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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고

귀 기울이고, 이해하려는 크지만 작은 발걸음. 책 "가난한 사람이 더 합리적이다."를 읽고.

by 은빛연어 2012. 9. 5.

이기적인 인간들은 자신의 이익을 추구한다. 그래서 어떤 선택의 순간이 오면, 다른 어떤 조건들보다 먼저 자신의 이익을 추구하는 방향을 선택을 하게 된다고 한다. 그렇게 이익을 추구하는 인간이 서로의 이익에 부합하는 어떤 사항이 있으면 서로의 이익을 위해서 거래라는 것을 하게 된다. 그런 거래가 많이 이루어지는 장소를 우리는 시장이라고 한다. 이 과정에서 인간은 자신의 이익을 추구하기 위해서 가장 합리적인 결정을 한다고 한다. 이기적인 인간들의 이익 추구, 흔히 이것이 인간 사회의 경제가 돌아가는 원리라고 들 말한다. 이기적이면서도 합리적인 인간이라는 정의는 시장경제 사회에 살고 있는 우리들은 이런 식의 사고 관념을 가지고 어떤 이해관계와 경제적 문제를 바라보는 잣대가 된다.

 

그런데 사회가 돌아가는 현상을 살펴보면 결코 인간의 수 많은 행위들이 이기적이면서도 합리적인 인간의 행위라고 보여지지 않는 경우가 많다. 이러한 현상을 쉽게 관찰할 수 있는 곳이 정치라는 영역이다. 시민들이 행하는 이상적인 정치적 행위는 이념의 문제가 아니라 기본적으로 자신의 이익에 부합하는 쪽으로 정치적 행위를 하는 것이다. 이기적인 인간의 합리적인 선택이라는 관점으로 봤을 때 서민들은 진보정당을 지지하고, 지켜할 재산이 많은 계층은 보수 정당을 지지할 것으로 추론할 수 있다. 하지만, 현실의 세계 선거가 치러지는 결과를 보면 서민들은 자신의 이익을 포기하고 역선택을 한다. 뿐만 아니라 복지 정책에 대한 찬반 대립할 때 그들은 자신의 이득을 포기하고 기득권의 논리를 지지한다.

 

이런 이율 배반적인 행위를 하는 인간의 행위를 이해하기 위해서 많은 분석들이 난무한다. 극단적인 사람은 '국개론'이라는 것을 앞세워 이런 현상을 단순하게 설명하려 한다. 아니 그것이 아니고는 특정 계급의 이율배반적인 행위를 설명할 수 가 없어서 그런지도 모르겠다. 인간은 이기적이고, 그래서 인간은 자신의 이익을 추구하려 한다는 가장 단순한 경제 논리로는 전혀 설명 할 수도 이해할 수도 없으니 그런 것이 아닐까? 그런데 어떤 현상을 분석하는 보편적인 방법이나 이론이라는 것이 과연 얼마나 정확한지 우리는 의심한 적이 없다. 다수가 인정하는 보편적인 이론과 방법, 그리고 그런 방법과 이론이 일반 대중들에게 교육이라는 명목으로 그것이 당연하게 받아들인다.

 

각 지역의 고유 언어 흔히 말하는 사투리를 무시하고 "교양 있는 사람들이 두루 쓰는 현대 서울말"이라는 식으로 표준어를 강제한 것처럼, 경제학에서 말하는 보편적인 인간과 이익이라는 것은 특정 계층, 즉 중산층 이상의 논리를 강제한 것이 아닐까? 그래서 특정 계급의 이율배반적인 행위에 대해서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던 것은 아닐까? 뿐만 아니라, "경제학 분야에서도 '빈곤의 경제학'은 경제학의 빈곤 현상을 보이고 있다. 많은 경제학자가 가진 것이 적다는 이유로 가난한 사람들의 경제적 현실에 흥미를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라는 저자의 말처럼, 제대로 그들을 이해하려는 우리의 노력조차 너무나 부족했던 것은 아닐까? 결국 이율배반적 행위에 대한 "국개론" 같은 극단적인 분석은 공감의 빈곤, 관심의 빈곤으로 만들어진 그들에 대한 몰 이해를 바탕으로 하고 있는 것이다.

