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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고

인터넷 세상의 사회규범에 대한 고민. 책 "인터넷 세상과 평판의 미래"을 읽고

by 은빛연어 2008. 12. 2.

 

  인터넷에서 공공의 적이 되었던 개똥녀는 어떻게 지내고 있을까? 다니던 대학까지 자퇴할 정도였으니……. 공공장소에서 지켜야 에티켓을 지키지 않았다는 이유만으로 과도한 마녀사냥의 희생양이 되었던 그녀는 지금쯤 악몽에서 벗어났을까? 시간이 지나면 잊혀지는 것이라고 누군가는 쉽게 말하겠지만, 당사자가 받은 인민 재판식 마녀사냥의 상처를 잊고 과연 정상적인 생활이 가능할까? 인터넷 어딘가에는 여전히 그녀의 사진이 게시되어 그녀의 상처를 여전히 자극할지도 모르는 대한민국이란 나라에서 여전히 살고 있을까? 순간의 실수가(실수가 아니라 고의라고 하더라도) 그녀가 받아야 고통이나 대가는 너무나 가혹하지는 않았는가? 내가 사건을 다시 언급하는 이유는, 책이 사건의 사진과 이야기를 언급하면서 시작하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학자가 책임에도 개똥녀 사건은 인터넷 공간을 통해서 보여지는 사회적 행동을 분석하는데 중요한 출발점을 제시하기 때문인 같다.

 

 인터넷 세상의 권력이라고 해야 할까? 사진 장과 쓰여진 글이 조합을 이룬다면, 법을 초월하는 행위가 광풍 불듯이 몰아쳐 버린다. 옳고 그름을 떠나서 과도하다 싶을 정도로 맹목적일 뿐만 아니라 폭력적이기까지 하다. 개인의 신상공개는 물론이고, 이리 저리 글들은 펌질을 당해서 확산의 정도를 가름 조차 없다. 이로 인해 죄인을 향해 돌을 던지는 것보다 무서운 폭력은 아무런 죄책감 없이 가해진다. 공동의 화제거리를 공유한다는 일체감인지, 아니면 약육강식의 현실에서 치이다가 모니터 뒤에 숨어서 스트레스를 해소하기 위한 치졸한 행위인지는 모르겠지만…… 그런 행위를 하는 사람들이 언제부터 그렇게 도덕성을 따지고, 예절을 따지며 살아온 국민인지 모르겠다. 선거 때만 되면 권력과 돈을 향해 투표하고 맹목적인 지역감정에 투표를 하던 사람들이 말이다. 유독 약한 집단이나 사람에게는 더욱 가혹하게 모질게 가하면서도, 권력이나 앞에는 그저 납작 엎드리는 아첨꾼과 전혀 차이가 없음에도 그들은 자신의 행위가 절대 선이나 도덕적인 행위로 믿으며 자신의 행위를 정당화한다.

 

 아무리 강력한 태풍이라도 태풍의 눈은 고요하듯, 인터넷의 광풍 속에서도 태풍의 눈과 같이 고요하고 이성적인 공간이 있긴 마련이다. 하지만, 사람들이 태풍의 눈의 고요함보다 태풍의 광풍과 파괴력만을 기억하듯 인터넷 세상의 광풍 속에서 이성적인 공간은 미미하기만 하거나 침묵을 강요 당한다. 소수의 사람들은 광풍이 참이나 지난 이후에 비로서 이성을 찾은 사람들이 때를 뒤돌아보면서 이성적으로 상황을 판단하기는 하지만, 잘못을 쉽게 인정하려 않는 인간의 속성 때문인지 부끄러움과 반성의 의미로 외면하는 것인지 몰라도 다수의 사람들의 기억 속에 사라진 사건이 되어 버린다. 결국에 상처를 받은 사람들은 대가나 보상은 커녕, 스스로 상처를 치유해야 하는 상황에 몰리게 되는 것이다.

 

 인터넷은 자유의 공간이다. 고단하고 힘겨운 현실 속의 삶을 떠나서, 다른 자아를 만들거나 창조할 있음을 물론이고 숨겨진 진짜 자아를 보여줄 있는 공간이다. 하지만 자유로움 만큼의 구속 또한 존재하는 것이 인터넷이다. 인터넷에 남겨 놓은 기록들은 자신 원하든 원하지 않든 쉽게 퍼져나간다. 그렇게 퍼져나간 기록들은 나중에 자신이 삭제할 없는 낙인이 되어 버리기도 하기 때문이다. 이를 보고 책의 저자는 "인터넷은 지워지지 않을 개인의 과거 잘못을 기록함으로써 주홍글씨를 디지털 판으로 재현한다."이라고까지 말한다. 스스로 만들었던 기록이던 타인에 의해 만들어진 기록이던 간에, 다수의 네티즌들의 관심과 이목이 집중된다면 관심이나 이목이 좋은 의미이든 나쁜 의미이든 상관없이 낙인이 되어 버린다.

