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독서 중 문득

교칙이란게 없는 나라.

by 은빛연어 2009. 7. 18.
 

 교육의 모범국가로 꼽히는 핀란드에는 학교에 교칙이 없다고 한다. 이것을 알았을 놀랐다. 교칙이라는 것이 없다는 것에 놀란 것이 아니라, "교칙 없이 학생들을 어떻게 관리하지?"라는 물음이 머리를 스쳐지나 가기에 놀랐다. 안의 권위 의식이랄까? 학생을 하나의 인격체로써 나와 같은 평등한 존재로 것이 아니라, 성인 아래에 있는 미숙한 인격체로 생각하고 있는 자신에 대해서 놀랐다. 웬만해선 학생들의 편에서 서서 그들을 이해하려고 노력했고 그들을 응원한다고 생각했는데, 학생을 관리의 대상 감시의 대상 규제의 대상으로 인식하고 있는 나의 내적 인식에 대해서 놀랐다. 변명이라면 성인이 되기 이전에 받아온 세뇌교육과의 대결에서 나는 아직 우위를 점하지 못하고 있나 보다. 우리 사회의 가장 비열한 모습이 약자에게 강하고 강자에게 비굴한 모습이 아니던가. 개인적으로 그런 모습 아주 경멸하는데, 안의 그런 모습이 남아 있음에 아직 내공이 부족함을 느낀다.

 

 내가 생각하는 우리 사회의 가장 약자는 비정규직이나 기초생활수급자들이 아니라 미성년 학생들이라고 본다. 많은 학생들은 부모의 보호아래 있어서 냉혹한 약육강식의 사회로 보호받고 있기는 하지만, 보호라는 미명하에 가해지는 폭력으로부터 그들은 보호 받고 있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들은 자신의 신체에 대한 어떤 자유로운 결정권이 없다. 근거도 없이 머리가 길면 학습에 방해된다 거짓말, 그리고 머리길이에 따라 행해지는 폭력은 마치 당연한 것으로 여겨진다. 그리고 거기에 이의를 제기하는 소수의 사람들에게는 다시 비난이나 비판이 가해진다. 인간으로 태어나서 자신의 신체에 대한 결정권을 자신이 가지겠다는 주장에 어떤 비난이나 비판을 가할 있단 말인가? 미성년자라고 그런 선택권을 박탈한 근거는 어디에 있단 말인가? 단지 자신의 마음에 들지 않은 외모 형태 그게 싫으면 그만이지 자유를 박탈해서 억압할 권리는 아무에게도 없다. 거기에 신발에 대한 규제, 심지어 어떤 곳은 가방에 대한 규제를 하고 있다. 웃기는 것은 이런 규제를 찬성하는 인간들은 특성고교나 특성화 중학교를 만들어서 학생의 선택권이 필요하다고 주장하는 인간들이라는 거다.

 

 학생의 신체에 대한 자기결정권과 자유를 박탈하는 인간들이 뜬금없는 학교 선택권인가? 말이 좋아 학교 선택권이지 결론은 자신들의 자녀나 자기들이 보다 좋은 계급의 위층을 차지하기 위한 특권을 달라는 것이 아닌가? 가장 기본적인 개인의 신체에 대한 자기결정권과 자유를 박탈하면서 아래 학교 선택의 자유를 달라. 지나가던 개가 웃을 일이다. 말이 좋아 학교 선택의 자유권이지 그게 무슨 자유인가? 학벌사회라는 썩어빠진 계층구도를 강화하고, 자신들은 구도 속에 편입되어 특권을 누리겠다는 기득권적 시각을 가지고 말이다. 약아빠진 기성세대들은 신세대들의 반란을 차단하기 위한 목적으로 썩어빠진 계층구도에 학생들을 종속시키기 위해 미리부터 그런 계층에 대한 인식을 학생에 편입시키고, 학생들은 자라면서 지켜봐 더러운 세상의 생존전략을 몸으로 체화 시킴과 동시에 순응하면서 만들어낸 합작품이 지금의 학벌사회고 우리의 경쟁사회가 아니던가?

