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치기 소년과 늑대에 관한 우화는 너무나 잘 알려져 있다. 늑대가 나타나지 않았음에도 거짓말로 마을 사람들을 속이다가 결국에는 자신이 맡았던 양이 늑대의 습격에 죽어갈 때 아무런 도움도 받지 못하는 이야기 말이다. 이 이야기의 교훈은 "거짓말을 하지 마라." 일 것이다. 그럼 여기서 이야기를 더 연장해서 생각해보자. 비록 자신의 거짓말로 인해 늑대가 나타나서 양을 잃었지만, 그 다음의 상황에서는 마을 사람들은 어떤 행동을 했을까 하고 말이다. 그러기에 앞서 양치기 소년이 나쁜가 늑대가 나쁜가에 대한 평가가 필요하다. 이 문제는 거짓말이 나쁜가 타인의 재산에 직접적인 피해를 준 것이 나쁜가에 대한 평가다. 법적으로 따진다면 양치기의 거짓말은 신뢰에 반하는 행동일 뿐 범죄가 아니다. 반면에 늑대의 행동은 법적으로도 처벌 받을 범죄가 된다. 정상적인 사고를 가진 사람이라면 이 후의 행동에서 양치기를 탓하기 보다는 늑대의 범죄를 처단하도록 노력해야 한다. 양치기의 거짓말은 잘못이지만 늑대의 범죄가 다른 마을 사람들에게도 미칠 수 있기 때문에 다른 2차 범죄를 예방하는 행동이 필요하다. 그러기 위해서 늑대를 사냥하거나, 다음 번 늑대 출현 시 대비하는 시스템을 정비해야 한다. 이것이 정상적인 다음 이야기다.
그런데 이것이 정상적인 이야기가 아닌 사람들이 많다. 늑대가 가지는 공포에 눌려서 양치기만을 욕하고 비난할 뿐, 그 다음 행동에 대해서는 무관심하다. 지극히 개인적인 신뢰의 손상으로 더 큰 공포와 범죄에 대해서는 눈 감아 버린다. 삼성과 김용철 변호사 사건에 대한 몇 몇 사람들의 반응이 그렇다. 삼성이라는 기업이 한국 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율 때문인지 몰라도 삼성을 비난하는 소리보다 김용철 변호사를 비난하는 소리가 많다. 삼성에서 많은 돈을 받을 때는 가만히 있다가 이제야 폭로를 했다고 배신자라는 낙인을 찍어버린다. 문제는 김용철 변호사의 행동이 자신들에게 아무런 해도 끼치지도 않을 뿐 아니라 신뢰에도 손상을 주지 않았다. 단지 삼성에 대한 신뢰를 깨뜨렸을 뿐이다. 그것이 마치 자신들의 신뢰마저 깨뜨린 것 처럼 분노하는 것이다. 삼성의 입장에서 김용철은 양치기 소년이다. 서로간의 신뢰를 깨뜨린. 하지만 당사자가 아닌 사람들이 신뢰를 얘기하면서 배신자라고 치부하고 분노하는 것은 이해가 가지 않는다. 당사자가 아닌 우리는 삼성이 만들어낸 썩어빠진 관행과 경재 그리고 부패를 비난해야 하는 것이 올바른 것이 아닌가? 거대한 늑대가 이미 우리 생활에 엄청난 피해를 줬고 또 주고 있음에도 늑대의 공포에 눌려서 늑대를 비난하지 못한다. 삼성이 무너지면 경재가 무너진다는 말도 안 되는 협박과 함께.
그런 사람들의 또 다른 논리는 과거부터 온 관행이라는 이유로 별 대수롭지도 않게 말한다. 상처가 썩으면 그 상처를 도려내고 새 살이 나도록 치료를 하는 것이 상식이고, 부패와 비리가 있으면 뿌리를 뽑아서 투명하고 깨끗하게 만드는 것이 상식이다. 하부 공무원이 부패하고 비리가 있으면 죽일 듯한 비난을 보내고, 연예인들의 하찮은 사생활과 말 한마디에 죽일 듯한 비난을 보내면서도, 기업과 정치권 그리고 권력층의 부패와 비리에 대해서는 너무 관대하다. 그것도 관행이라는 이유로 말이다. 잘못된 관행으로 국가와 국민에 피해가 있으면 가장 먼저 고치고 바꿔야 하는 것이 한 나라의 구성원인 국민으로써의 의무이자 권리임에도 관행이라는 이유하나 만으로 우리는 이 권리와 의무를 내팽겨 쳐 버린다. 약자한테는 강하고 강자한테는 약한 거지근성이 전형적으로 발현하는 순간인 것이다. 뿐만 아니라 아직도 우리 내부에 뿌리깊게 박혀있는 조직의 논리라는 것. 개인보다 조직이 우선시 되는 문화 또한 문제인 것이다. 그래서 우리나라의 내부 고발자들은 적당한 평가를 받지 못하고, 사회의 냉대 속에서 혼자 외로운 투쟁을 한다. 영웅 대접을 받아야 할 그들의 행동이 신뢰를 깨뜨린 죄, 조직을 위태롭게 한 죄로 "배신자"라는 주홍글씨를 찍어 버린다.
늑대보다 양치기를 더 경멸하고 벌하는 사회. 그것이 우리 사회다. 수 많은 내부 고발자들이 냉대 받으며 홀로 외로운 법적 투쟁을 하고, 몸 담았던 직업을 떠나 재취업에도 어려움을 겪는다. 내부 고발자들은 이런 사회의 냉대가 더 힘들다고 한다. 아무리 내부 고발자를 보호하자는 외침은 이런 사회적 정서 앞에서 배신자를 보호하자는 소리로 밖에 안 들리는 것이다. 객관적이지도 않고 지극히 주관적인 가치인 신뢰가 객관적인 범죄보다 더 큰 잘못이라 생각하는 이상한 가치관의 사회 안에서 고군분투하는 김용철 변호사와 그를 돕는 시민단체들 그리고 수 많은 내부고발자들의 발걸음이 너무 힘들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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