 

노숙자에 대한 우리 사회의 차가운 시선은 몰 이해에 대한 대표적인 형태가 아닐까? 박원순 서울 시장이 노숙자를 위한 온돌방이나 스마트폰 보급 정책 같은 것에 대한 반발 같은 것들이 대표적인 것들이다. 그들이 왜 그런 생활을 하는지 어떻게 하면 그들을 정상적인 생활로 돌려놓을 수 있는지에 대한 고민보다는 도덕적 해이를 거론하면서 무조건 적인 퍼주기로 규정한다. 하지만, 노숙자들에게 어떤 계기만 있으면 다른 누구보다도 열심히 삶을 살아간다는 사실을 그들은 무시한다. "빅 이슈"는 바로 노숙자에 대한 시선과 정책이 어때야 하는 지를 보여주는 좋은 사례다. 노숙자들도 충분히 어떤 계기와 여건이 마련 된다면 자활이 가능하다.

 

그럼에도 우리는 이런 문제의 접근함에 있어서 그 책임 소재를 이미 문제의 당사자, 즉 개인에게 모든 것을 돌려놓고 시작한다. 노숙을 할 수 밖에 없는 그 사람의 주변 환경을 비롯해 제도적 문제들을 전혀 보지 않는다. 단순히 너의 책임이고 너의 잘못이다고 말할 뿐이다. 돈이 돈을 벌고, 부모의 재력이 학생의 성적을 좌우하고, 더 이상 개천에서 용이 날 수 없는 사회적 문제를 제대로 직시하지 못한다. 개인의 책임 소재를 넘어서 사회적 책임 소재를 의도적으로 무시하는 것인지 아니면 제대로 보지 못하는 것인 정확히는 모르겠다. 자신이 누리고 있는 경제적 풍요가 자신의 능력이 아니라 사회와 제도가 만들어낸 것이라는 사실을 인식 못하는 것과 같은 것이 아닐까?

 

이런 인식의 한계는 결국 현상에 대한 정확한 인식을 방해할 뿐만 아니라 올바른 해결책에 대한 접근을 방해한다. 가난한 사람들의 빈곤을 해결하고 삶의 질을 향상시키는 문제에 대해서 단순하게 "가는 구제는 나랏님도 못한다."는 식으로 접근해 버린다. 이 속담이 만들어진 시대와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적 환경 변화는 무시하고, 단순하게 지원을 받는 사람의 도덕적 해이에 대해서만 접근하게 된다. 결국 문제의 해결을 위한 실질적인 정책의 실행보다는 소모적인 논쟁만 난무하는 경우가 많다. 뿐만 아니라 그 소모적 논쟁의 중심에 있는 핵심 이해당사자는 빠진 채, 주변인들이 나서서 그들의 논리로 논쟁한다.

 

이 책은 주변인들의 논리를 거부하고 이해당사자 그들의 입장과 논리로 경제적 문제에 접근한다. 흔히 말하는 보편적 기준으로 이해할 수 없었던 그들의 경제적 행위와 선택에 대해서 진정한 이해와 공감의 길로 안내한다. 그 동안 빈곤했던 빈곤의 경제학의 힘찬 첫 걸음이라고 해야 할까? 가난한 사람들이 그들의 환경과 처지에서 선택할 수 밖에 없었던 경제적 선택과 논리에 대해서 섬세하게 접근하고 있다. 그래서 힘있는 다수가 장악했던 이론과 논리에 의해 만들어진 편견을 조금씩 깨뜨리면서 그들에 대한 이해의 폭을 넓혀준다. 이런 접근은 책의 마지막 부분에 "가난한 사람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고 그들의 선택 논리를 이해하려 노력해야 한다."라는 저자의 주장을 몸소 보여주는 것 같다.

 


가난한 사람이 더 합리적이다

저자
아비지트 배너지 지음
출판사
생각연구소 | 2012-05-15 출간
카테고리
경제/경영
책소개
가난한 사람들의 현실, 생각, 행동을 이해하지 못한다면 빈곤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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