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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를 보고

기억, 감각, 사랑 그리고 영화들.

by 은빛연어 2011. 11. 30.

 개인적으로 좀비 영화에서 무서운 것은 첫 째 끝임 없이 쏟아지는 좀비들이고, 두 번째는 좀비한테 물리면 나도 좀비가 될지도 모른다는 공포다. 하지만, 무엇보다 무서운 것은 내가 알고 있는 사람들과 사랑하는 사람들이 나를 알아보지 못하는 것이다. 내가 아닌 전혀 다른 존재가 되는 것보다 어떤 일로 인해서 내가 살고 있는 세상에서 잊혀진다는 것은 사회적 동물이라는 우리 인간이 가지고 있는 공포가 아닐까? 이루지 못한 애절한 사랑이 슬프기도 하고, 어떤 사고로 인해서 사랑하는 사람을 잃어버린 것도 큰 상처고 아픔이기도 하지만, 사랑하는 사이에서 가장 무서운 것은 사랑의 감각과 기억을 잃어버리는 것이 아닐까?

 

수애, 김래원 주연의 드라마 "천일의 약속"은 김수현 작가가 집필하는 작품이라는 것 만으로도 많은 이슈가 되고 있는 작품이다. 하지만, 이 작품이 또 다른 이슈가 되는 것은 젊은 알츠하이머 병 환자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는 것이다. 어떻게 보면 독특한 소재이지만, 실제로도 그런 환자들이 점점 늘어나고 있다 현실이 더 관심을 받는 것 같다. 하지만 영화 "내 머리속의 지우개"는 젊은 알츠하이머 병 환자에 대한 이야기를 이미 다뤘었다. 영화의 소재나 내용이 정우성과 손예진이라는 두 주연배우의 이름 값에 묻혀버린 감이 있지만, 이 영화는 사랑하는 잃어가는 아픔과 상실감을 매력적인 영상에 그리고 있는 작품이다.


내 머리 속의 지우개 - 8점
 

영화는 건망증이 심한 수진이 어느 날 편의점에서 콜라와 지갑을 두고 온다. 이를 알게 된 수진은 편의점으로 다시 들어가면서 부랑자 같은 남자와 맞딱린다. 그의 손에 들린 콜라가 자신의 것이라고 생각하고, 콜라를 빼앗아 마셔버리고 앞에서 보란 듯이 크림까지 한다. 버스 정류장에서 버스를 타려다 다시 지갑을 챙겨오지 않은 것을 알게 된 수진은 편의점으로 간다. 직원이 내놓은 콜라와 지갑에 자신의 실수를 깨닫는다. 다시 그 남자를 찾아보지만 이미 그는 사라지고 없다. 어느 날 포장마차에서 우연히 마주친 수진과 그 남자는 운명처럼 사랑에 빠지고 결혼을 하게 된다. 하지만 행복한 시간은 잠시 점점 건망증이 심해진 수진은 병원을 찾게 되고, 결국 알츠하이머라는 진단을 받게 된다. 소멸해가는 기억을 조금이라도 붙잡아 서로의 사랑을 지키려는 두 남녀의 애절한 사랑 이야기가 뛰어난 영상미와 함께 인상적으로 보여지는 영화다.

 

이터널 선샤인 - 10점
미셸 공드리


영화
"내 머리 속의 지우개"가 병으로 인해서 기억을 잃어버리고 사랑하는 사람을 기억하지 못하는 것이라면, 영화 "이터널 션사인"은 사랑했던 기억을 스스로 지우려는 사람의 모습을 보여준다. 조엘과 클레멘타인은 성격차이로 인해서 말다툼을 한다. 클레멘타인이 자신에 대한 기억을 지워버린 것을 알게된 조엘은 자신도 기억을 지워주는 곳을 찾아가 클레멘타인과의 기억을 지우기로 하는데. 조엘은 무의식적으로 그 사라져 가는 기억들을 지키기 위해서 몸부림친다. 자신 안에 있던 사랑의 감정이 사라져가는 사랑의 기억을 지키려는 것이다. 영화는 무의식의 기억 세계를 매력적으로 보여주면서 사랑과 기억이라는 것의 가치를 다시 생각하게 만든다.

 

영화 "이터널 션사인"은 매우 독특한 설정과 영상과 연출이 어우러진 작품이다. 영화의 이야기도 어떻게 보면 조각 조각들로 구성되어 있고, 그 조각들을 하나로 묶어서 매력적인 이야기를 만들어낸다. 영화를 보는 관객들로 하여금 퍼즐을 완성해 가는 듯한 느낌이 들게 만들고, 영화가 끝나갈 쯤에는 완성된 퍼즐에 성취감을 느끼는 묘한 성취감을 느끼게 만들기도 한다.

 

퍼펙트 센스 - 8점
데이빗 맥킨지


앞의 두 영화와는 기억과 사랑의 관계를 그리고 있는 작품이라면 영화
"퍼펙트 센스"는 사랑하는 기억을 만들어내는 가장 원초적인 감각을 주제로 다루고 있다. 이상 현상을 연구하는 과학자 수잔은 사랑의 상처 때문에 더 이상 사랑을 믿지 않는다. 그런 그녀 앞에 나타난 요리사 마이클로 인해서 수잔은 다시금 사랑을 믿게 되고, 두 사람은 운명 같은 사랑에 빠진다. 하지만, 원인 모를 정체불명의 바이러스로 등장해 사람들의 감각을 마비시켜 버린다. 세상은 혼란에 빠지게 되고, 수잔과 마이클도 이 바이러스에 감염되고 만다.

 

영화는 이상 바이러스로 인해서 다른 감각은 상실해도 사랑이라는 감각은 바이러스를 뛰어넘는 힘을 가지고 있음을 보여준다. 그런데 사랑이라는 것이 하나의 감각일까 하는 의문이 든다. 눈으로 첫눈에 반하고, 손과 손을 맞잡았을 때 전해지는 사랑의 촉감, 귀로 들려오는 사랑스러운 목소리 이 모든 것이 합쳐져서 사랑의 감각이라는 것이 완성되는 것은 아닐까? 영화가 사랑이라는 것을 너무 강조하려다 사랑을 하나의 감각인 것처럼 묘사한 실수를 범했다는 생각이 든다. 그 만큼 사랑이라는 것은 쉽게 말이나 글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복잡한 것이니까. 기억을 잃든 감각을 잃든 하나의 완성된 사랑을 만들어가는데 커다란 상실이고 두려움이고, 그런 두려움을 뛰어 넘는 것 또한 사랑이라는 것을 이들 영화들이 보여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