 유전자가 내부에 충만한 인류는 다른 경쟁의 상대를 찾기 시작했으나 이상 외부에서 찾기는 어려웠다. 그래서 협동하던 인류는 이제 내부에서 경쟁을 강화하기 시작했다. 그래서 우리는 내부에서 치열한 경쟁 중이다. 같은 종임에도 불구하고, 치열함은 야생의 동물세계와 맞먹는다.

 

 하지만, 최근에 인류는 경쟁의 한계에 도달하게 된다. 맹목적인 경쟁이 만들어낸 미국발 금융위기를 비롯해서, 인류의 경쟁으로 마구 망쳐놓은 자연이 역습을 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런데 이런 위기에 인류가 선택한 것은 경쟁을 통한 극복이 아니다. 경쟁이 만들어낸 폐해를 경쟁으로 해결할 없다는 것을 알게 것이다. 그래서 이번 금융위기를 맞아 전세계가 협동해서 위기의 해결을 위해서 노력 중이다. 국의 통화정책을 공조하기도 하고, 부족한 자금이 있으면 서로 빌려주기도 하는 상황인 것이다. 자연의 역습에 대해서도 기후협약 같은 것을 만들어 온난화 방지에 나서기 위한 노력이 한참 진행 중이다. 부분에 대해서는 아직 완벽한 협동이 이루어지지 않고 있지만, 피해와 재난에 인류가 직면한다면 협동하는 것은 시간 문제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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