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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를 보고

스토리와 캐릭터가 없는 식스팩은 그만. 영화 "신들의 전쟁"을 보고.

by 은빛연어 2011. 11. 30.

오랜 세월 동안 긴 생명력을 유지해온 수 많은 신화들은 그저 단순히 보존해야 될 가치나 문화에 머무르지 않는다. 물론 어떤 민족에게는 우리의 단군신화처럼 민족의 정체성이나 유래에 대한 의미를 담고 있는 학술적으로나 문화적으로 중요한 신화들도 있지만, 신화가 가지고 있는 이야기 자체의 매력으로도 그 신화는 수 세대를 뛰어 넘고, 국경을 뛰어 넘어서 사랑을 받는다. 그렇다 보니 신화를 소재로 한 영화들은 반복해서 재 생산된다. 신화의 기본적인 뼈대를 그대로 유지하면서 만든 영화도 있었고, 신화의 이야기를 현대적으로 해석해 시간과 공간을 바꿔서 만든 영화도 있었다. 그 만큼 신화가 가지고 있는 스토리의 힘은 시간과 공간을 뛰어넘어서 많은 사람들이 공감하며 재미있게 즐길 수 있는 것이다.

 

영화 "신들의 전쟁"은 대중들의 보편적인 사랑을 받는 그리스 로마 신화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작품이다. 신화의 내용은 정확히 몰라도, 제우스나 헤라 헤라클레스 같은 이름들은 누구나 한 번은 들어봤을 정도로 널리 알려진 신화이다. 이번 영화는 그리스 로마 신화의 내용을 자세히 알지 못하는 사람이면 조금은 낯선 테세우스라는 인물을 주인공으로 내세우고 있다. 기존에 널리 알려진 이야기와 인물을 영화로 만들기 보다는 조금은 덜 알려진 인물과 이야기를 통해서 반복해서 만들어진 신화에 대한 영화들과는 차별화를 꿰하는 듯한 느낌이다. 거기에 영화 "300"의 제작진이 가세해 신화의 판타지적 세계를 독특한 영상미로 보여줄 것으로 기대되는 작품이다.

 

하지만, 영화는 어느 하나 만족스러운 것이 없다. 개인적으로 영화가 가져야 할 가장 기본적인 요소로 이야기라고 생각한다. 신화를 소재로 하고 있으면 분명 이 영화도 어느 정도 매력적인 이야기를 가질 수 있는 이점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영화에서 보여주는 이야기 전개는 허술하다. 신들의 세계와 인간세계의 관계를 유기적으로 이어주지 못하고, 인물들과의 관계 또한 그렇게 깊게 보여주지 못한다. 영화 속 인물들이 전혀 살아나지 못한다. 그러다 보니 이 영화가 보여주는 것은 영화 "300"에서 보여줬던 영상 수준 밖에 없다. 아 또 하나 있다면 배는 우들의 복근 정도(?)

 

영화 "300"의 경우는 만화를 원작으로 해서 그런지 몰라도 스토리에는 힘이 있을 뿐만 아니라, 원작의 잘 짜여진 장면들을 그대로 구현해 영상미 자체는 압권인데. 이번 영화는 이야기나 캐릭터의 특성을 완전히 배제하고 단순히 "300"과 같은 영상미만을 추구한듯하다. 영상미 또한 그렇게 인상적이지 않다. 같은 패턴의 반복적 재생산은 관객들로 하여금 지루하게 느끼게 만들 뿐인데, 이 영화는 과거의 명성에만 기대는 안일함을 보여준다. 이 영화가 가장 앞에 내세울 수 있는 영상미라는 것도 신선함을 상실한 지루함 그 자체로 느껴진다.

 

 이 영화는 분명 지금 보여주는 한계를 뛰어넘을 수 있는 소재와 이야기 그리고 영상적 기술을 가지고 있었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어느 하나 장점으로 표현하지 못했다. 너무 많은 이야기를 하려다 보니 주인공과 주변 핵심인물들은 이야기 속에서 빛나지 못하고 있고, 관객들의 공감을 이끌어낼 만한 감정을 담고 있지 못하다. 영상적 기술이라는 것도 스스로가 영화 "300"의 제작진이라는 한계를 그어버려서 그런지, 관객들에게 신선함을 상실하고 식상함을 전해 준다. "300"의 제작진이라는 문구가 배급사의 마케팅 차원에서 쓰여진 경향이 크다는 것을 부인할 수는 없겠지만, "300"의 제작진이라는 이유가 영화의 홍보 문구에 들어가는 것이 부끄러운 것이 되어버린 작품인 것 같다.

 

신들의 전쟁 - 4점
타셈 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