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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를 보고

용두사미 액션 영화. 영화 "콘트라밴드"를 보고.

by 은빛연어 2012. 3. 30.



영화 도입부의 단순한 장면만으로 어떤 영화는 내용을 대략 알 수 가 있다. 어떤 소재와 갈등으로 이야기를 이끌어 나갈지를 축약해서 보여주는 것이다. 이 영화가 그렇다. 세관이 출동해 운항 중인 선박을 긴급 조사하면서 시작하는 영화는 이 장면에서 어떤 소재로 사건을 이끌어 갈지 보여준다. 그리고 이어지는 결혼식 피로연 장면에서는 사랑스러운 주인공 부부의 모습을 보여주면서 가족이라는 울타리 안에서 갈등이 일어 나리라는 것을 보여준다. 몇 년전에 부부의 피로연에서 술에 취해 신부의 신발에 구토를 한 친구가 등장한다. 부부의 결혼식에서 부린 행패를 통해서 그가 또 다시 그 부부에게 갈등을 일으키는 주체가 된다는 것을 암시한다.

 

영화의 주인공은 전직 밀수꾼이다. 이젠 손을 떼고 보안업체를 운영하면서 평범한 가정을 꾸리고 살고 있다. 그런데 처남이 마약을 밀수하다가 세관의 출동에 당황해서 마약을 바다에 버린다. 하지만 일을 의뢰했던 범죄 조직으로부터 돈을 갚으라는 협박을 받는다. 이로 인해 평화롭던 크리스 가족은 혼란과 위험에 휩싸인다. 크리스는 가족을 지키기 위해서 다시 밀수를 하려고 하고, 계획을 세우기 시작한다. 주변의 도움으로 밀수에 이용할 선박을 수배하고, 팀을 구성한 크리스는 위조지폐를 밀수하기 위해서 파나마행 배에 몸을 싣는다.

 

파나마에서 펼쳐지는 액션으로 영화의 본격적인 재미가 펼쳐진다. 배 출항 시간에 맞춰서 밀수품을 선적해야 하는 크리스 일행은 예상치 못한 문제들로 시간의 압박에 시달린다. 우연이 계속 겹치는 크리스의 위기는 영화의 긴장감을 극대화 해줄 만큼 긴박감 있게 전개된다. 촉박한 시간과 틀어진 계획은 크리스의 힘으로도 어쩔 수 없는 상황이 되어 버린다. 거기서 만들어지는 긴장감은 스크린에서 눈을 떼지 못하게 한다. 하지만, 그런 상황에서 크리스의 행위가 너무 수동적이다. 상황이나 주변의 강력한 힘에 의해서 크리스는 주도권을 상실하고 상황에 그냥 던져진 상태가 된다. 그러다 보니 상황이 만들어낸 긴박감에 눈을 뗄 수 없지만, 화면에 펼쳐지는 액션이나 이야기는 강렬한 인상을 남기지 못한다.

 

긴박한 상황을 무사히 다 넘기고 배에 무사히 도착한 크리스는 여기서부터 주체적인 행동으로 이야기를 이끌어 간다. 이전까지는 긴박한 액션이 만들어내는 재미가 있었다면, 이제부터는 크리스 어떻게 밀수에 성공 할지를 보여주는 재미가 있다. 앞의 액션 신 같은 긴박감은 조금 줄어든 것 같지만, 오히려 이제부터 색다른 재미와 긴장감이 펼쳐진다. 주인공의 주체적인 행위를 통해서 힘겨운 상황을 돌파하다 보니, 화려하거나 거친 액션 신이 없어도 주인공의 시점으로 전해지는 감정이 그대로 느껴진다. 이 부분부터 영화는 크리스를 협박하는 실체를 같이 보여주기 시작한다.

 

이제부터 사건은 밀수가 아니라 다른 방향으로 흘러간다. 자신과 가족을 괴롭히는 사람들에 대한 복수가 시작되는 것이다. 이 영화는 초반부의 액션 중반부의 밀수과정 그리고 후반부의 복수의 과정 같이, 세 부분이 다른 형태로 보여진다. 이 세 가지가 매끄럽게 연결되었다면 영화는 매력적인 작품이 되었겠지만, 이상하게 영화는 매끄럽게 연결되지 못한다. 초반부의 크리스는 너무 수동적이어서 장면이나 이야기에 역동성을 보여주지 못하고, 중후반부에서는 크리스가 너무 주체적이다 보니, 크리스와 함께 움직였던 팀원들이 너무 주변부로 머무른다.

 

크리스와 강렬하게 충돌해야 할 다른 캐릭터도 너무 연약하다. 그가 그렇게 해야만 하는 강한 동기를 보여주지 않으며, 크리스의 분노를 일으키는 행동도 단순히 우발적으로 보여지는 경향이 크다. 주체성을 가지고 강하게 충돌해야 될 두 캐릭터가 한 쪽은 너무나 강한 주체성을, 다른 한 쪽은 우연이나 수동성으로만 점철되어 보여준다. 가장 극적이고 긴박해야 할 영화의 후반부가 너무 싱겁게 풀려간다. 등장하는 캐릭터간의 균형이 너무 상실한 상태다 보니 갈등의 크기가 크지 않고, 갈등의 양상도 힘이 없다. 영화 초반의 긴박한 액션에서는 주인공의 주도권 없이 상황에 따라 끌려가고, 후반부에서는 주인공의 주도권이 너무 강하다. 그래서 후반부의 갈등이 빈약할 뿐만 아니라 다른 영화 속 캐릭터들이 전부 힘을 발휘하지 못하고, 크리스라는 캐릭터에 묻혀 버렸다. 그러다 보니 영화의 초반에 암시적으로 보여줬던 대략적인 내용 이상의 것을 보여주지 못한다.