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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를 보고

미소 뒤에 숨어 있는 폭력성이 매력적인 영화. 영화 "드라이브"를 보고.

by 은빛연어 2011. 11. 30.

 영화의 시작이 인상적이다. 비밀스러운 전화 통화를 하면서 등장하는 주인공. 그리고 곧 그 주인공은 자동차를 이끌고 어느 가게 앞에서 자동차를 주차한다. 경찰 무전기를 도청하면서 라디오를 통해서 스포츠 경기 중계를 듣고 있던 주인공은 무장 강도 두 명을 자신의 자동차에 태우고 그곳을 유유히 빠져나가기 시작한다. 하지만, 경찰에게 발각되고, 경찰을 따돌리기 위해서 경찰무전기를 도청하면서 이리 저리 도망치기 시작한다. 결국에 헬기의 추적까지 당하게 되면서, 이리저리 도주로를 확보해 보지만 쉽지 않은 듯 어느 큰 주차장 속으로 들어간다. 자동차를 주차하고 쏟아지는 수 많은 인파들 속으로 섞여 들어 유유히 그곳을 벗어나면서 영화의 인트로는 끝이나고 영화의 타이틀이 올라온다. 그렇게 영화는 긴박감과 스릴을 동시에 관객에게 전해주면서 시작한다. 영화에 대한 단단한 기대를 만들게 한다.

 

그렇게 시작한 영화는 일상적인 주인공의 모습을 비춰준다. 비밀스러운 드라이버라는 영화 초반의 설정을 유지하려는 듯, 경찰 복장을 하고 등장한다. 관객들로 하여금 그의 정체에 대한 정보를 흘리는 듯 하지만, 단순히 그가 지금은 스턴트 드라이버를 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줄 뿐이다. 그의 정체는 쉽게 드러나지 않는다. 평범한 자동차 정비공이기도 하고, 뛰어난 드라이버로 자동차 레이스에 도전할 것이라는 정도가 영화 초반에 그의 정체에 대해서 알려주는 정보다. 영화 초반의 긴장감과 스릴은 순식간에 사라진다. 그리고 등장하는 한 여인을 통해서 영화는 섬세하게 주인공과 여자의 감정을 드러낸다. 처음 우연히 마주친 아파트 엘리베이터, 슈퍼 마켓 등을 통해서 두 남녀의 끌림을 영화는 조심스럽게 표현한다.

 

무언가를 감춘듯한 주인공의 미소 띤 얼굴이, 영화 속에서 거의 변하지 않는 것처럼, 영화의 초반부를 빼고는 영화 속에서 보여지는 감정의 기복이나 변화는 거의 없다. 조금 잔인해 보이는 장면에서 조차 보여지는 그 폭력성은 냉정해서 더 잔인해 보일 정도다. 드라이버가 주인공이고, 자동차 추격신 같이 역동적인 장면들이 들어가는 영화임에도 불구하고, 영화는 차분함과 냉정함을 잃지 않는다. 변화가 거의 없는 주인공의 표정처럼. 역동적인 감정의 기복을 보여주지 못하는 이런 영화는 보통 지루함을 만들어내기도 하지만, 이 영화는 지루할 순간을 주지 않는다. 영화 초반부의 역동성과 스릴감을 기대했던 사람에게는 실망스러울지 모르지만, 주인공과 주변의 이야기를 건조하게 표현해 내는 영화의 독특한 느낌이 색다른 맛으로 다가 온다.

 

어떻게 보면 감정을 철저하게 절제하는 주인공의 특성을 영화 분위기로 표현하는 것 같다. 사랑의 감정을 느끼면서도 서로 격렬하게 그 감정을 표현하지 않고, 자신들의 처지가 가지고 있는 한계 내에서 냉정함을 유지한 채 감정이 표현된다. 그래서 자신들의 사랑을 방해는 인물이 등장했을 때도 주인공은 쉽게 체념하고 현실에 적응한다. 주인공은 그런 상황을 바꾸려 하기 보다는 오히려 다른 어려움에 처한 방해자에게 도움까지 준다. 이렇게 선의로 시작한 도움이 영화 속의 갈등을 극대화 시킨다. 갈등이 극대화 되면서 영화는 상당히 파괴적인 형태로 흘러간다. 본격적으로 영화는 잔인한 폭력성을 보여준다. 잔잔하게 흘러가던 영화의 분위기에서 강한 폭력성은 그 강도가 강하다. 비슷한 영화에서 익히 보던 정도인 것 같은데도, 더 강렬하게 다가온다.

 

주인공의 평온한 미소 뒤에 무서운 폭력성이 숨어 있는 것을 보여주는 이 영화는 인간의 이중성을 날카롭게 보여주는 것 같다. 자신의 얼굴을 세상에 드러내기 보다는 억지로 미소를 지으며 살아가는 현대인들의 모습 이면에 숨겨진 본성의 표현이랄까? 주인공의 묘한 미소가 어떻게 보면 억지로 웃는 것 같으면서도, 어떻게 보면 진실함이 같이 있는 것으로 느껴지듯. 너무 가면에 의존해서 살아가다가 결국에 자신의 얼굴이 가면을 닮아가는 것은 아닐까? 영화 "드라이브"에서 두 주인공 남녀의 감정이 어정쩡하게 표출되는 것처럼, 가면에 의존해서 살아가는 많은 현대인들은 자신의 좋은 감정 조차 쉽게 드러내지 못하는 것은 아닐까? 그래서 순간 폭발하는 감정이 잔인하고 무서운 것처럼, 현대 사회의 폭력성은 그렇게 커지는 것은 아닐까? 

 

드라이브 - 10점
니콜라스 윈딩 레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