 

 연세대에서 노무현 대통령 추모 공연이 계획되었을 , 반대하던 재학생의 논리를 보면 이런 전략이 얼마나 먹히는지를 있었다. 자신의 이익에 따라 자신의 생각과 주장을 말하는 것에 대해서 그렇게 뭐라 생각은 없지만, 자신의 입신양면을 위해서 고시공부를 하는 것을 "희생"이라고 말하는 천박한 인식은 아연실색하게 만든다. "희생"이라는 단어를 이렇게 천박하게 쓰는 인간이 소위 말하는 명문대 생이라니. 우리 사회에서 그렇게 떠들어 대는 "인재(人材)"라는 것이 이런 것이라니. 학생들의 기본적인 자유권을 철저하게 탄압하면서, 학창시절에 해야 자신과 사회에 대한 고민, 그리고 관계에 대한 고민들을 완전히 배제해버림으로써, 우리의 교육은 인재(人材) 치운 것이 아니라 인재(人災, disaster) 키워 왔다. 스폰서 검사 천성관이라는 인간이나 투기꾼이자 탈세꾼인 백용호라는 인간이나, 위에 2mb라는 인간이나 그들의 행태나 비리, 그리고 하는 짓거리를 보면 그들이 인재(人災, disaster)라는 것에 반론을 제기할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그런 많은 애들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여전히 인재(人災, disaster) 생산에 몰두하고 있다. 시험의 나락으로 학생들을 몰아넣으며, 기성세대에 저항하는 학생들에 대해서 사랑의 매라는 폭력으로 폭력을 정화까지 한다. 그리고 낙오자에 대해서는 무자비한 멸시와 차별을 가하면서, 우리 내부에서 폭력에 대한 익숙함과 차별에 대한 정당성을 스스로 만들어 낸다. 경쟁의 내면화로 인해서 많은 청소년들은 자살하는 인재(人災, disaster) 만들어 낸다. 뿐인가 많은 성인들이 현실을 도피하기 위해서 자살하는 인재(人災, disaster) 만들어내고 있다. 그럴까? 딴지일보 총수 김어준은 "우리 공교육은 자신이 어떤 사람이며 재능은 뭐고 스스로 무엇을 원하는지 곰곰이 사유하고 각성할 기회를 주지 않는다. 공교육이 그거하란 건데. 하여 서른 넘어서도 자신이 누군지, 원하는 뭔지 모르는 사람, 수두룩하다."라고 했다. 결국에 지금의 교육시스템은 사람의 인격체를 만들어내는데 실패한 것이다.

 

 결국, 경쟁이 최선이라는 교육철학, "1명이 10만명을 먹여살린다"라는 인재에 대한 썩어빠진 인식으로 만들어진 지금의 시스템은 지속적인 인재(人災, disaster) 생산할 밖에 없는 것이다. 반면, 핀란드는 "세계화가 진행됨에 따라 소국은 점점 심한 경쟁에 노출될 수밖에 없습니다. 국제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국민 전체의 수준을 끌어올리는 것이 중요합니다."라는 교육철학과 인재에 대한 철학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그들은 명의 낙오자가 없는 평등교육을 실천하면서 아이들의 방황이나 실수에 대해서 관대하다. 당연히 때는 그렇게 방황하고 실수를 해야 나중에 자신의 인생을 행복하게 살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들은 학교에 교칙이라는 것이 없다. 알프레드 아들러는 "오직 자유만이 위대한 사람을 낳을 있다. 이와 달리 강요는 죽음과 파멸을 낳는다."라고 했다. 이제 학생에게 자유를 주자. 방황할 자유, 자신의 신체에 대한 자기 결정의 자유, 실수할 자유를.

 

 

책 "핀란드 교육법"을 읽다가........

'독서 중 문득' 카테고리의 다른 글

"사직의 쥐새끼"와 "맹구"  (0) 2009.08.24
이걸 읽으면 몇몇 인간들이 생각난다.  (0) 2009.07.18
권위나 권위주의나  (0) 2009.07.08
기도와 자기암시  (0) 2009.07.04
애국과 국가 그리고 국민.  (0) 2009.07.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