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영화를 보면서 문득 희망 전도사로 명성을 날리다 갑작스럽게 "자살"을 선택한 최윤희씨가 생각난다. 내가 워낙 강한 부정과 어둠을 포스를 가지고 있는 인간이다 보니, 언제나 긍정과 명랑 그리고 희망을 퍼트리는 최윤희씨를 개인적으로 동경했었다. 그런 동경의 대상, 절대로 "자살"만은 선택할 것 같지 않았던 사람이 자살했다는 뉴스를 접했을 때, 처음에 당혹스럽고 충격적이었다. 한 동안 머리 속으로 "왜?"라는 말만 반복하면서 그녀의 선택에 대한 이유를 생각했다. 그녀를 동경하고 존경했던 사람들 중에서 그녀의 말과 행동이 다른 것에 분노한 사람도 보였다. 긍정과 명랑 그리고 희망을 전파하고 동경의 대상이었던 사람이 전혀 반대되는 선택을 했을 때 배신감을 느끼는 것은 당연하기에.
영화 "청원"은 정확하게 말하면 자살을 다룬 영화는 아니다. 사회적 시선으로 보면 자살이라는 것도 여전히 사회적 논쟁이고 비판의 대상이지만, 더 논쟁적이라 할 수 있는 "안락사"를 다루고 있다. 자신이 태어나는 것에 대한 선택권은 없지만, 죽을 수 있는 선택권을 달라는 "청원". 영화는 죽을 권리가 개인의 정당한 권리인지에 대한 논쟁으로 관객들을 이끈다. 영화의 주인공은 한 때 잘나가던 마술사로 지금은 마술쇼 도중에 사고를 당해서 전신이 마비된 채 살아간다. 간병인의 도움 없이는 아무것도 할 수 없지만, 라디오를 통해서 세상 사람들과 소통하면서 희망을 전파하는 인기 DJ이기도 하다. 그런 그가 어느 날 자신의 둘도 없는 친구인 변호사를 불러서 법원에 안락사에 대한 "청원"을 부탁한다.
당당하게 살아가던 주인공의 갑작스러운 부탁에 변호사, 담당 의사를 비롯해 가장 가까이에서 자신을 보살펴주던 간호사까지 누구 하나 그의 선택에 반대를 한다. 그를 가장 잘 이해하는 사람들이지만, 그의 선택에 쉽게 동의하지 않는다. 하지만, 그의 친구들은 그의 선택을 찬성하지는 않지만, 그의 선택을 존중해 준다. 그래서 그가 법원에 청원하는 것을 돕는다. 하지만, 여론과 법원은 그에게 우호적이지 않다. 그래서 그는 자신이 진행하는 라디오를 통해서 청취자들의 의견을 묻기 시작한다. 전화를 건 청취자들 모두 그의 선택에 반대한다. 하지만, 그를 잘 알고 이해했던 한 사람의 전화가 안락사에 우호적이지 않던 여론을 한 순간에 뒤집어 버린다. 결국 안락사에 대한 사회적 논쟁이 크게 일어나기 시작하고, 주인공에 대한 여론이 우호적인 방향으로 흘러가기 시작한다.
영화는 주인공의 과거와 현재를 교차해 보여주면서, 주인공의 극단적인 상황을 대조적으로 보여준다. 그 과정에서 보여지는 신비스러운 마술 장면은 영화의 또 다른 재미를 더 해주기도 한다. 이러한 장면들은 과거의 화려함 뒤에 숨어 있는 현재 주인공의 상황을 더 처량하게 보여준다. 하지만, 주인공의 청원에 대해서 관객들은 쉽게 공감하게 만들 정도는 아니다. 단지 주인공이 과거의 화려한 영광을 그리워해서 극단적인 선택을 바라는 것이 아닌지 하는 의구심만 남긴다. 거기에 자신을 그렇게 만든 라이벌 마술사와 자신의 마술을 배우러 온 한 청년의 이야기가 얽히면서, 주인공의 과거에 대한 향수를 더 많이 관객들에게 전달해 준다. 그렇지만, 영화를 보면서 주인공의 극단적인 선택에 쉽게 이해할 수가 없다.
뿐만 아니라, 온갖 독설을 쉽게 쏟아내면서 농담을 즐기고 자신의 주장을 당당하게 말하는 주인공의 캐릭터는 안락사를 선택하는 그의 절망을 쉽게 드러내지 않는다. 침대에서 떨어질 뻔한 아찔한 상황이나 천장에서 떨어지는 빗방울 조차 피하지 못해서 흠뻑 젖지만, 당당함과 유머를 잃지 않고 주변 사람들을 안심 시키는 그의 모습은 죽음을 선택하려는 나약한 인간으로 비춰지지 않는다. 그래서 영화는 마지막까지 관객들로 하여금 주인공의 선택을 이해하지 못하도록 만든다. 그의 처지에 대한 안타까움만이 진하게 영화를 통해 보여줄 뿐이다.
하지만, 영화는 주인공의 재판정에서 보여준 마술쇼는 재판에 참여한 이들 뿐만 아니라, 스크린을 통해서 그 장면을 지켜보는 사람들까지 주인공의 아픔과 처지를 가슴 깊이 느낄 수 있도록 만들어 준다. 주인공의 과거 회상신에서 보여줬던 화려함이나 신비함은 없는 마술이지만, 다른 사람으로 하여금 지금 주인공이 처해있는 현실을 절절하게 느끼게 만들어주는 최고의 마술이다. 그 마술을 보는 사람들로 하여금 마음 한 켠에 그의 아픔을 진하게 새긴다. 법과 논리와 윤리만을 따지는 세상과 사회에 마술사는 자신의 청원이 이해 받기 위해서 또 다른 것이 필요함을 보여준다. 그렇게 그는 자신을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자신의 처지와 심경을 이해 시킨다.
영화 "청원"은 주인공의 처지를 이해시키기 보다는 더 당당하게 묘사했다. 그러다 보니 관객들로 하여금 그의 선택에 대해서 영화를 보는 내내 쉽게 이해할 수 없도록 만든다. 어떻게 보면 관객들의 공감을 쉽게 얻지 못하는 방식으로 영화는 전개된다. 하지만, 영화의 이 마지막 마술쇼는 이전의 모든 상황을 완전히 희석 시킬 정도로 강력하다. 그 장면은 머리를 바탕으로 객관적이고 논리적 시선으로 사람과 세상을 이해하려고 하는 우리들의 태도에 대해서 다시 생각해 볼 기회를 제공해 준다. 앞에서 이야기한 최윤희씨의 자살이라는 선택에 이유를 찾고, 배신감을 느끼기에 바빴던 모습이 바로 이 영화 속에서 주인공의 청원을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의 모습이기 때문이다. 그 만큼 우리는 타인의 처지를 공감하는 능력을 많이 상실한 것 같다. 영화 "청원"은 죽을 권리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라, 마음으로 인간을 공감하고 이해하지 못하는 우리들의 이야기다.
청원 -
산제이 릴라 반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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