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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를 보고

스스로 분노를 조절하지 못하는 현대인을 위한 광시곡. 영화 "테츠오 - 총알사나이"를 보고

by 은빛연어 2009. 10. 13.
 

 감독이면서도 배우로도 활발하게 활동하는 츠카모토 신야를 본격적으로 알게 것은 부산국제영화제에서 보게 "쌍생아"라는 영화 덕분이다. 지금은 정확히 기억나지는 않지만, 강렬한 영상과 짜임새 있는 스토리는 츠카모토 신야라는 이름을 기억 속에 각인 시켰다. 그런 충격과 기대감 때문에 그의 다음 영화에 대한 기대는 점점 커졌었고, 시간이 지나서 영화 "6월의 "이라는 작품이 부산국제영화제에 상영된다고 했을 때에도 영화제를 찾게 되었다. 하지만, 영화는 "쌍생아" 만큼의 충격이나 재미는 주지 못했다. 남는 느낌이라는 것은 실망이었다.

 

 츠카모토 신야가 출연 영화 "이치 킬러"에서 그가 맡은 배역 약간 변태스러운 할범처럼, 영화 "6월의 " 영화 츠카모토 신야의 모습과 이미지는 변태 아저씨로 각인되어 버렸다. 이후에 "악몽탐정"이라는 작품이 국내에 소개되어도 이제는 기대감으로 그를 접하지 않게 되어 버렸다. 내가 올해 14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영화 "테츠오 - 총알 사나이" 선택하게 것은 츠카모토 신야 감독에 대한 기대감과 애정이라기보다, 영화의 시놉시스 때문이었다. 시놉시스를 먼저보고, 나중에야 감독이 누구인지를 알게 되었다. 마음에 드는 시놉시스와 영화 "쌍생아"에서 가지게 되었던 호감과 기대감이 결합하면서 "테츠오 - 총알 사나이" 이번 영화제에서 내가 봐야 영화가 되었다.

 

 어두운 영상과 핸드헬드 카메라로 찍은 듯한 마구 흔들리는 영상은 영화감상하는데 조금은 방해되는 했지만, 전체적으로 영화는 "쌍생아"에서 봤던 츠카모토 신야 감독의 실력을 다시 보는 했다. 명확한 주제의식은 물론이고, 실험적인 영상이라고 해야 할까? 영상의 괴기스러움 그리고 보너스로 츠가모토 신야의 변태 할범 연기까지. 찬찬히 뜯어보면 유치한 장면도 있고, 어설픈 특수효과도 눈에 띄기는 하지만, 그런 모든 것을 극복하고, 영화가 가진 가치를 높여준다.

 

 그럼 "테츠오" 무엇일까? 츠카모토 신야는 분노를 스스로 조절하지 못하는 현대인을 테츠오로 설정한다. 점점 늘어나고 있는, 이성으로 설명하기 힘든 묻지마 범죄의 증가와 분노를 억제하지 못하는 다양한 범죄들의 증가를 통해서 현대를 살고 있는 우리들이 직면하는 공포를 보여준다. 지금까지는 다른 누군가에 의해서 공포를 느끼고 있지만, 언젠가는 공포의 대상이 언젠가는 분노를 조절하지 못하는 자신이 수도 있음을 영화를 통해 보여준다. 특히 츠카모토 신야는 인간이 분노로 변해가는 모습을 괴기스럽게 보여주는데, 분노를 조절하지 못하는 인간은 괴기스러운 뿐만 아니라, 재앙까지 있고 생각하는 같다. 주인공의 분노를 지속적으로 자극해서 테츠오의 완성형으로 이끌려는 악한의 최종 목표가 무엇인지도 보여준다.

 

 원래 테츠오란 존재는 무기를 목적으로 만들어진 복제인간이다. 보편적인 인간이 보이는 분노에 대한 반응과는 완전히 다른 것이다. 그렇게 본다면 분노를 스스로 조절하지 못하는 현대인들을 일반화 하기에는 무리라고 생각되어 진다. 하지만, 신야 감독은 보편성을 확보하기 위해서 주인공의 부인이라는 평범한 인간이라는 존재를 통해서 보편성을 확보한다. 주인공의 분노를 부추기는 존재로 영화 속에 그려진다.

 

 사회적 동물이라는 인간의 관점에서 본다면,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에서 충분히 일어날 있는 일들을 설정한 것이다. 관계와 관계를 통해서 분노는 확산되어 수도 있고, 분노는 증폭되어 있다는 것이다. 이렇게 보면, 해프닝으로 끝난 미녀들의 수다에 나오는 베라의 한국폄화 문제도 별것 아닌 같은 일을 가지고 누군가가 조금만 분노를 부추기면 분노의 증폭은 엄청날 있음을 보여준다. 분노를 조절하지 못하는 현대인들의 모습이라는 것은 언제 터질지 모르는 시한폭탄과도 같은 것이다.

 

 신야 감독은 분노를 조절하지 못하는 인간의 모습을 극단적으로 테츠오라는 존재로 그렸지만, 실제로는 주인공의 부인과 같은 존재도 있고, 주인공의 극한의 상황으로 몰아넣는 악당의 모습으로 다양하게 존재함을 영화에서 보여준다. 그래서 중요한 것은 스스로 분노를 조절하는 능력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결론은 너무나 당연하지만, 점점 삭막해져 가는 현대인들의 생활 속에서 분노를 조절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더욱 늘어나고 있는 현실을 쉽게 바꿀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