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식들이 어떤 사람이 되기를 원해서 인지 몰라도, 어릴 때 집에는 위인전 전집이 있었다. 꼭 그런 책을 읽는다고 책 속의 위인들 처럼 된다는 보장은 없지만, 그 당시 그 책들이 주었던 감동은 아직도 기억에 생생하다. 어릴 때 누군가 나에게 장래 꿈이 뭐냐는 물음에 꼭 위인전 속의 한 인물이 롤모델로 포함되어 대답했던 기억이 있다. 하지만, 나이가 들면서 그런 위인전이 각색되어 얼마나 그 사람을 미화하고 있는지 알게 되고, 이제는 자서전이나 위인전이니 하는 것들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위인이라도 불리는 많은 인물들이 절대적 선이나 도덕성을 가진 위인이 아니라 약점 많은 인간이라는 것을 알기에.
업적은 과대평가되고, 그들의 잘못을 과소평가되는 이런 인식의 왜곡은 진실을 추구하려는 인간의 열정을 비이성적으로 마비 시킨다. 어떤 사람의 좋은 점만 본받아서 그런 사람이 되면 좋지 않느냐는 단순한 생각들이 우리의 양심을 마비 시킨다. 그래서인지 몰라도, 우리는 양심이 시키는 일을 하기 보다는 무엇이 되기 위한 일을 한다. 때론 양심의 가치에 어긋나는 일을 하면서도 이런 결과를 이루기 위해서는 어쩔수 없는 것이라고 당당하게 말하기 까지 한다. 그들은 무엇이 되기 위해서 살아 왔기에... 어떤 일을 어떻게 했냐 보다는 어떤 일을 해서라도 무엇이 되는 것이 더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이다.
그런 사람들이 당당하게 이 사회에서 살아갈 수 있는 이유는 우리가 이제껏 우리의 삶을 "무엇이 도기 위해서" 살아 왔기 때문이지 않을까? 큰 일을 하기 위해서는 어떤 잘못도 당연히 할 수 있다는 비천한 생각들이 도덕 불감증의 우리 사회를 만들어 왔던 것은 아닐까? 그래서 인지 김용이 던지는 "나는 무엇이 되는 것에 관심을 두지 않았습니다. 무엇을 해야 하느냐를 늘 생각했죠."라는 이 한마디는 묵직하게 마음에 다가온다. 삶의 목적을 무언가 되기 위해서라고 생각했던 습관적 생각에 커다란 울림으로 다가온다. 무언가 되기 위해서 살아왔지만, 바랬던 무언가가 되지 못했던 삶을 비롯해, 그 무언가가 되었을 때의 삶의 무의함과 허탈함은 바로 삶에 대한 욕망이 만들어낸 대가가 아닐까?
삶은 무엇이 되기 위해서 사는 것이 아니라 무엇을 하기 위해서 사는 것이다. 이 두 삶의 차이는 무엇일까? 무엇이 되기 위한 것이 지극히 개인중심적이라면, 무엇을 하기 위한 것은 타자중심적인 시선이 아닐까? 그래서인지 김용이 강조하는 공감에 대한 설명은 우리가 공감에 대해서 가지는 개인중심적인 관점을 또 다시 깨뜨린다. 김용은 "공감이란 단지 어떤 감정을 갖는 것이 아니라, 예컨대 어떤 가난한 사람을 보고 마음이 아프다든가, 그건 시작에 불과합니다. 진정한 공감이란 사람들이 왜 상황에 처해 그런 일을 하고 있는지를 이해하는 걸 말합니다. 그들의 동기와 성취목적, 행동 등을 이해하는 겁니다."라고 말한다.
그의 삶을 모르고 단순히 그가 채워왔던 간판들, who 에이즈 국장, 다트머스대학교 총장 그리고 세계은행 총재라는 것들만 보면 그가 출세 지향적인 인물인 것 같은 인상이 든다. 하지만, 그가 이제껏 살아왔던 삶과 행동들에 담긴 진심이 결코 위선이나 거짓이 아님을. 무엇이 되고자 하기 위해서 살아왔던 사람들이 위선과 거짓으로 내세우는 공감과는 다른 타인을 생각하고 배려하는 그의 진심이 보여진다. 공감에 대한 그 말은 그의 삶의 행적과 함께 그의 행동과 말에 진심이 느껴지게 만든다. 단순히 뭐가 되기 위해서 살지 않고, 무언가를 하기 위해서 살아왔던 그 삶의 진정성이.
앞으로 그가 세계은행 총재로써 어떤 행로를 보여줄지 아직까지는 알 수 없다. 그런데 세계은행 총재가 되었다는 것 만으로 많은 사람들이 그의 행로나 업적들을 평가하는 이런 책들이 나오는 상황이 조금은 우스워 보인다. 이 책도 그냥 인터뷰에서만 그쳤으면 김용이라는 인물에 대해서 보다 더 객관적으로 접근 할 수 있는 좋은 책이었을지 모른다. 하지만, 저자는 여기에 자신의 의견을 너무 덧붙인다.
특히 김용 어머니의 철학이 김용에게 어떤 영향을 줬는지 분석하는 부분은 너무 작위적인 동시에 뜬금없다. 한 사람이 완성되어 가는 과정이 단순히 한 사람만의 영향이거나 아니면 그 사람의 영향력이 절대적일 수 있을까? 그건 결과를 보고 무작정 원인을 찾으려는 너무 단순한 시도다. 이것은 단순히 저자의 무의식 속에 남아 있는 "무엇이 되기 위해 살아"가는 우리 사회의 분위기가 그대로 투영되는 것 같다. 그래서 이 책도 김용이 세계은행 총재가 되는 순간에 나온 것이 아닐까?
저자나 우리 사회는 김용의 삶은 앞으로도 더 지속되는데, 우리는 그가 세계은행 총제가 된 것으로 그의 삶을 평가하려 하는 것 자체가 그의 삶에 대한 철학과 정면으로 배치되는 것이다. 앞으로 그가 더 보여줄 것이 많고, 아직 그의 삶과 경력은 계속 진행 중이다. 이 책은 그의 삶의 궤적이 아니라 그의 삶의 철학을 엿볼 수 있는 책이다. 그의 철학을 바탕으로 무엇이 되어 있는 그의 삶이 아니라 무엇 일을 하는 그에 대해서 우리는 좀 더 따뜻한 시선으로 응원하며 지켜봐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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