 

 특히 잘못을 저지른 경우에 문제가 커지는데, 익명의 누군가가 그것을 인터넷에 올렸을 경우 다수의 익명의 사람들에게 모욕을 당하게 된다. 그래서 책에서는 이것을 인터넷 상의 모욕주기란 용어로 표현한다. 조지 오웰이 미래에 ' 브라더'라는 감시받고 통제된 사회를 예견했는데, 늘어나는 CCTV 제외하더라도, 카메라가 달린 휴대폰이 대중화 되면서 우리는 서로가 서로를 실시간으로 감시할 있는 환경에 스스로를 몰아 넣은 상황에 처하게 것이다. . 거기에 인터넷 이라는 공간의 그런 흔적의 저장소가 되고, 다시 다수의 사람들이 모인 재판소가 되어 버리기까지 한다. 당사자의 반론의 기회는 원천 봉쇄를 당하고, 고발자나 게시자의 일방적인 주장만으로 판결이 나버린다. 그것이 정당하고 정확한 판단인지도 문제가 되지만, 인터넷 모욕주기가 더욱 무서운 것은 죄값에 대한 명확한 가치도 제대로 산정하지 못할 뿐만 아니라, 다수의 분노라는 이름으로 너무 과도하게 행해진다는 것이다. 마시고 추태를 부린 사람들, 무단횡단을 하는 사람들, 금연구역에서 흡연을 하는 사람들과 비교해서 과연 개똥녀의 행위가 학교를 자퇴하고 사회적으로 매장 당할 정도 였는가에 대해서 다시 생각해본다면, 인터넷 모욕주기라는 행위가 얼마나 무서운 파괴력을 가졌는지 있다.

 

 타인에 의해서 인터넷에서 모욕당하는 뿐만 아니라, 스스로가 블로그나 미니 홈피를 통해서 자신의 사생활을 공개하면서 개인의 프라이버시를 침해 받는 상황이 점점 늘어나고 있다. 어떤 이는 자시의 블로그에 회사에 대한 불만을 이야기 했다가 그것을 회사에서 해고 당했고, 여자 친구가 자신과의 성관계이야기를 적나라하게 포스팅하면서, 직장 뿐만 주변 사람들에게 지극히 개인적인 사생활이 그대로 노출되기도 사람도 있다. 스스로가 원해서 프라이버시에 해당하는 부분이 공개되는 것도 있고, 원하지 않았는데 공개되는 상황도 발생하게 것이다. 상황에서 프라이버시라는 개념에 대해서 혼돈이 생기게 되는데, 그것은 블로그나 미니홈피의 글들이 프라이버시를 공유하고 싶은 사람들을 대상으로 쓰여졌는데 원하지 않게 다른 사람들에게 알려지면서 이슈화 경우다. 아무런 피해가 없었다면 상관이 없겠지만, 심각한 인격적 모독이나 경제적 피해를 당했을 스스로가 인터넷 상에 공개한 것이 과연 프라이버시에 보호받을 있는 것인가에 대해서 논란이 생기는 것이다.

 

 그래서 책은 이런 문제들에 대해서 다양한 관점으로 접근하고 있다. 실제로 있었던 다양한 사례를 비롯해서 법과 판례들을 인용하면서 아직 체계를 갖추지 못한 인터넷 세상의 윤리나 제도에 대해서 고민거리를 제공해 주고 있다. 엘빈 토플러거의 "부의 미래"에서 시속 1마일로 변하는 것이 법과 관련 기관들이라고 처럼, 빠르게 변해가는 인터넷 세상에서 법이 완벽하게 따라가지 못한다. 트레이시 마이어스는 "사회규범은 법보다 행동 규제에 있어 더욱 효과적이다."라고 했다. 결국에 인터넷이라는 공간을 통제하는 것은 불가능 함은 물론이고 법으로도 피해를 막거나 구제해주는데도 한계가 있음을 인정했다. 그래서 중요한 것은 네티즌 스스로가 사회규범에 대해서 명확한 개념과 관념을 갖춰야 함을 물론이고, 인터넷 세상 속에 다른 사회규범을 스스로 만들어 나가야 함을 보여준다.

인터넷세상과 평판의 미래 - 8점
다니엘 솔로브 지음, 이승훈 옮김/비즈니스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